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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갑작스러운 방송시설 고장으로 인하여 원고를 올려드립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액션 플랜
❍사 62:1-12
• 인사
우리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어찌 흘러가든지 간에 세월은 우리를 어느덧 추수의 계절로 이끌어 왔습니다.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 하였는데, 정말 한가위의 풍성함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가위에도 한가한 마음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이유 있는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고, 대내외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내일에 대한 전망이 어둡고, 이를 자체적으로 극복할 능력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나라 걱정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정황을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근심하기보다는 기도할 것을 요청드립니다. 신앙인은 상황을 묵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을 위하여 또 우리의 기업과 가정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각자의 근심,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맡기시고, 주의 말씀에 마음을 벼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서 쉬지 않고 일하실 것입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액션플랜(행동계획)
오늘 본문에 앞선 이사야 61장에 보면, 주의 영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재 대신 화관을 쓰고,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얻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가 되어 영광을 드러냅니다(사 61:1-3). 그 결과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세우고 일으키게 됩니다(사 61:4). 저는 그 말씀 중에서 ‘오래 황폐하였던 곳’이 다시 세워진다는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오랫동안 황폐하였다는 말은 인간의 희망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거기에 주의 성령이 임하시니 다시 세워지고, 기름지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처럼 주의 영이 임하시니 마른 뼈들이 되살아나는 것이죠(겔 37장).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고, 그 구원의 과정은 성령께서 이끄십니다. 말씀을 통해 그 끝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이 비전이고, 그 말씀에 자신을 벼리는 것이 순종입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말씀을 비전으로 삼아 인생을 계획하고, 성령을 능력으로 삼아 실행하는 자들입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이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걱정하던 일이 은혜의 순간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자,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62장은 그런 회복과 구원의 일들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저는 하나님의 액션플랜(행동계획)이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오늘 제 설교 제목이죠. 다같이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사 62:1)
여러분 성경 1절에 밑줄을 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구원의 백성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액션플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나는 너를 위하여 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이자, 열심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단언컨대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살게 합니다. 아멘?
그럼 이때에 사람은 무엇을 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일이 멈추지 않도록 기도하며 독려하면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하나님에 일하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듣기에 따라서는 참 이상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보고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는 게 무례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그게 순종입니다.
다같이 6-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한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사 62:6-7/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명하셨는가 하면,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자꾸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상기시키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명하신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무례한 것은 아닙니다. 무례한 것은 말씀보다 앞서는 것이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결코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이 너무 은혜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하면, 사람이 열심을 낸다고 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 황폐하였던 땅은 내가 일군다고 기름진 곳이 되지 않습니다. 파도 파도 자갈과 모래만 가득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정말 오래 황폐한 자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면 결과가 다릅니다. 기적은 오직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사람은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기적이 일상이 됩니다. 아멘?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오지랖 넓게 하나님 걱정을 합니다.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다가 쓰러지면 어떻게 하냐? 그런 분들은 이사야 40장을 다시 읽어보시면 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사 40:28)
또 그 하나님은 하나님 바라보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하나님은 피곤하거나 곤비한 분이 아니시며,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피곤하거나 곤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대하시어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래야 우리의 내일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여기서 크게 아멘합니다. 그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마 18:3), 어린 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은 엄마 품에서(동행) 엄마를 믿고(믿음) 엄마에게 맡기는 것(안식)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구원과 회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아멘?
• 하나님의 디자인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가 바로 3절, 4절 말씀입니다.
번저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습니다.
“또한 너는 주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사 62:3)
너는 주의 손에 들려 있는 면류관,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게 굉장한 말씀인데, 성경을 처음 읽는 분들은 이게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해보겠습니다.
도시 곳곳을 지나다 보면, ‘❍❍플라자’라는 장소가 종종 등장합니다. 플라자[plaza]라는 말은 공공의 장소나 ‘광장’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게 원래 성경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플라자, 광장이라는 말은 곧 성벽이 없이 뚫린 공간입니다. 그래서 광장은 외부의 침입에 속수무책인 장소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9장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그런 광장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호위하시니 안전할 것이라고 합니다(슥 9:15). 그래서 플라자는 하나님이 호위하시는 곳이고, 그곳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관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땅,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니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왕관이 됩니다. 즉 그들이 있는 곳은 오래 황폐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호위하시고(보호하시고) 세우신 땅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빛나는 왕관처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9절을 보면, 이제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주의 성소 뜰에서 먹고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디자인하신 은총입니다. 하나님에 손에 붙들린 빛나는 왕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양식으로 풍종한 사람들, 하나님은 그 디자인에 맞게 일하실 것입니다.
너무 중요하기에 다시 설명 드립니다.
원래 광장은 외적의 침입에 취약한 곳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가 그렇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안전하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호위하시니 안전할 것이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궁전이 되고 우리는 거기서 빛나는 왕관처럼 될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손에 붙들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이게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사 62: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버림받은 자, 황무지가 아니라 헵시바와 쁄라라 하리라.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그 바뀐 이름을 타고 하나님의 섭리가 임합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도 그렇고,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도 그러합니다. 사울이라는 청년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새로운 인생을 살 때에 자기 이름을 바울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어둠에 있는 자는 달리 사는 법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달리 살게 됩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이름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하시니 그 존재가 바뀝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액션플랜 세 번째 내용입니다. 버림받은 자, 황무지가 헵시바, 쁄라로 바뀝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는 뜻이고, 쁄라는 결혼한 신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으로 연결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61장의 말씀으로 다시 설명하면 슬픔대신 기쁨이 되고, 주인 없이 오래 황폐한 땅이 주인이 잘 가꾼 기름진 포도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도 그 설명을 이렇게 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다. 아멘?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습니까?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니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니 이렇게 바뀐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구절은 아예 이참에 외우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에 오랫동안 황폐하였고 슬픔만 가득한 인생이라도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리면 새 것이 됩니다. 아멘?
• 거룩한 백성이 할 일
이제 마지막으로 10-12절을 보겠습니다.
10절에 보면, 동사가 다섯 개가 나옵니다.
나아가라, 길을 닦으라,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기치를 들라.
이 말씀은 이제 이렇게 존재가 바뀌었으니, 바뀐 자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믿고 나아가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이 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의 존재가 바뀌었고, 내가 너를 위하여 일하겠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믿고 나아가라, 나아가라. 두 번이나 반복해서 명령하십니다.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하나님 믿고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죠. 제가 지난 금요일 새벽에 이런 행동양식을 ‘이순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고 신뢰하라.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10)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는 광장으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사방에는 적들이 즐비한데, 무방비로 그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호위하시어 불기둥으로 싸매시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실 것이며, 우리를 위하여 버림받지 않을 성읍을 건설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자들을 일컬어서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합니다.
이 말씀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어두운 데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간 사람이다. 여기서 기이하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뜻이죠. 세상이 쌓은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이 호위하시는 성벽이라는 말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신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 믿고 그 걸음을 내딛고, 하나님이 하신 아름다운 일을 선포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리가 버림받은 자리요, 황무한 자리라고 느끼십니까?
그러면 오늘 본문을 몇 번이고 다시 곱씹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길 때까지 읽고 또 읽다가 확신이 들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위하여 쉬지 말고 일하시옵소서”
그러면 여러분의 존재가 바뀌고,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바뀌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헵시바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쁄라요, 하나님이 구속하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거기까지 나아가고 또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