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윤리강령 개안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윤리강령 개정안 초안을 구해 읽었습니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록은 사회복지사의 윤리적 실천의 근거이자 평가.점검 도구이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어떤 뜻으로 쓴 글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름, 나이, 주소, 금액 따위를 제외한 내용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사회사업가가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는지에 따라, 그래서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과 상황을 다르게 기록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것으로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강점관점을 훈련하지 않았다면 당사자의 희망 가능성 열망 매력 꿈을 볼 수 없습니다.
곡선의 시선을 갖고 있지 않다면 지금 이 모습 너머 다른 것이 있고,
이 상황에 이유가 있다는 것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느 지적 약자를 거든 사회사업가의 기록 첫 문장이 이러했습니다.
"김구슬, 지적장애 2급, 알코올 의존증, 60대 남성, 독거노인, 집중 사례관리 케이스…."
이 글을 읽는 할아버지는 그 마음이 어떨까요?
나를 돕겠다고 찾아온 사회사업가가 나와 만남 뒤 남긴 기록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은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에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더는 읽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당사자의 강점에 주목하고, 당사자의 것으로 돕겠다고,
희망을 말하겠다고 찾아온 사회사업가의 말이 거칩니다.
어떤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지 오싹합니다.
이렇게 적은 뒤에 당사자와 둘레 사람의 강점이 보이기 쉽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객관적 정보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김구슬 어르신은 웃음이 많고, 인정이 넘치며, 손재주가 뛰어나기도 합니다.
사회사업가는 이를 묻지도 않았고 적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묻습니다.
말과 글로 의식을 깨우지 않으면 점점 당사자의 하소연 듣는 말귀가 어둡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인간의 주의력을 살피려 진행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공을 던지는 사람들 사이에 고릴라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공에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
사회사업가의 시선은 훈련으로 만들어집니다.
훈련의 으뜸은 읽고 쓰기입니다.
읽고 쓰지 않으면 딱 그만큼만 보이고,
그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곡선의 시선’에 중심을 두고 쓰고 다듬기
사례관리 상담일지와 같은 기록은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감정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주장의 의도가 짐작이 가지만,
사회사업가는 강점과 가능성 따위를 바라보는 ‘곡선의 시선’을 가진 존재입니다.
적극적으로 당사자를 향한 자기 생각과 실천 의도와 소망 따위를 기록합니다.
‘김구슬 씨는 술을 좋아한다.’와 ‘김구슬 씨는 알코올중독자이다.’는 완전히 다른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슬이는 지각했다.’와 ‘구슬이는 지각대장이다.’처럼,
마주한 상황을 기록할 때 사회사업가는 학습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기록합니다.
우리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당사자의 ‘생태와 강점과 관계’를 마음에 두고,
이를 찾고 생동하려는 마음으로 ‘의도와 근거와 해석’을 중심으로 작성할 뿐입니다.
강점으로 치우친 사람입니다.
무엇을 중심에 두는 가를 세우고 다듬어 가면,
무엇을 어떻게 쓸지가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사회복지사가 초기면담을 위해 당사자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쌓여 있는 쓰레기, 널브러진 가구, 나뒹구는 술병….
그 속에서 강점을 생각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정방문을 마친 사회복지사는 이제 복지관으로 돌아와 기록합니다.
그는 무엇을 쓸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 따위를 기록하는 이는 직선의 시선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곡선의 시선을 가진 이는 그 문제 너머에 감춰진 다른 모습을 보려고 애씁니다.
곡선의 시선을 가진 사회복지사는 문제를 소극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런 눈으로 당사자와 그 환경을 바라본 사회복지사는 초기면담에서 섣부른 판단을 보류합니다.
답답한 모습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고, 꿈을 이야기 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싶고,
만나면 좋을 사람을 제안하고 싶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서술합니다.
직선의 시선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상황이 오래 되었다면 이미 많은 이가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운 이야기를 해왔을 겁니다.
우리라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문제 상황이 심각하다면, 그래서 우리도 어찌할 수 없다면 더욱 문제를 외면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관점에 따라 방법이 달라집니다.
관점은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사회사업에서 객관적 기록은 없습니다.
자기 의도를 특정 주장(이론)을 근거 삼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앞선 주장(이론)에 빗대어 해석합니다.
이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윤리강령의 이 문장을 어떻게 다듬으면 좋을까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추가하면 좋겠습니다.
1) 사회복지사의 기록은 사회사업 과정이 원칙대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도구이며
윤리적으로 실천하였는지 점검하는 근거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사에게 자기 실천 기록은 책무이다.
2) 또한, 사회복지사의 기록은 당사자의 권익옹호와 자기결정권을 위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의 기록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작성한다.
사회복지사가 작성한 기록을 당사자와 공유함으로써 '중립과 객관'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사업가는 한계가 있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록을 당사자(관계자)와 공유함으로써
한계를 인정하고, 그만큼의 시선을 인정받습니다.
당사자와 기록 공유가 사회사업 기록의 안전장치입니다.
첫댓글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약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 약자라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사업가 기록이 당사자의 권익옹호와
자기결정권을 위한 도구라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특히 의사소통에 일부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기록이 당사자의 권익옹호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 같습니다.
강민지 선생님 발표 후 질의응답 때 했던 답변도 생각납니다.
당사자의 강점을 어떻게 잘 찾는가에 대한 질문에
공부와 훈련으로 다듬어진 시선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색안경을 쓴 것처럼 강점만 다른 색으로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주에서 많이 공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민지 선생님 말씀이 참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