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회복을 위한 두이레 특별새벽기도회)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순례의 길 / 공동체(133편)
❍말씀 : 시편 133편 1-3절
❍찬송 : “여기에 모인 우리”(찬송가 620장)
❍기도 : 진기월 권사
매일 새벽에 행하는 순례의 마지막 계단에 올라선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감사와 축복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열망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으로 화답하실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의 산 시온에 가까이 당도할 무렵에 비로소 자신의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선 도반(道伴, 길 위의 동료)들을 발견합니다. 시인은 그들과 함께 해온 순례의 시간을 ‘연합과 동거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합니다. 사실 시인이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에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시 120:2),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머무는 자”(시 120:5), “화평을 미워하는 자”(시 120:6). 그래서 시인은 비위가 상했고, 자리를 털고 순례의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순례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순례자가 본 주변사람들은 달랐습니다. 함께 연합하고, 동거하였는데 그것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의 구성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인이 본 것은 그 연합과 동거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소명이 서로 어울린 것입니다.
시편 133편은 우리의 순례가 개인적인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며, 그 순례공동체를 통해서 더 발전될 수 있음을 확인합니다. 성경은 고립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하나님은 공동체에 속한 자들과 일하십니다. 그래서 순례는 그 막바지에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함께 연합하고 동거하는 기쁨을 아는 자들에게 보배로운 기름을 흘려 내리시고, 그들을 새롭게 하는 이슬을 시온에 가득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지금까지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시인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아름답다는 말은 한 것은 그동안 그런 공동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공동체가 함께 어울리는 것의 어려움을 이미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모이면 싸우고 시기하여 끌어내리는 속성이 어느 공동체에나 있었습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서로 안 만나니까 싸울 일이 없어 평안하다”는 말이 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편 133편은 공동체의 가능성을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내리듯이 헐몬의 이슬이 시온 산을 덮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내며 서로를 적셔갈 때에 공동체는 촉촉해집니다. 여기서 보배로운 기름은 원래 제사장을 성별할 때 사용하는 기름으로, 그것이 흘러넘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성별된 사람들(소명을 자각한 사람들)이 많을 때에 신앙공동체는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또한 헐몬의 이슬은 가장 높은 곳에 내린 이슬의 신선함, 깨끗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슬을 은총과 연관시켜 왔습니다(민 11:9, 신 32:2. 호 14:5). 하나님은 그렇게 순전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하나님께 찾아온 자들에게 복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삶에 들어가 동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영생(위로부터 내리는 생명의 능력을 입는 삶)을 허락하십니다(시 133:3). 이것이 오늘 순례의 막바지에 당도한 우리가 받을 복이고, 은총이고,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