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6>
응답받는 기도, 응답하는 기도 - 내 힘을 빼고 기도하라.
✍ 함께 읽을 말씀 : 사무엘상 7장 6절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기도하나요?”
이는 목회자가 받는 기도에 관한 질문 중 가장 처절한 질문이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 사람은 무력감을 느낀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하고는 다르다. 하고는 싶은데, 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때가 기도할 준비가 가장 완벽한 때이고, 기도가 가장 필요한 때이다. 결국 사람이 무력감을 느낄 때가 하나님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고,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기 때문이다.
사람의 대책이 너무 많으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힘들고, 기도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더 많이 주장하게 된다.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은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에 가까운데, 이미 자기 대책이 앞서니 기도의 영이 막힌다. 하지만 대책도 없고 무력한 자들은 온전히 하나님만 찾게 된다. 그 때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기도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 진다. 이때의 기도는 약할 때에 강함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아울러 이때의 응답이 강력한 이유는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가장 좋은 토양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역사에서 가장 경건한 사람으로 불리는 베네딕도 수도사는 이런 말은 했다.
“마음의 움직임이 입술의 움직임과 조화되고 함께 움직이면 응답받는 기도가 된다.”
마음은 삼천포에 있으면서 입술만 들썩이는 기도는 능력이 없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기도가 같이 움직이는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요, 그렇게 마음과 입술을 일치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응답하는 기도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미스바 사건은 바로 그런 무력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 성회이다. 블레셋은 수백 년간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번번이 블레셋에 패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다에 인접한 블레셋의 무기는 철기였고 이스라엘의 무기는 청동기니 예초에 무기체계가 달랐다. 화력이 다른 국가의 충돌은 그 결과가 이미 예견된 것과 같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후에 금식을 명한다. 자, 이 부분이 중요하다. 지금은 잠시 휴전 중이라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전시상황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금식을 명한다. 금식기도는 생명을 건 기도이자, 내 힘을 빼는 기도이다. 전시상황에 사무엘은 오히려 힘을 빼게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곧 가장 강력한 무기를 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가진 무기로는 블레셋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무력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금식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무기를 장착시킨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새 무기이자 능력이 된다. 당연히 그들은 이후의 전쟁에서 이긴다. 블레셋이 금식기도를 하여 힘이 빠진 틈을 타서 침략하자, 하나님은 친히 나서서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패하게 하신다(삼상 7:10). 그리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까지 다 되찾게 하신다(삼상 7:14). 이게 ‘에벤에셀’(하나님이 도우셨다)이다. 나의 힘을 빼고, 여호와를 장착한 자들의 승리 이유다.
이는 후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다시 재현된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이 침공하였을 때에 금식을 명한 후에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이 기도문을 기억하자. 이게 금식 기도의 정석이다. 가장 위급할 때에, 가장 무력한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옷을 입는 방법이다. 능력도 없고, 대책도 없지만 오직 주만 바라보며 내 힘을 뺄 때에 하나님은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무력한 날에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일을 진행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이고, 그것이 바로 승리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열매이다.
어린아이가 자기 힘을 의지하고 세상에 덤비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분의 손을 잡고 나가면 다르다. 무력감을 느낄 때에 우리는 그 손을 놓지 않는 기도를 할 뿐이고, 우리의 마음과 입술이 일치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