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적어 보는 일
언젠가 쉰 두살된 남자가 나에게 상담을 하러 왔다.
그는 완전히 절망하는 듯 했다.
'이제 끝장입니다'
라고 말하며 평생동안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버렸다고 한탄했다.
'짱그리 없어졌습니까'
하고 내가 되물었다.
'깡그리'
하고 그도 되풀이 물었다.
'이젠 끝장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졌어요. 희망마저도..... 새 출발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요.'
나는 그에게 동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두운 그림자속에 마음이 빠져들어, 인생관이 바뀌고 희망마져 퇴색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개가 그렇둣이 그의 왜곡된 생각, 막연한 절망 속에는 아직도 뭔가 많은 것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종이를 가져와서, 아직 당신에게 남아있는 재산이 뭐 없나 적어보도록 합시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까 말습드렸둣이 저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좌우간 적어 봅시다. 부인은 살아 게시죠?'
'물롬이지요. 제 아내는 참 휼륭합니다. 결혼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불평 한마디 안합니다.'
'좋습니다. 그것을 적지요. 훌륭한 아내라... 그리고 자식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있습니까?'
'있지요. 셋이네 모두 영리해요. 그 애들은 제게와서 '아버지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우리는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라고 말하곤 한답니다.
'그러면 그 두번째 재산이 나왔군요. 힘이 될 사랑스러운 세명의 자식들. 그럼 친구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훌륭하고 의리있는 친구들이 몇명 있어요. 도와주겠다고들 하지만 그 친구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여간 이것이 세번째 재산입니다. 의리있고 도와주겠다는 친구들. 다음은 당신 자신에 대해 알아봅시다. 당신은 이제껏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정직하게 살아 왔습니다. 늘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고요'
'좋습니다. 네번째 재산을 적습니다. 정직. 그럼 건강은 어떻습니까?'
'걱정 없어요. 몸은 아주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석번째 재산으로 적어봅시다. 좋은 건강'
이렇게 나는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자 그러면 우리가 적은 행복을 모두 모아 봅시다.'
1. 훌륭한 아내
2. 힘이 될 사랑스러운 세자식
3. 훌륭하고 의리있는 친구들
4. 정직
5. 좋은 건강
6. ...
7...
나는 이 쪽지를 테이블 맞은 편에 있는 그에게 전했다.
'여길 보세요. 선생은 아직도 여기 적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저는 그런 것을 전혀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져 본 적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형편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군요.'
그는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새 출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 빈센트 빌)
사람들은 어떤 일이나 쉽게 단정해 버리기를 좋아한다.
그 결과 막연히 절망하고 막연히 기대한다.
그런데 그런 막연한 절망과 기대에 속아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면 실제 이상으로 크거나 작게, 어렵거나 쉽게 느껴져 일을 그르치기 쉬운데 매사에 하나하나 적어보면 정리가 돼서 실제 모습과 사정이 보이고 생각지 못한 것도 새로 나타난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막다른 경우나 100% 틀림없다고 확신이 가는 경우라도 마음속 계산으로 담정해 버리지 말고 그 일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 절망적인 면과 희망적인 면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찾아서 종이에 적어보는 것도 세상살이의 큰 지혜중의 하나다.
-박석원의 함께 나눈 행복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