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물 탐방
지금 아니면 언제!!
-신학원생들의 마음을 모아모아 홍경완 메데리코 신부님을 만나러 go go!!-
이런 길을 걸어오시다!
1985.03.01~1994.02 광주 가톨릭 대학교
1994.02.05 사제 서품
1994.02.05~1996.02.02 월평성당 보좌 신부
1996.02.03~2006.02.28 독일 뮌휀 예수회 철학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2006.01.10~2013.06.30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부
2013.07.01~2020.02.28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신부
2020.03.01~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2020년 5월. 1학기 신학원 공통 수업인 ‘그리스 철학과 神’을 강의하기 위해 대구에서 내려오시는 신부님의 강의는 거리만큼이나 우리에게 긴 울림을 남겼다.
그래서 7월 30일 오후 4시, 신학원에서 우리는 다시 신부님을 뵈었다.
프롤로그
“인간의 틀로 규정할 수 있는 하느님은 우상이니 깨부수라!”
‘그리스도교 철학’과 ‘그리스 철학과 神’을 강의하시며, 우리의 생각을 뒤엎고, 올바른 신관을 고민하게 하신 신부님의 수업은 그야말로 경탄이었다.
지식과 통찰의 내공을 지니신, 그래서 존경은 했지만 ‘가까이 하기엔 먼 신부님!’ 그러나 수업 회기가 거듭될수록 철학 교수로서의 냉철함 이면에 인간에 대한 겸손과 관대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수업의 몰입은 최고였다.
신학원 2년은 하느님을 알고자 노력한 심지 굳은 단단한 시간들이었다.
수업의 시작과 마무리에 “질문 있나요?” 하신 신부님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던 궁금증을 모아 강의실 밖에서 신부님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편집부: 신부님, 안녕하세요. 3주 전 종강 때 뵙고, 방학임에도 부산에 오셔서 소식지 인터뷰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 저도 감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갑고요!
질문1: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고민한 것은 사제이며, 철학자시고, 신학대학 교수이신 신부님께 굳어진 머리로 어떤 생생한 질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신부님께서 가끔 “머리를 빠마하는 데만 쓰지 마라!” 하신 충고도 기억나고 해서요. (일동 웃음)
수업의 시작과 끝 무렵 “질문 있습니까?”라는 신부님의 물음에 헛웃음만 짓는 저희를 바라보며 신부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신부님: 음…처음에는 질문을 못하다가 후반쯤에는 질문을 간간히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철학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죠.
“질문 있습니까?”란 던짐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었어요. 하나는 질문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수동성을 깨고 자유스럽게 궁금증을 나누자는 거였고, 또 하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의미였었죠.
자신에게 끓임 없이 묻지 않는 신앙은 맹목이거나, 왜곡된 신앙으로 가기 쉽거든요.
질문2: 올해 2월까지 부산가톨릭신학대학 학장님으로 계시다가, 3월에 대구가톨릭신학대학으로 소임지를 옮기셨습니다. 물론 신학생의 감소로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흰머리와 주름살의 훈장을 얻은 이곳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교차했으리라 짐작됩니다. 14년의 고향과 같은 거처를 옮기시며,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으셨는지요?
신부님: 낯설게 느껴졌다기보다는…순명의 버거움이 있지요.
“가라!” 안 갈 수도, 뻗댈 수도 없지 않나요?
사제가 될 때 하느님께 두 가지 서원을 하는데 평생 독신으로서의 몸의 봉헌과 또 하나는 의지에 대한 정신의 봉헌인 ‘순명’이지요. “가라!”하시면 가야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지만 가서 내가 그 자리에 있어 줄 때 그들(신학생)에게 작은 기둥하나 되어 줄 역할은 하겠다 싶었죠.
질문3: 올해 초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불안과 고립감의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희도 개강이 연기되며 계획된 일상이 정지당했을 때, 평소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평범했던 일상이 그립기까지 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신부님: 아! 일상이 참 컸구나. 가장 평범한 것의 위대함을 느낀 시간이었죠.
그야말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대구 한 복판에서 낯섦과 단조로움을 함께 마주했던 시간이었죠.
일상성의 신앙을 생각했어요. 즉 삶과 분리되지 않는 신앙이어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 늘 얘기했듯이 내 이미지 속의 하느님이 아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신학하기를 해야 해요. 아등바등한 이 일상의 부딪침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신학하기이며, 같지만 새로운 매일을 살아가는 신앙의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질문4: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바이러스 하나에 세계가 들썩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으로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19 극복 이후 새로운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살아가면서 가끔 예기치 못한 상황에 허물어질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삶의 무게에 눌릴 때가 있으셨나요? 그런 때 신앙의 진리를 지키며 사는 지혜와 신부님의 삶의 철학도 궁금합니다.
