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늘은책방 이준화 선생님 '책방일기'를 허락을 얻고 소개합니다.
지난 주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한 손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중고책을 기증한 적 있는데요, 더 갖다 드려도 될까요?’
올 여름부터 종종 중고책을 기증해주셨던 손님입니다.
지난번에 좋은 책들을 많이 전해주셨기에, 이번에도 잘 받아보고 싶다고 답을 드렸습니다.
같은 날 오후, 손님께선 깨끗한 우체국박스 두 상자에 책을 가득 담아 전해주셨습니다.
차라도 한 잔 내어드리고 싶었는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바로 책방을 떠나셨습니다.
책방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셨을까요.
바로 책장에 꽂아두기 아까워 그날만큼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테이블 가득 쌓인 책들을 보며 전해주신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떠올려보곤 했지요.
어떤 때에는 책을 기증받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전해주시는 것은 책의 세계를 떠나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지요.
함께하는 동료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생각이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중고책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격으로 분류했습니다.
3천원 이하 도서, 5천원 도서, 7천원 도서, 1만원 이상 도서로 말이지요.
책에 알맞은 가격을 매겨 책장에 꽂아둡니다.
그러다 꼭 읽고 싶은 책을 만나면 소장본 스티커를 붙여 도서대여 책장으로 향합니다.
판매하면 얼마의 수입이 생길 수 있으나,
당장 책장에 꽂혀있지 않으면 읽어볼 기회를 먼 미래로 넘겨버리게 될 겁니다.
그러다 새로운 책들에 치여 영영 읽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3분의 1정도는 도서대여 책장에 놓인 것 같습니다.
책방을 처음 시작할 때엔 헌책을 주로 판매하고 싶었습니다.
개업하고 1년 정도는 경주 곳곳에 있는 여러 자원가게(고물상)를 다니며 책을 찾기도 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경주시내를 한 바퀴 크게 돌았지요.
파지들이 버려진 곳을 이리저리 살피며 볼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다녔습니다.
파지들의 산을 오르내리며 지구에 홀로남아 외롭게 쓰레기를 청소하던 월-E가 생각났고,
한평생 책과 폐지를 압축하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눈에 띈 책들은 책방으로 가져와 알코올로 잘 닦아 책장에 꽂아두었습니다.
버려진 책을 모아 헌책방에 판매하던 사람을 옛날에는 ‘책 나까마’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니는 일이 힘들기보다 재미있었지만, 그만둔 이유는 헌책의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팔린 책은 다시 구하기가 어려웠고,
좋은 책들이 빠질 때의 아쉬운 마음을 다시 채우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중고책의 비중을 줄여갔고, 언제든 원하는 책을 입고할 수 있도록 새책을 늘려갔습니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난 몇 년 간 중고책을 따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책장이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책을 기증해주신 분들의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채워진 책장을 마주하며 이번 한 주도 잘 살아내기로 다짐해봅니다.
내어드리지 못한 차 한 잔을 이 글로 대신합니다.
- 영남경제일보 2021년 10월 27일에 소개한 글
첫댓글 고맙습니다.
오늘은책방이 잘되기 바랍니다.
책방에 책을 기증해 주시는 분들이 잘되시기 바랍니다.
책을 받으며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오늘은책방! 응원합니다.
나는 유나 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