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해도 좋은가?
정치 분야의 빛과 소금
"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한 게 낫다." 이런 말은 신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란 말씀을 정치 분야에만은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나라 안에 사는 이들은 그 나라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에 이래저래 관여하게 된다. 물론 개인 구원과 경건이 조화를 못 이루면 차라리 정치에 무심한 게 낫다.
창조질서 바로잡기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세상정부를 앞세워 사람들이 창조질서를 거슬러 악행하는 많은 일들을 바로잡았다. 이교적인 인신제사부터 가깝게는 노예해방, 인종차별 철폐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끼친 선한 영향력이 다 정치활동에 속한다. 덜 성숙하거나 나쁜 신자, 지도자들은 있었어도 나쁜 기독교는 없었다.
정교일치와 정교분리
정교분리는 정치 권력이 특정 종교를 국교로 지정하거나, 권력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미국은 영국의 정교일치 핍박을 벗어나 종교의 자유를 찾던 청교도들이 세운 국가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비성경적 가치관을 퍼트리려는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한다.
프레임 전쟁
기독교인들 중에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과격한 좌우파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복음적 가치관의 회색 접경지대에서 왔다갔다하다 보면 영적 감수성이 둔해져 여느 세상사람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
분열의 영
"그 사람 우파래!", "그 사람 민주당 지지한다던데?" 신자들끼리 이런 말 한 마디에 갑자기 경색되고 어색해지는 게 정상은 아닌데, 그런 일들이 지금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서서 봐줄 생각은 전혀 없이 무한대치중이다. 분열의 영이 교회를 뒤덮어도 복음은 없고 나만 옳다.
진짜 정치력
한 나라의 대통령은 쉽게 진영 논리에 기대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에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며 나라가 곧 공산화될 듯 염려하는 국민들이 있다. 그들을 진영 논리로 내치고 무시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믿을 만한 정책과 논리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게 정치력이다.
이미지 정치
합리성이 요구되는 정책이 과연 올바르고 시의적절한가에 대한 철저한 관심 없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경우 그에게 얽힌 시각적인 이야기 중심의 이미지에 기댈 수밖에 없다. 동성애가 아무리 잘못되었다고 논증해도 거기에 얽힌 감성적인 이야기 몇 개로 대중들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과 같다.
흑백논리
신자들이 복잡다단한 관점이 필요한 특정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흑백논리식으로 접근하면 서로가 자신들이 성경적 입장을 대변한다면서 소모적으로 분열하고 대립하기 쉽다. 좌파의 주장 안에 우파적 가치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성경적 입장은 신중한 분별이지 단순히 좌우파에 있지 않다.
소비주의의 폐해
자본주의도 차선이지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돈으로 도덕과 사람의 가치마저 재단하고,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소비주의에 매여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기는 비성경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많다.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자체의 도덕성보다 더 확고한 가치관이 없다면 교회 역시 번영복음에 빠지고 만다.
성경적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둔다면, 사회주의는 공동체적 평등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 다 성경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 개인의 자유가 종종 평등을 해칠 수 있어 온갖 종류의 압제에 저항하려는 좌파가 존재한다.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닌 성경적 사회주의 가치는 필요하다.
아무 파도 아니다
좌파가 소외된 자와 약자를 돌아보는 데 주된 관심을 두는 좌파라면 나도 좌파다. 우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고, 친공산주의와 친동성애, 친진화론을 반대하는 우파라면 나도 우파다. 그러나 어느 한 쪽만의 진영논리로 자기 편에 안 속하면 죄다 무차별로 비난한다면 나는 아무 파도 아니다.
지나친 색깔론
지금 한국의 우파는 정부의 정책들을 갖고 조목조목 따지며 애초의 공약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감시하면 될 일을 지나친 색깔론으로 쉽게 진영 논리에 기댄다.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정치적 노력 자체를 공산주의나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일로 치부하려는 건 정치로 풀어갈 일을 이념으로만 대응하려는 오버다.
한 쪽 입장만 견지하면
지금 진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보수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사안에 따라 입장이나 대응이 진보나 보수가 될 수 있고, 국가적 공익 면에서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획일적으로 내내 어느 한 쪽 입장만 견지하면, 공정하게 시정을 요구할 일들에 대해서도 괜히 도매금으로 무시당할 수 있다.
영적 가치 = 윤리적 가치
영적인 가치와 윤리적인 가치는 함께 간다. 기독교의 영적 가치에 유리하다고 해서 불의가 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할 순 없다. 한때의 유익을 위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섣불리 뒤로 물릴 순 없다. 적어도 끝까지 차선이란 전제가 있을 때만 일시적인 차선의 지지가 가능할 뿐이다.
하나님나라 대의
정치 문제에서도 신자가 지켜야 할 기본 태도와 하나님나라 차원의 공정한 대의가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교회 안에서도 각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한다. 진영 논리에 너무 치우치지 않은 건강한 진보 보수의 의견들이 정치적으로 공론화되면서 이땅에 하나님나라가 더욱 올곧게 확장되어가길 바랄 뿐이다.
-안환균, <빛과소금>(두란노) 2019년 8월호 키워드 단상 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