신부님: (잠시 생각에 잠기신 후) 이현주 목사의 에세이 중 “돌아보니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글이 생각나네요. 우리 신앙의 눈은 근시안적이어서 당장은 볼 수가 없어요.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 돌아보면…그때는 알 수 없었던 고통이 은총이었음을 느낄 때 스스로 다독이며 위로할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유학 시절의 그 힘듦이 자양분이 되었고, 토양이 되었구나 느끼곤 해요.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치 않죠. 허덕일 때, 그때는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후에 더 큰 의미로 돌려주시리라 믿는 것이 신앙이죠. 지혜란 그런 거죠. 이 불분명한 무게 뒤에 분명 은총이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이 살아갈 에너지를 만드는 것 같아요.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 아닌 것이 없음을….
질문5: 작년에 은경축(2019)을 지내신 것을 기억합니다. 좀 진부한 물음일 수도….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기 쉬운 저희도 어떤 한 사건을 만난 뒤에 신앙이 굳건해지기도 합니다. 25년 사제로 사신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이 길을 흔들림 없이 걷게 한 카이로스 시간으로써의 사건이나 추억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현재를 긍정하며 살아가게 하는 신부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신부님: 하하하! 흔들림 없이 안 걸었고 늘 흔들렸어요. 휘청 휘청거리며….
그럼에도 넘어지지 않게 일으켜 세우셨죠. “됐다, 고마 일어나라.” “퍼질고 있다가 나온나!”하시는 소리를 자주 들었죠.
어떤 사건이나 추억이라기보다는 어릴 적 순수했던 오롯한 그 믿음이 가끔 떠올라요. 그리고 유학 시절 힘들고 지칠 때면 수업을 마치고 뮌헨에서 밤 10시 반 기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로마에 도착해요.
같은 길을 걷는 동기나 동료 신부들과 만나 무덤덤하고 소소한 일상을 같이 며칠 보내고 오죠. 그 작은 의지나 함께 한 시간들이 만들어준 힘으로 몇 달을 그렇게 몇 년을 살았죠.
힘들 땐 긴장된 나에서 벗어나 ‘함께’ 라는 넓음에 환기될 여유를 가지는 것이, 흔들릴 때마다 덜 허우적거리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형제나 사건을 거쳐 그 안에서 되찾게 해주시는 신비이신 하느님입니다.
질문6: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듣고 싶은 질문입니다. 학문하고, 강의하시며 사제를 양성하는 사명 외의, 일상에서 또는 문득문득 자연인 홍경완으로서 행복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요?
신부님: (환히 웃으시며)
먹짜!! 맛있는 것 먹을 때죠. (와~~저희랑 같으시네요.)
미각이 좀 발달된 것 같아요. 음식 재료의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죠. 집중? 맛있는 음식이 입 안 가득 퍼질 때, 그 미각에 행복을 느낍니다.
질문7: 신부님, 역으로 저희들에게 질문하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신부님: (좀 난감하신 표정 후,)
이거는 어렵다. 수업 시간에 질문 마이 했지요… 통과!
질문8: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랜 기간 신학생을 가르치고 사제를 양성하는 교수신부로서 평신도, 특히 저희에게 Doing하라고 하셨는데요.
신학원생들에게 신부님의 ‘신학 하기’를 간단히 말씀해 주시고, 졸업 후 각 공동체로 돌아가는 저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삶의 주추가 될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부님: 30대 때 독일에서 신학 할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 보화와도 같았죠. 앞선 교회를 바라볼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인데, 그 안에서 액션이 빠진 신앙의 본질만 남은 맛을 봤죠. 이제 우리도 껍데기는 빠지고 교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보다는 ‘성찰’과 ‘쉼’ 중심으로 옮겨, 신앙이 꿈틀거리는 역할을 해 주었음 해요. Doing을 현장에서 신학하기로 초대하는 역할.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예수님의 내밀한 만남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먼저 맛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속으로 누군가를 초대해 진짜 신앙의 본질을 찾았으면 해요. 참된 활동은 하느님 안에서 찾는 힘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껍데기는 가고 질적으로 교회가 더 풍성해질 수 있겠지요. 코로나19가 정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에필로그
인터뷰를 끝내고,
문득, 욕망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참 불순하게 사용했다란 생각이 들었다.
“순명하기가 갈수록 어렵다.”하신 담담한 고백은 세상사에서 해방된 오염되지 않은, 자유로워진 고귀한 욕망하심을 느끼게 했다.
사제나 수도자의 순명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순명 앞에서 나는 늘 내 속의 욕망과 저울질하지 않는가. 거짓 순명, 척한 순명 자기만족의 순명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 수난의 잔, 그 영광의 잔을 높이 든 복된 사제를 뵌 기쁜 날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에 귀한 답을 주신 홍경완 신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외 번외 질문에도 진지한 답변을 주셨는데…
지면에 다 옮기지 못함에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