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어크로스, 2018
혐오표현이라는 과격한 용어의 사용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반차별운동'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된장녀'도' 혐오표현일 수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운동이라는 것이다.
국내외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들이 편견, 공포, 모욕감, 긴장, 자신감.자부심 상실,
자책 등으로 고통받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혐오표현에는 “동남아시아 출신들은 게으르다”,
“조선족들은 칼을 가지고 다니다가 시비가 붙으면 휘두르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등과 같이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들이 있고,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 “나서지 마라”, “집에서 애나 봐라”와 같이
소수자를 일정한 틀에 가둬놓고 한계를 지우는 유형도 있다.
이러한 말들이 별다른 제지 없이 발화된다면 어느 순간 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허위가 사실로 둔갑하여 또 다른 차별을 낳게 된다.
한국 사회가 과연 아이와 아이 엄마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아니라면 맘충이라는 말의 사회적 해악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맘충처럼 아이와 엄마를 혐오하는 말들이 널리 사용되면서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지적’당할까 두렵고
자기도 모르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어 위축된다고 말한다.
혐오의 표적 집단으로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는 흔히 언급되지만 아이 엄마는 다소 이례적이다.
전 세계의 혐오표현 연구 및 보고 중 아이 엄마를 표적집단으로 설정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떤 특정 집단을 지정해 배재하는 것은 항상 최후의 수단이 되아야 한다.
(...)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무작정 자유를 제한하려는 취지가 아니다.
다만, 특정 소수자 집단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식의 '손쉬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공존의 해법을 찾아보라는 주문이다.
영업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부 사례가 있고 그로 인한 업주들의 고충이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해결 방안이 꼭 노키즈존이어야만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김치녀로 표상되는 여성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직장에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실제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꾸로 한남충이라는 말이 남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확산하고
직장에서 남성들을 차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김치녀'나 '김여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개념녀'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하고 규율해야 하는 것이 여성혐오의 부정적 효과라면,
'한남충'이라고 불리기 싫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해야 하는 남성들의 현실도 있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