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위기의 시대를 살며
한윤식 신부
지난 해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된 이후, 2020년 8월 현재까지 많은 나라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의 발발 초기, 지역감염 확산에 대한 각국 정부 당국의 안이한 태도와 대응은 분명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했습니까? 잘 알고 있듯이, 금년 1월 중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정부의 신속한 대처와 높은 시민의식의 발휘 속에서 지역감염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선진국이라 불리지만 지역감염 확산을 차단하지 못하여 자국 내에서 엄청난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코로나19 사태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로 인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중순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와 이를 통한 전국적 차원의 지역감염 확산으로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종 국내 언론 매체를 통해 살펴보면, 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그들 중에는 추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추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 이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코로나19 발발 초기,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꼼수를 쓰는 마스크 중개상들과 판매업자들; 여분의 마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총 동원하여 여기저기서 마스크 사냥에 나선 이들; 아무런 증상이 없으면서 1339 콜센터로 전화해 자신에게 감염 증상이 있는 것처럼 말하며 장난질을 하는 이들; 중국에서의 코로나19 발생과 확산 소식을 접하자 중국인 유학생들을 마치 바이러스원으로 생각하며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 이들; 코로나 19 확산으로 더더욱 살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린 많은 이들의 힘든 처지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의 건강만 챙기는데 급급한 이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염되어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킨 이들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 이들;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코로나 확진자 격리 시설이 생긴다고 데모하는 이들; 보이스피싱과 사기 행각에 나선 이들;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고, 방역이 문제라고 줄곧 정부 탓만 하는 이들; 가짜 뉴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 확진자와 접촉한 후 자가격리 상태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를 활보하며 다른 이들을 감염시킨 이들; 집단감염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회나 모임을 강행하는 이들; 코로나19 감염 확진 판정을 받고서도 자신의 동선을 숨기거나 거짓을 말하며 보건당국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하는 버스기사의 요청에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 정치적 목적으로 정부가 자신들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 테러를 가하며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생 증원이라는 정부 정책의 철회를 주장하며 환자를 볼모로 집단 휴진과 파업에 나선 의사들, 이런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와 반대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두 시간만 입고 있어도 녹초가 된다고 하는 방호복을 장시간 착용하고 병원 등과 같은 의료시설에서 힘든 가운데서도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을 돌보는 많은 의료인들; 개인 병원을 닫고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 현장으로 달려간 많은 의료인들; 방호복에 노출된 이마와 뺨, 볼 그리고 코에 반창고나 패드를 붙이고 일하는 자원봉사 간호사들;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일손이 부족한 의료시설로 가는 전직 간호사들; 자신이 가진 마스크들을 모아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한 아파트 주민들을 방문하며 나누어주는 이들; 마스크 생산 공장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원 봉사에 나선 이들; 재봉기술을 이용해 직접 마스크를 제작하여 방역작업자나 독거노인들에게 나눠주는 이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임대료를 낮추거나 아예 받지 않겠다고 하며 착한 임대료 운동에 나선 상가 건물주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돼지 저금통을 털거나 성금을 보내는 아이들; 대구 지역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마스크 40개와 현금 100만이 든 비닐 봉지를 의경에게 전달한 기초생활 수급자 할머니; 파출소에 마스크를 두고 간 한 장애인과 그 소식을 듣고 나눔과 기부에 동참한 많은 이들; 자기 집으로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쪽지를 남기고 비닐봉지에 비타민이나 마스크 혹은 손세정제 등을 넣어 두는 이들;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 소주 제조에 사용할 알코올을 줄이고, 소독제 제조에 사용하도록 알코올을 시당국에 기부하는 기업가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감염 확산을 막는데 도움을 주는 이름없는 수많은 시민 등등이 그들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의 국내감염과 지역확산의 위기 속에서 2020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와 폭우로 인한 수많은 피해가 채 수습되기도 전에 다시금 코로나19의 대유행이라는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한 사람의 진면목은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고 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이가 있다면, 또 자신이 성숙한 사회인이자 지성인임을 자부하는 이가 있다면, 이 위기의 시대에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믿는 ‘나’ 사이에 ‘남다름’이 없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한다 하여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남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 ‘남다름’의 또 다른 이름이 ‘그리스도인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