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를 찍다
“갑상선 암입니다. 종양이 큰 것만 3개 작은 것들까지 하면 너무 많고,
다른 곳으로 전이도 있어서 수술 후에는 방사선 치료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대학에서 졸업식 사진을 찍기도 전 2007년 1월 2일 입사하고,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2015년!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10년 차가 된다는 생각에 전문가가 되어간다는 자부심이 높아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내 진짜 꿈은 무엇인가?
특수교사로 근무하게 될 지는 졸업을 준비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어려서는 국어교사가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어린이집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만났던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습에
유아교육과를 진학하였습니다. 다행히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가서 1년이란 시간을 보낸 뒤
아는 선배가 건넨 한마디는 그 전까지 유아교사를 목표로 하던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 특수교육을 함께 복수전공해야
나중에 경쟁력을 더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고, 복수 전공을 해봐.”
특수교육이라, 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는 거 같던데,
학비가 더 드는 것도 아니고 재미없고 듣기 싫은 교양수업 듣느니 특수교육과 과목을 들어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과목들을 들으면서는 유아교사가 될 건데 왜 이걸 듣고 있는 것일까? 후회를 하다가도
자폐성 장애아 교육을 들으면서 다른 매력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다면
늘 새로운 도전과 함께 발전하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에
유아교사와 특수교사 사이에 어떤 일을 시작지까 4학년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너희 집 근처 장애인복지관에서 어린이집 교사들을 지원하는 특수교사를 뽑는데.”
그때 친구가 전한 이야기에 며칠을 고민하다 면접 경험으로 좋겠다 싶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안산에서 태어나 23년을 살았지만, 안산에 장애인복지관이 있는지 몰랐었습니다.
낯선 기관의 면접장에는 이미 장애유아들과의 경험이 있는 선배 교사들이 이곳에서 근무를 희망하며
간절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뜨거운 경쟁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경험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제가 정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다른 분들이 더 이 자리에 맞는 것 같다며
그 분들을 뽑으시길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다음날 합격 통보와 함께 언제부터 근무할 수 있냐는 전화에 ‘왜 내가 뽑혔지?’ 하는 궁금증을 품은 채
교육현장이 아닌 복지를 하는 곳에서 낯섬을 넘어 다름에 대한 불편함 마음을 가진 채 1년,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업무는 지역에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발달이 늦은 영유아들이 있는 어린이집을 순회하며,
아이들의 특별한 요구에 맞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육교사들을 상담하고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하는 이야기에 처음에는 경계하며,
보조 교사처럼 생각하던 선생님들이 점차 제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복지현장에 외롭게 교육자로 존재하려 했던 저의 마음이 열리고,
장애인복지관에서 특수교사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찾은 삶의 의미
그러다 쉼을 가지게 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9년이란 시간 동안 만나왔던 자녀의 발달이 늦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거부하던 부모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암 조직검사 결과를 통보하던 의사에게 전 그저 많은 환자 중에서
오늘 봐야 하는 몇 십 명 중 하나, 지금까지 만나 본 몇 천명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건조한 그의 말을 들으며,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내 금쪽같은 자식에 대해 '부족하다', '문제가 있다', '병원에 가야 한다',
무자비한 말을 쏟아낸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의사의 저 모습이 나와 같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전문가답게 느껴져서
참 행복해하던 일들이 부끄러워지고, 그때 그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그 경험은 제 삶과 제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했습니다.
지금껏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 겪고 나서야
진짜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이 느껴져 예전에는 쉽게 했던 말들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몇 번이고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교육들이 과연 아이들의 삶에 있어 중 요할까?
우리들의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제 삶에서 이제 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교육자에서 복지사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습니까?
전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보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갈등이 싫었습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면, 다른 의견을 내기보다는 대부분 따랐습니다.
그렇게 20대까지 제가 아닌 부모가 바라는 딸,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나로 살면서 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갔던 템플스테이에서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 며칠간의 경험으로
'내 인생에 주인이 과연 누구였던가?' 하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이 저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삼배를 올려줄 때 비로소 제가 누구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내 삶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은 삶의 목적은 '의미 있게 잘 쓰이는 삶'이었습니다.
힘든 일이어도 필요한 곳 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잘 쓰였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저도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는데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많은 이들의 도움을 지원받으며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은 더 어렵습니다.
제 가 삶의 의미를 찾았던 경험들이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OO 씨는 꿈이 뭐예요?”
특수교사로 묻던 그때와 사회복지사로서 묻던 지금 제가 바라는 답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직업을 갖고 비장애인들과 덜 부족한 삶이 되길 바라는 답을 원했다면,
지금은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대답하길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장애 정도를 이야기하며,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장애가 경한 사람들만이 가능하다며 부정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은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선택하며,
선택이 어렵다면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지원한다면,
분명 장애가 심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글쓰기, 치유와 도전의 과정
잘 견뎌왔다 생각되는 요즘에도 정기검진을 하고 결과를 들으러 갈 즈음 불현듯 불안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치료 과정 중 마음의 치유로 상담과 함께 일어난 일에 대한 자기 성찰과 의도적 반추로 글쓰기를 추천받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반성하거나 하는 것들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사회복지사인 나’에 대해 글을 쓰며 고등학교 때부터 40을 앞둔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굳건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특수교사라는 것이 저의 정체성을 대변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 전문가보다는 함께하는 진짜 친구, 누나, 언니, 후배, 선배 같은 서포터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이야기들을 잘 기록하고, 글쓰기를 통해 치유와 도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디 제 글의 주인공들이 빛날 수 있도록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부족한 글을 함께 나눠도 되는 지 여쭈셔서 부끄러웠지만,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전이 될 수 있다면 잘 쓰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괜찮다 말씀 드렸습니다. 더 부지런히 쓰는 사람으로, 제가 만나는 당사자분들의 빛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읽고 쓰고 나누겠습니다 ^^
믿음이 굳건한 사회복지사!!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