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다섯째 날. 마지막 의뢰
✼함께 읽을 말씀 : 누가복음 23장 46절
✼함께 부를 찬송 : 복음성가 202장(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연합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의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가장 처절한 기도이자 동시에 가장 완벽한 믿음이겠죠. 그 누가 죽음까지도 의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 마감이 거룩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마지막 숨결까지도 하나님께 의뢰하시고 그 숨을 멈추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주님의 숨이 멈추는 시간부터 하나님의 숨결이 온 땅을 덮습니다. 생명이 꺼진 자리에서 모든 생명을 살리는 구원이 시작된 것이죠. 성경이 기록하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적인 행위가 멈출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 13:9)고 권면합니다. 인간적인 시도가 멈춰지고 가장 약하고 무방비의 시간, 즉 하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까닭은 그 영혼이 당신의 손에 있다가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께 넘겨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분리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다섯 차례에 걸쳐서 당신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당신 안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요 10:38; 14:10,11,20; 17:21,23). 즉 주님께서는 생전에 유지하던 아버지와의 연합이 죽음으로 깨지지 않기를 기도하신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단순한 청원을 넘어 삶 전체를 드린다는 뜻이 됩니다. 저는 이보다 더 위대한 기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죽기까지 사명을 다 마치고 그 삶 전체를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감탄하실 만한 기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의 삶과 더불어 그의 마지막 기도까지 배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의 죽음까지 배우는 것인데(빌 3:10), 그것은 바로 이 기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연합이 살아서나 죽어서도 유지되는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체임을 주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만 있으면 아버지의 품에 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게 사람들이 지닌 죄의 본성입니다. 아버지와의 연합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만 구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처럼, 우리는 그리 세상을 삽니다. 그러나 아버지 없는 아버지의 것은 소멸됩니다. 탕자가 재산을 모두 탕진한 것처럼 말이죠(눅 15:14). 결국 이 비유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에 거하는 것이요 아버지와의 연합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떠합니까? 아버지의 집에 머물기보다는 아버지의 재산만 달라고 아우성이지는 않습니까? 구원은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것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말이죠.
세례 요한의 제자가 주님께 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머무는 곳에 자신들도 머물기를 원합니다(요 1:38). 바로 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의 연합이 제자의 덕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은 진정한 제자의 노래와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