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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절정, 영혼의 합일
❍ 시편 134:1-3
• 인사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시 134:3) 아멘.
오늘 본문 3절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 예배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의 삶을 두르고 능력으로 역사하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거처,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능력이 온 땅을 회복시키고, 모든 백성들의 삶을 소생케 했던 에스겔의 환상(겔 47장)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 되고, 내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예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닫혔던 예배당이 21개월 만에 온전히 열리는 첫 번째 주일이며, 지난 2주간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노래’를 묵상하며 회복을 기도했던 그 기도의 마침표이고, 절기를 지키라는 여호와의 명령(레위기 23장)을 따라서 감사함으로 주께 영광 돌리는 ‘추수감사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돌보시고 견고케 하셨던 것처럼(시편 132편) 우리의 인생을 다시 세우시고 이전보다 더 강하게 하시는 은총이 넘치는 날입니다. 모쪼록 오늘의 예배가 여러분의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 회복의 분수령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회고 : 우리는 어떻게 코로나를 통과해왔는가?
저는 지난 한 주간동안 우리 교우들이 코로나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해왔는지 다시 기억하며 기도했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우들 중에는 지난 21개월 동안 잊지 못할 사건을 경험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에서 격리 치료를 받은 분도 계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중증으로 넘어가지 않고 완치되었고,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암4기 판정을 받고 긴 시간동안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완치되어 건강해지셨습니다. 주님이 치료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놀랍고 감사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로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여호와의 기업과 상급으로 우리에게 돌려보내시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순례자의 삶을 사는 모든 교우들의 일상이 복되고 형통하리라 믿습니다(시 128:2).
또 어떤 분들은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셨습니다. 퇴직, 진급, 사업장 개업 등 삶의 자리가 변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시작부터 함께 하시어 날마다 평강으로 지키시고, 계획하는 모든 과정을 지키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오랫동안 괴롭혔던 문제들을 깨끗하게 털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강하게 일으키시리라 믿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또 어떤 분들은 잃었던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더 열심히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평안을 경험하고 있으며,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허락하시어 부모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차마 말씀드리지 못한 내용들도 상당합니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예산이 줄지 않았고, 또 더 깊은 영성을 체험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이렇게 통과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연이 다 눈물 나고, 절절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았지만, 목자가 되신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지팡이와 막대로 지켜주시니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께 나아가며, 변화된 삶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기도하며 바라기는 모든 교우들의 삶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이 가득하기를 마음 모아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며, 동행하신 여호와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시어 이곳에 오시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아멘.
• 우리가 걸어온 순례의 길 - 복으로 점철된 은총의 길
지난 2주간 우리 교회는 주일예배와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묵상하며 하나님께 한 걸음씩 나아왔습니다. 불의한 자리를 털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에서 시작한 순례의 길은 오늘의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섭리와 안전, 행복과 소망으로 함께 하셨고, 겸손히 자신을 벼리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불태운 순례자의 순종에 다윗에게 허락하셨던 하늘의 복을 맹세하며 약속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시간이고, 은총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과정을 마감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기 앞서서 먼저 시편 128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고행인줄 알았던 순례의 전(全)과정이 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 중대한 지침이 128편에 있고, 거기에서부터 오늘 본문의 의미를 더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28편에 등장하는 복은 세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바라크 ברך)이요,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어 평안하게 하시는 것(아쉬레이 ירשׁא)이며, 셋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형편을 풍성하게 만드시는 것(토브 טוב)입니다.
먼저 128편 1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그 자체가 복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복이라는 단어는 아쉬레이(ירשׁא), 즉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례 길에 오른 자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 수고한대로 먹는 복과 형통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복이란 단어는 아쉬레이(ירשׁא)이고, 형통이란 단어는 토브(טוב)입니다. 이게 또한 복입니다. 하나님은 순례 길에 오른 자에게 형통으로 갚으십니다. 그런데 4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 128:4)라고 말할 때에 복이란 단어는 바라크(ברך), 즉 영혼에 충만한 은총입니다. 1절과 4절은 거의 동일한 구절 같지만 사실 그 맥락이 다릅니다.
다소 복잡한 내용이지만 풀어서 설명하자면, 처음에 사람들이 순례의 길에 오를 때에는 삶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을 소망하며 시작합니다토(토브 טוב). 그러다가 어느 정도 순례의 길이 무르익으면 그 길에서 주시는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아쉬레이 ירשׁא).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충만해지고, 온전해지는 복에 들어갑니다(바라크 ברך).
그래서 순례자들에게는 이 모든 복(바라크, 아쉬레이, 토브)이 임한다는 게 바로 시편 128편입니다. 시인은 복이란 단어의 배치를 달리하면서 하나님의 복으로 점철된 ‘순례의 비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정리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순례의 길은 하늘의 복으로 점철된 은총의 길이고, 하나님께서 그 복으로 모둔 순례의 과정을 두르신 영광의 길입니다.
• 순례의 절정, 영혼의 합일
자, 그럼 오늘 본문, 시편 134편으로 돌아와서 1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34:1)
여기서 우리는 뜻밖의 단어를 만납니다. ‘여호와를 송축한다.’
