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
: 저는 요즘 차고 넘치는 '지원'이란 말이 싫어요
박경현, 샘교육복지연구소
선생님, 안녕하세요?
걷기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지금도 많이 걸으시나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만난 선생님은 방학 동안 무얼 했느냐고 물으셨죠.
제가 무어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웠고 지금도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강릉까지 걸어서 갔었다고 하셨어요.
'뭐라고요? 기가 막혀! 버스가 있는데 왜 그런 고생을 해요?'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알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어요.
까맣게 그을린 선생님의 피부는 이전보다 더 윤기가 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두꺼운 안경알 때문에 더 작아 보이는 콩알만 한 눈빛으로 무심한 듯 저를 바라보며
주로 걷고 어떤 구간은 버스를 타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친구와 둘이 걸으며 때로는 한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종일 걷기만 했다고 하셨어요.
'어른들은 참 이해할 수 없어.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그땐 걷기의 매력을 몰랐지만, 어른이 되면서 걷기가 좋아져서 많이 걷는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특히 숲길을 걷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은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고
신선한 에너지로 채 워주는 것 같아요.
걷다가 계곡에서 물에 손을 씻기도 하고,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며 새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꽃들도 바라보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서는 남학교에서만 근무했는데
남교사들이 학생들과 어울려서 축구를 하거나 등산을 하고 나면 상담보다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났어요.
그래서 저도 학생들과 시험 끝나는 날이나 주말, 공휴일에 등산하거나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곤 했어요.
한 번은 중3 남학생들 대여섯 명과 치악산을 올랐어요.
남교사 두 분이 인솔했는데 우리 반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담임인 저도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셔서 따라가게 되었어요.
세상에 네상에나!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절대 안 갔을 텐데....
산은 높고, 길은 험한데, 키 큰 남학생들과 남교사들은 성큼성큼 걸어 오르는 길을
다리가 짧은 저는 두 무릎이 까맣게 멍이 들도록 네 발로 기어오르느라 주변은 보지도 못했다니까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걷고 있는 저보다도 더 엄살을 부리며 투덜투덜 죽네 사네,
우는소리를 하며 걷고 있었어요.
아무리 학교에서 말썽장이들이라도 덩치만 컸지 아이들이라니까요.
겨우 능선에 올라 한숨 돌리고 좁은 길을 따라 걷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퍼부었어요.
저는 나도 모르게 키 작은 소나무 밑에 쭈그려 앉아 우산을 폈는데,
바로 그때, 천둥 번개가 치고 무언가 등짝을 세게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이 지나갔어요.
저는 능선길 옆 비탈로 5미터쯤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요.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었어요.
그다음부턴 아이들 입에서 불평불만이 싹 사라지고 두말없이 행군했답니다.
정상 언저리 큰 바위 밑에서 야영을 하고 이튿날 하산하는데
북한군 병사가 비행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왔다며 라디오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임시방송이 나왔어요.
놀라기도 했고 기차 시간도 빠듯해서 모두가 뛰다시피 산에서 내려왔는데,
저는 또 한 번 고생해야 했어요. 숏다리의 슬픔....(ᅲ.ᅲ) 그리고 돌아와서는 며칠 동안 걷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장시간 걷고 고생한 추억은
아이들과 교사 간에 든든한 끈을 만들어주었고 달리 상담이 따로 필요 없었어요.
그 아이들은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예산을 써서 '등산 이벤트’로 지원한 불쌍한 아이들도 아니었고,
상담과 치료가 필요해서 체험 상담 요법으로 개입한 문제아로 기억되지 않았어요.
그냥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올랐던 즐거운 추억의 동행자였어요.
교사를 그만두고 학교사회복지사를 하면서도 걷기와 등산의 추억이 있어요.
2학기가 되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으레 눈병이 번지곤 했는데,
짓궂은 남학생들 한 무리가 눈병 걸린 친구의 눈을 만진 뒤 돌아가며 제 눈을 문질러서
소위 일진의 그룹이 몽땅 눈병에 걸려서 학교에 못 오는 일이 벌어졌어요.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핑계를 만든 것이지요.
저는 사전에 계획했던 등산 프로그램을 연기를 해야 하나 싶어서 그 학생들에게 말했지요.
“얘들아, 너희들 눈이 아프니 등산 계획은 연기하든 지 취소해야겠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등산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또 말렸지요.
“아이고, 이 녀석들아. 그랬다가 너희들 부모님이 아픈 아이들 데리고 등산이 웬 말이냐고
학교에 항의하면 내가 곤란해지지 않겠니?”
그래도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벌건 눈을 하고 끼룩끼룩 학교에 나타나고
방과 후에 학교 근처의 산기슭에 있는 암자로 올라갔어요.
아이들은 눈이 불편한데도 저보다 더 잘 오르더라고요.
