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여섯째 날. 침묵의 메시지
✼함께 읽을 말씀 : 마가복음 13장 24-27절
✼함께 부를 찬송 : 복음성가 149장(주 달려 죽은 십자가)
❍ 3일의 침묵의 의미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다”고 기록합니다(눅 23:44). 빛으로 오신 주님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 빛도 그 힘을 잃어간 것이요, 마치 세상은 창조 이전의 세계 즉 흑암과 혼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cf. 창 1:2). 성자의 숨결이 멎는 순간 세상에 불어넣었던 창조와 생명의 호흡도 멈춘 듯 세상은 일시정지 상태를 보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3일간 머무십니다. 복음서에서는 이날들에 관한 어떠한 기록을 남기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멈춘 시간에는 이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도 없다는 뜻이죠. 세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이 되고,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종결시키는 순간에 그 연한을 마감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세상입니다. 저는 이 침묵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침묵과 혼란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서막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장차 환난이 오면서 해가 빛을 잃고, 큰 혼란이 찾아오게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그 시간 후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결국 흑암과 혼돈 후에 창조가 있었고, 환란과 핍박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임하는 것처럼, 죽음의 침묵과 어둠은 곧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부활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자, 역전의 섭리입니다. 이를 우리 인생에 적용하자면, 우리의 가장 큰 고난은 곧 가장 큰 역사의 서막이 됩니다. 그러니 침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좌절하지 말고, 오늘 이 침묵의 시간에 이 점을 유념하여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 죽음의 시간에 의인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바로 그 순간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마 27:52). 아마도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난해한 구절인데, 한글 성경의 번역이 성도라고 표현해서 헛갈리지만, 이는 구약의 존경할 만한 거룩한 자들을 뜻합니다. 아마도 예수님 이전의 족장, 선지자, 순교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왜 이 시점에 일어났는가 하는 점입니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주님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들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증표로 보는 것이며, 십자가의 보혈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2세기 중엽의 <사도들의 서신>이라는 문서에 등장합니다. 성경이 아니기에 참고만 하겠지만 그 의미가 깊기에 소개합니다. 사도들의 서신에 따르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있는 자들을 일일이 만나시어 그들을 일으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만한 용서와 세례를 베푸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일하셨다는 뜻이고, 세상이 흑암과 혼돈에 빠져 있을 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저 무덤에서 진행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결국 우리의 실패, 어둠, 죽음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들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시공간이 됩니다. 마치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이 일하신 것처럼(단 5:1-6:28), 또 의인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에 의해서 정당성이 인정되는 하늘의 판정을 기록한 기록들(외경 지혜서 2-5장)처럼 말입니다. 그 기록을 잠시 소개합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혜서 3:1-4)
결국 예수님의 죽음, 또 과거 거룩한 자의 죽음은 물론 우리의 죽음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또 다른 평화를 누리며,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경험하게 될 위대한 경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믿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