우리는 그동안 축복한다는 말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복의 선언이요 약속이고,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복을 기원하는 것을 축복(祝福: 복을 빌다)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뜻을 지닌 송축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킵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이 용어가 굉장히 낯설고 무례하다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단어를 풀이하는 것에서부터 본문의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송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크(ברך)입니다. 이미 들어보셨죠?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하나님의 3가지 복중에 하나입니다. 원래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하신 일을 묘사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한 충만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에서는 그 복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주께서 주신 면류관을 주의 보좌 앞에 던지는 이십사(24) 장로들의 행위와 같은 것이고(계 4:10),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 자들이 자기가 행한 놀라운 일들은 모두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고 겸손하게 찬송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송축(바라크 ברך)한다고 했을 때에, 이것은 하나님께 무릎 꿇고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전심으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순례가 송축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고, 하나님 때문에 견뎠으며, 하나님 때문에 즐거웠고, 하나님 때문에 완수했다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룬 자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그래서 순례의 절정은 바로 여호와를 송축하는 ‘영혼의 합일’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렇게 여호와를 송축(바라크, ברך)하는 자에게 거꾸로 여호와께서 복(바라크, ברך)을 주십니다. 본문 3절에 등장하는 복도 바라크(ברך)입니다. 즉, 영혼의 합일을 이룬 자는 하나님을 송축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은총을 함께 받게 됩니다. 이게 우리의 예배에 나타나는 은총의 순환이고, 교통하심입니다. 주께 드림이 곧 주께 받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감사를 드리고, 또 은혜를 받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로 함께 하십니다. 이 과정이 모두 복됩니다.
여호와를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올리는 복이고, 하나님은 그 찬양을 흠향하시고 그 영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이것도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삶으로 받아내는 것도 복이고, 우리는 그 말씀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이것도 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엎드리는 것도 복이고, 그런 자들을 축복하며 능히 감당할만한 힘을 주시는 것도 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올리는 송축의 내용과 하나님께서 다시 하늘의 충만함으로 갚으시는 복이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예배는 올리는 복과 내려지는 복이 순환되고, 더 충만해지는 복의 교통하심이요, 영혼의 합일과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시인은 바로 그런 예배를 여호와의 성전에서 드립니다. 그것이 순례의 전(全)과정을 경험한 예배자들이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는 그 자체가 복이고, 또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이 여호와의 은총이었다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도 복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하늘의 복으로 두르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네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실지어다.”
• 주의 성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복이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모든 종들에게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명령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명령을 따라서 충만한 감사로 여호와의 이름을 높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어찌 은총으로 화답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모든 예배를 마치고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우리의 두 번째 관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순례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7일간의 절기를 지킨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과정 또한 중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는 이야기만 했는데, 이제 내려오는 길은 어떠할지 말해야 되는 시점입니다.
앞서 제가 하나님께 올라갈 때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복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순례의 길에 오를 때에는 삶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을 소망하며 시작합니다(토브 טוב). 그러다가 어느 정도 순례의 길이 무르익으면 그 길에서 주시는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아쉬레이 ירשׁא).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충만해지고, 온전해지는 복에 들어갑니다(바라크 ברך). 그런데 순례의 절정에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합일되고 충만해진 사람은 그 내려가는 길이 평안해집니다. 예배를 드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그래야 합니다. 두렵거나, 복잡하면 충분히 하나님과 교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일상을 형통으로 두르실 것입니다. 결국 순례의 길에서 소망하고 경험한 것들이 내려오는 길에는 거꾸로 작동하게 됩니다. 저는 그게 예배자의 힘이고, 우리가 소망하는 복된 삶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고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의 삶에 그런 충만함과 평안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통함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런 복으로 가득한 인생을 꿈꾸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부르실 때에 그런 복을 명하셨고, 그런 복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장면이 그러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이때에 등장하는 복이라는 단어도 바라크(ברך)인데, 하나님과 영혼의 합일을 이룬 너 아브라함은 복이 되고,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에 복이 되라고 명하시고(하나님과의 영혼의 합일을 이루라), 그 복이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으로 번져나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복을 받은 사람은 결국 그 마음이 평안해지고, 그 삶이 형통해집니다. 이삭의 경우 바로 그런 형통이 절정에 이르러 그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고, 그의 집을 견고하게 하신다 말씀하실 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올린 청원 또한 이런 복을 의미합니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7:28-29)
이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청원한 복 역시 바라크(ברך)인데, 다윗은 그 복을 주 앞에 영원히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다윗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머무는 복이고(시 23:6), 거기서부터 환란가운데에도 평안한 복, 그의 삶에 하늘의 것으로 가득 채우는 형통의 복을 받아 누린 것입니다. 여기서 ‘아멘’합니다. 그리고 오늘 기도하십시오.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그렇게 영혼의 합일을 이룬 예배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게 대우하시고, 돌보십니다.
그렇게 여호와와 영혼의 합일을 이루고, 고난 중에도 마음에 평안을 얻은 자, 곧 복(아쉬레이 ירשׁא)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복)하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에서 여호와가 지키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도우십니다. 그리하여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며 들에 풀이 무성하여 가축은 물론 네가 먹고 배부르게 하십니다(신 11:10-15).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며 그 영혼이 충만한 사람, 하나님 믿고 환란 중에도 평강한 복 있는 사람의 길을 돌보시고, 반드시 형통하게 하십니다. 저는 우리의 예배가 그런 복으로 들어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성경이 말하는 모든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주의 보혈이 우리에게 복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이 복의 선언이자, 복의 궁극적인 실현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어로 복이란 의미를 지닌 ‘Bless’와 피를 뜻하는 ‘Blood’는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점에 착안하여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주의 보혈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복의 자리에서 끊어진 우리를 복의 근원지인 시온으로 연결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고 영혼의 충만함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시편 133편의 마지막 구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라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혼의 합일을 이룬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 삶에 들어가 동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영생(위로부터 내리는 생명의 능력을 입는 삶)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잃어버린 복을 회복하는 과정이요, 그 충만함과 평안함과 형통함을 누리는 인생, 위로부터 내리는 생명의 능력을 입는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며, 평생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는 복의 시작이요, 앞으로 우리가 경험할 모든 인생은 복으로 점철된 평안이요, 형통이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를 기뻐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바라크)에 복(아쉬레이), 그리고 또 복(토브)으로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