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 vadis, Domine?
원형준 신부
Quo vadis, Domi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묻는 우리의 실존Existenz을 베드로가 대신 주님께 묻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품 안에 자식들도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고, 주어진 삶의 후반부를 달릴 때 즈음이면, 명확하고 분명한 길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삶의 길이와 그 삶의 깊이는 꼭 비례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삶에서 갈피를 못 잡고 어영부영하는 태도는 한 개인의 실존을 넘어 인간의 실존으로 치닫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혼란스럽고 흐릿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코로나COVID-19 감염증 사태를 겪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하는 ‘신천지’)의 다대오 지파나 사랑제일교회를 통해 확진가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질문하게 됩니다. 이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이번 1학기 신학원에서는 유사종교연구라는 제목으로 “‘종교가 아닌 집단’의 맹신적인 믿음을 어떻게 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유사종교(pseudo-religion)는 종교가 아니면서도 종교적 형태를 취한 집단을 일컫습니다. 현대 종교학에서는 ‘유사종교’이라는 어휘 대신 ‘가치중립적이고 학문적인 표현’으로 “신종교”라고 지칭합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일선에서는 학계의 주장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사종교로 인한 피해는 실로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천지의 경우에는 선교를 위해 거짓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가르칩니다. 당사자들은 친구와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사람이라면 이같은 반복된 거짓말과 위선적 행동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신천지에서는 자신과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세뇌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신천지 피해 당사자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말씀공부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의 성경공부는 입시학원처럼 성경의 핵심을 뽑아서 족집게처럼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성경 전제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만희 총회장의 신비체험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말씀을 받아먹은 이’가 총회장이고, 그가 바로 “보혜사”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가 가르치는 성경풀이가 모두 합당하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일정 부분을 조합하여 그들만의 교리를 세우고 다른 모든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입시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신천지와 같은 유사종교에 빠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언론보도를 들으신 분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셨을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그 행복은 매순간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에서는 숱한 어려움을 더 자주, 또 더 많이, 더 깊이 접하게 됩니다. 삶을 뒤흔들어 놓는 사건은 아니더라도 자신에 대한 이해나 여러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할 때, 기질적으로나 성격적으로 심리적 자원이 적고, 가정에서 갈등이나 무관심, 혹은 소외를 경험할 때 등등. 유혹자들이 이끄는 길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나 많습니다. 힘든 순간 누군가가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준다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길로 향하게 됩니다.
유사종교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이들도, 결국 자신을 찾고, 진리를 발견하여 행복한 삶을 희망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잘 살고 싶어 했고,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점을 이룰 수 있다고 실제로 믿고 있었습니다. 가입 당시에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야 할 일(선교 등)이 늘어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포기해야할 것이 더 많아집니다. 안타깝게도 포기하는 대상에는 자신의 삶을 비롯해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가족도 포함됩니다.
‘유사종교가 주장하는 진리’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선포하는 진리’의 사이에서 여러분은 어디로 향하고 계시는지요? 유사종교 피해자들의 맹목적 믿음을 가만히 들으면서, 맹목적으로 신앙생활 하시는 몇몇 신자 분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그 사이,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들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다르면 무엇이 다른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이제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물어야 합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합니까?”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이뤄주는 믿음을 넘어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 말씀대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좁고 험난한 길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마태,7,13. 루카13,24).
어쩌면 삶의 끝자락에서 주님의 길을 찾고 더 사랑하려고 애쓰는 신학원생 여러분에게, 그리고 유사종교에 투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7,14)
남들이 가지 않는 그 길에서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만나길 희망하며….
신학원 여러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