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힘>
최준영, 북바이북, 2021
묻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결핍과 누군가의 상처를 덧내는 물음이라면 결코 물어서는 안 된다.
다른 방식의 소통을 고민해야 한다.
속절없이 묻는 대신 진득한 눈빛으로 말없이 오래도록 바라봐주는 것이라든지.
24
"진심이 중요하지만 우리 관계에서 더 필요한 건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오랫동안 친밀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다보면, 그 사람의 진심보다 나를 대하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태도는 진심을 읽어 내는 가장 중요한 거울이다."
엄지혜 작가의 <태도의 말들>에서 발견한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48
요양원은 아픈 어머니를 위한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순전히 자식들의 편의와 편리를 위한 격리와 회피의 공간이라는 것을,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친구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61
어머니 이마의 깊은 주름을 볼 때면 책에 쳐놓은 밑줄이 떠오른다.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밑줄을 치듯,
어머니는 삶의 온갖 풍상을 맞을 때마다 당신의 이마에 주름이라는 밑줄을 쳐두셨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65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리움을 갖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 얻어걸릴지 모르는 이름 모를 꽃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은 없다.
꽃의 이름을 알면 그 꽃을 기다리게 된다.
(...) 쑥부쟁이가 그리운 건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76
자신만의 문장을 갖고 싶은가?
그럼 서둘러 펜을 잡는 대신 책을 펼쳐라.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물결치는 문장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오래도록 유영하라.
그럼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문장을 갖는 일은
우선 누군가의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가능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156
기자가 묻기를 제쳐두고 듣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도리 없이 두 가지 유혹에 굴복당하고 만다.
권위적인 기자가 되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굴종적인 기자로 전락하는 것이 그것이다.
158
의회정치의 역사가 깊은 영국과 미국의 의회용어 중에 'backbencher'라는 말이 있다.
초선의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선의원은 의사당의 뒷자리에 앉는다. 의사당의 맨 앞줄,
즉 상대당과 논쟁을 벌여야 하는 자리엔 다선 의원이 앉는다.
초선의원은 다선의원들의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치열한 정책대결과 논쟁,
왕성한 의정활동을 보고 배우며 점차 앞자리로 나아간다.
우리 국회의 자리배치는 영국과 정반대다. (...)
197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본인과 험담의 대상자,
그 험담을 듣는 사람.
224
특히나 사람의 관계는 말투로 시작한다.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배려의 말투부터 익혀야 한다.
225
대한민국 공무원의 대부분은 한글을 모른다.
(...)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글쓰기가 안 된다.
그들이 작성한 공문서는 대부분 남의 글을 베낀 것이다.
가령 사업계획서를 쓴다고 할 때면
전년도 혹은 그 이전의 것을 베긴다.
그게 또 시원치 않으면 다른 지자체의 것을 빌린다.
그렇게 비슷한 문장이 돌고 도니 공문서의 내용은 매양 그게 그거다.
226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이라면 대략 감이 잡힌다. 내 생각에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글쓰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과 압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생각과 글, 말과 글이 따로 논다.
(...) 이유가 있다. 멀리 보면 책을 읽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제대로 된 글을 읽는 것이야말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초이다.
근데 책 읽기를 소홀히 하니 글쓰기가 안 된다.
228~229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행전문 크리에이터 원지 씨.
가난했던 집.
공간의 결핍이 여행을 꿈꾸게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