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회복을 위한 두이레 특별새벽기도회)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순례의 길 / 인내(129편)
❍말씀 : 시편 129편 1-8절
❍찬송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찬송가 337장)
❍기도 : 김순희 권사
순례의 길은 그 자체로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검질긴 인생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진 세월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수치를 당했습니까? 오늘 시인은 그런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처절하게 표현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1절),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3절)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멸망부터 포로시기까지 그들이 당한 수치를 다 기록하자면 끝도 없이 써내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어둠의 시간을 진득하게 견뎌냅니다. 그것이 인내죠. 여기서 인내라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함’ 혹은 ‘끈질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의 줄을 끊으시고(4절), 그 세력이 지붕의 풀과 같이 마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6절). 이것은 인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는 그저 잘 참고, 견디고, 버티는 인간의 능력인가요? 시인이 말하는 인내는 그것 이상입니다. ‘무조건 견디면서 세월이 흘러도 판에 박힌 것 같은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는 것’이나, ‘체념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시인의 인내는 하나님 때문에 비루한 처지에서도 담대하고, 생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독초는 씹을수록 독만 나오고, 상처는 곱씹을수록 더 아픕니다. 인내는 그런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이 말하는 인내(ὑπομονή)는 ‘그분 아래에 머무는 것’이란 뜻입니다. 즉, 인내는 내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 머물며 주께서 견디게 하시는 주의 능력인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례의 길을 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내를 드러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해진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129편의 시인은 자기가 당한 수많은 어려움을 열거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어찌하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무슨 찬양이고 이것이 무슨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일까 싶지만, 이런 일을 당하여도 그 순례를 멈추지 않는 것 자체가 인내요, 거기에서 넘어지지 않고 기어이 순례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폴 굿맨의 말처럼 인내는 저력(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우려내는 것이고, 그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순례의 길을 필연적으로 비포장도로를 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흔들린다고 망하는 길은 아닙니다. 인내는 그 때에 제대로 작동됩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님이 계심을 믿고 평안한 것이요, 주님과 함께 기어코 목적지에 도달하겠노라는 영적인 의지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참지 못할 일들을 참게 하시는 기묘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이 매를 맞고, 돌에 맞아가면서도 그 전도자의 일을 감당한 것 자체가 바로 그 인내를 보여줍니다(cf. 고후 11:23-29). 결국 우리는 비포장도로에서 더욱더 하나님께 밀착하는 법을 배운다면, 이미 지극한 인내의 경지, 성령이 주시는 열매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