내려와서는 학교 뒤 뜰에 둘러앉아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었지요. 물론 보너스 군만두와 함께요.
산에 다녀오면서 아이들과 '너는 왜 공부가 싫으니?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너는 무엇이 달라져야 삶이 행복해지겠니?
내가 무얼 도와주면 네 학교생활이 더 즐겁겠니? 그런 대화는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나무 보고 벌레도 보고, 하늘의 구름 보고 그러면서 숨차게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어요.
말을 했다면, '너는 잘도 오르는구나, 이 휴지로 눈 좀 닦아라,
얘들아, 좀 천천히 가라,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헉헉.... 나 숨차다.' 그런 말뿐이었죠.
그렇게 등산을 하고 온 아이들은 전보다 더 저를 믿고 따라주었고,
굳이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이좋게 학교생활을 잘했어요.
뭐,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썩 잘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하도 밝고 당당하게 지내니 다른 교사들이 의아해했어요.
그런데, 요즘같이 연간예산이 빵빵한 교육복지우선 지원사업이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아이들의 결핍과 욕구를 찾아내고 돈을 쓰는 지원을 해주었겠지요?
과연 그것은 정말 '사회복지적인 일일까요? 누가 자랑할 일일까요?
그때는 사업예산이랄 게 없으니 제가 몸을 쓰게 되었고 몸을 쓰기 위해 마음을 쓰고
같이 시간을 보낼 구상을 하느라 궁리하고 물어보고 부추기고 부탁해서 해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사회복지적이지 않을까요?
선생님, 저는, 요즘 차고 넘치는 '지원'이란 말이 싫어요.
아이들이 바라는 건 지원이 아니라 당당한 존재로 대우해주는 것이고,
필요한 건 지원보다도 시간과 노력을 써서 함께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일 하는 사람이 바로 사회복지사가 아닐까 싶은데,
복지를 내건 온갖 지원사업들은 제 생각과는 다르네요.
한 번은 여러 가지 삶의 변고 속에서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여학생을 만나고 있는
학교사회복지사에게 조언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여학생은 여기저기서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제는 상담의 'ㅅ'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난다고 했어요.
그나마 학교사회복지사와 친해져서 결석이 줄어들고 학교에 오기는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기는 싫다고 했어요.
학교사회복지사는 오전 시간 동안 학생에게 무슨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모아본 끝에 제가 엉뚱한 걸 하나 제안했어요.
한 시간은 교감 선생님과 학교 정원이나 뒷산을 좀 걸으면 어떨까 하고요.
학교사회복지사가 다른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오전 시간 내내 한 학생에게 붙잡혀 있는 것도 좋지 않고,
학교 안에서 다른 교사와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일반 교사들은 수업해야 하니 학교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이 많은 교감 선생님이 시간을 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후 학교사회복지사와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들 었어요.
다행히도 그 여학생이 이제는 학교에도 잘 나 오고 수업에도 잘 들어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교감 선생님과 같이 산책한 것이 가장 좋다고 하더래요.
교감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했기에 좋으냐고 물으니 별로 한 말도 없었다며
그저 예쁜 꽃이랑 구름 사진도 찍고 그랬다고 하더래요.
때로는 구조화된 계획 없이 그저 학생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함께 걷기'가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저 말고 다른 학교사회복지사 선생님들도 걷기를 하십니다.
중학생들이 직접 기획해서 해마다 제주도 올레길 걷기 여행을 하는 곳도 있고,
여름 국토 순례 도보여행을 하면서 추억 만들기를 하는 그룹홈 청소년과 사회복지사들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한 달에 한 번 씩 등산이나 오래 걷기를 하는 학교사회복지사 모임도 있어서
한 번 남한강 길을 함께 걸었고요, 양평에서 걷기 명상을 곁들인 피정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해보기도 했어요.
모두 좋아하시더라고요.
사실 걷기의 끝판 왕은 촛불 시위가 아니었을까요?
그때는 학교사회복지사 동료들과 깃발을 만들어 들고 광화문과 종로 거리를 함께 걸었어요.
걸을수록 힘이 나고 하나가 되는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걷기는 힘이 있어요.
선생님,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뵈려 했는데
선생님은 그 중학교를 떠나시고 어디 계시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어요.
주소도 모르는 선생님께 이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만나 뵐 수 있다면 선생님과 오래 걷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과 그 시절 이야기, 요즘 지내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지금이라면 선생님이 그해 여름, 강릉까지 걸어가신 이유와
그 당시 선 생님의 마음을 저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다음에 뵙게 되면 제가 자주 걷는 숲길로 모실게요. 부디 건강하세요.
박경현 드림
*월간소셜워커 2021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박경현 선생님 허락을 얻고 소개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글을 읽으며 '그렇지요, 그런 거지요.' 하며 공감 또 공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