죽산전씨의 시조, 전한(全僩)은 도시조 전섭(全聶)의 28세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합격하여 고종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되어 1231년(고종 18)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성신진(成新鎭)을 방어하여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으며 영상(映像)을 안치되는 영광도 안았다.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참고로 죽산군의 연혁을 보면, 죽산(竹山)은 경기도 용인시(龍仁市)와 안성시(安城市) 일부에 속해있던 옛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개차산군(皆次山郡)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죽주(竹州)로 고치고, 995년(성종 14년)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어 음평(陰平) 또는 연창(延昌)이라 하였으며, 현종 때 광주(廣州)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 죽산현(竹山縣)으로 개칭하여 감무(監務)를 두었고, 1543년(중종 38년)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죽산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에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원일면(遠一面)과 근삼면(近三面) 일부는 용인군(龍仁郡)에 합해지고, 나머지 지역은 안성군(安城郡)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