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업에서 ‘장애’는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사자의 능력이 뛰어나도 그 이 상을 요구하는 환경과 만났을 때 경험하는 약함이 ‘장애’입니다.
내 약함이 장애가 아닙니다.
내가 강해도, 그 이상을 요구하는 환경에 놓이면 그때 그 일에서 장애를 경험합니다.
이처럼 '개인과 환경'을 이야기할 종종 공중전화 사진을 참고했습니다.
(지금은 공중전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이 비유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위 사진처럼, 예전에는 거리에서 이런 공중전화가 많았습니다.
아쉽게도 키가 작은 이, 허리가 굽은 어르신,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는 이 전화기를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공중전화부스의 턱과 좁은 공간 때문에 휠체어는 아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때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나 키가 작은 사람은 전화기 이용에 '장애'를 경험합니다.
아래는 98년, 일본 복지시설 배낭여행 때 벳부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거리에서 만난 이 공중전화 부스는 진입로에 턱이 없고, 공간이 넓습니다.
부스 안 전화기가 낮게 달려있습니다.
거울이 있고, 옆에는 손잡이까지 있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도 쉽게 이용합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전화기를 이용할 때 '장애'를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사회)에서는, 이 상황에서는, 이 일에서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아래는 일본 나리타 공항 공중전화기 모습입니다.
키가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여 만들었을 겁니다.
어린아이, 허리가 굽은 노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으면,
이런 환경(사회)을 설계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는 한국 남성의 표준 키를 반영하여 설계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지하철은 손잡이 높낮이가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서울지하철 9호선과 부산지하철 4호선의 손잡이가 아래와 같은 모습입니다.
더 살펴보니
아래처럼 버스 손잡이 높낮이는 자유롭게 조절하는 디자인도 이미 소개되었습니다.
이 환경 속에서는 작은 키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내 키와 높은 손잡이가 만났을 때 '장애'를 경험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 키를 크게 하거나, 손잡이는 낮게 합니다.
사회복지사를 이 둘을 함께 생각하고, 무엇을 도울지 자기 정체성, 처지와 역량을 따져 선택합니다.)
약자를 '배려'한다는 표현도 조심스럽습니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다양할 뿐입니다.
생태계의 건강성의 기본 속성은 생물종의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여 설계한 사회 속에서는 장애인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휠체어를 탄 이들도 텃밭 가꾸는 일조차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이 일에서는 장애, 곤란을 경험하지 않으니 장애인이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휠체어에 앉은 이가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이용하는 모습입니다.
2012년 어느 신문에서 보았던 이 사진에는 이런 기사가 함께 실렸습니다.
| 은행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면서 ‘금융 탐욕’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선심이나 쓰듯 사회적 약자 보호를 전면에 내걸었다. 장애인 편의를 겨냥한 대책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발표만 요란할 뿐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한국은행과 17개 은행으로 이뤄진 ‘금융정보화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ATM 설치 표준안을 만들고 부스 크기, 기계 조작부 높이를 표준화했다. 그 후 7개월여의 시간이 흘렀으나 눈에 띄는 결과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자가 직접 서울 도심인 을지로 일대 시중은행 점포 10곳을 점검한 결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ATM으로 바꾼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자체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규 점포나 리모델링 점포는 교체하려고 애를 쓰지만 기존에 설치된 기기를 뜯어내고 설치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세계일보, 2012.6.4. |
이 뒤로, 여러 은행에서 인출기를 교체했습니다. 둘레 환경을 바꿨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 다가갔습니다.
단, 장애인 표시를 붙이고 장애인 전용 인출기라고 말하는 건 아쉽습니다.
선심쓰듯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니,
사회 환경도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며 설계한다, 그런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아래 사진 또한 98년 일본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버튼을 눌러 단말기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장애인 표시'는 없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사람과의 직접 대면을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무인가게가 늘어났고, 기존 가게도 주문을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를 사용하는 곳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키오스크를 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위 사진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성인 평균 키를 생각하여 만들었을 겁니다.
'평균'의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 다양한 사람이 장애를 경험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면,
키오스크도 다르게 만들어졌을 겁니다.
반가운 소식, 자동 높낮이 조절 키오스크가 이미 나왔습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미 만들어졌고,
설치하여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라면
작은 일에서도 둘레 사람을 잘 살필 겁니다.
약자도 살 만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는
'장애인의 날'이 따로 있지 않을 겁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의 일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더불어 살게 돕는 사람입니다.
평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어울려본 경험이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할 겁니다.
첫댓글 저상버스, 높낮이 조절 세면대...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일이 중요합니다.
더하여,
사회적 환경도 있습니다.
인사하며 지내는 이웃이 많은 사회.
그런 공동체 안에서는 물리적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갑니다.
공감합니다 ^^
고맙습니다~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시선이 한쪽만 바라보면 일방통행과 다름이 없겠지요 ^~^
맞아요.
전통적으로 사회사업가는 개인과 환경, 둘을 함께 살펴왔지요.
관점에 따라 방법이 결정됩니다.
약자도 살 만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생각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쓰신 글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공감했습니다.
누군가를 장애인이라 부르는 말과
약자라 부르는 말까지도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굳이 장애, 약자를 강조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살만한 한 사람의 삶이자, 여러 사람이 존중하는 사회이길 바랐습니다.
그런 방향과 과정 속에 ‘장애인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언젠가 ‘장애인의 날’, 장애인, 사회적 약자, 부족한 사람, 기능이 부족한 사람이라 명명하지 않아도 될 이웃과 동네를 꿈꿔봅니다.
작은 행동, 말, 대화, 만남에서부터 실천해가겠습니다. 배움이 있는 글, 고맙습니다.
호준 선생님, 반가워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며 꾸준히 공부하니 고맙습니다.
장애인을 따로 돕고, 특별하게 대하는 그런 날이 없기를 나도 바라요.
그런 날을 그냥 주어지지 않겠지요?
호준 선생님, 응원합니다.
배명수 선생님이 이 글을 어느 모임에서 나누고 받은 후기.
농부의 말씀이 힘을 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