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로잔대회와 관련된 복음주의, 근본주의, 세대주의 논쟁에 대한 댓글...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나누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이번 4차 로잔 대회와 관련해서 본다면 아마도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로 나누는 게 더 분명할 듯합니다. 이번에 로잔이 신복음주의자들에게는 근본주의로,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신복음주의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 걸 보면 그렇게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만 학문성을 추구하며 지적 탐구가 왕성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거센 물결에 근본주의 기독교가 별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대하고 중도적 근본주의 또는 중도적 자유주의 비슷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가운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지성주의적 성향도 함께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 신복음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쩌면 신복음주의 이전의 복음주의가 근본주의로, 지금의 신복음주의가 복음주의로 분류되는 느낌도 있는 듯합니다.
근본주의가 사회적 책임의 문제에 대해 민감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사회 참여가 사회 복음의 맥락에서 사회 구원을 목표로 한다고 보기 때문인 듯한데, 신복음주의는 예수님의 성육신이 보여주신 대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사회 참여와 구제, 정의에 관심을 가진다고 봅니다.
문자주의 등의 특징을 지닌 세대주의가 근본주의와 동일시되는 이유는 이 땅의 기독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영역에서 그동안 세대주의 신학이 보여온 미온적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세대주의가 현세에서도 복음을 실천함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삶에 소극적인 이유는 하나님 나라는 장차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에서나 이뤄지고 그때 가서야 이 땅의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믿어서라고 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과 같은 예언의 성취를 조명해내어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드러내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한 건 맞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여왔기 때문에 사회 구원, 사회 복음을 경계하는 근본주의의 특성이 세대주의에 그대로 투영되어온 것 같습니다.
암튼 이 문제는 칼로 자르듯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근본주의자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세로 마치 하나님이 자기 편에만 계신 듯 거칠고 무례한 언행을 예사로 일삼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정말 반대합니다.
존 스토트가 영혼 멸절설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가 개신교 복음주의계에 남긴 상당히 중요한 긍정적 요소들을 다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거스틴이 연옥설이나 마리아 숭배사상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서 그가 개신교에 끼친 심대한 신학적 업적을 다 무시할 필요는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성경의 무오성과 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충정과 헌신은 귀하게 여기지만, 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인간에게 연약함의 요소들이 있어 성경 해석의 다양성이 용인되어야 할 수 있고, 세상의 불의에 맞서 약자들을 보호해야 하며, 세상의 구조와 형편이 점점 더 악해져서 그렇게 악해지기 전에 복음을 들었다면 구원받았을 영혼들마저 복음에 무감각해질 만큼 지나치게 오염되지 않도록 기독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고 넓히지도 않으려는 완고하고 편협한 모습에는 반대합니다.
그것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만 하려 하면서 뱀처럼 지혜롭기도 해야 하는 더 힘들고 복잡한 길은 외면하는 손쉬운 방향을 택함으로써 목욕물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자초하는 태도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훗날 주님 앞에 서면 많은 근본주의자들이 이미 이론의 여지 없이 하나님이 확정해주셨다고 굳게 믿는 특정 교리주의에 안주하려 했던 그들의 경직된 안일함에 대해 큰 책망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느끼지만, 그에 못지않게 근본주의자들만큼 지옥이나 심판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지 않고, 마지막 종말의 때에 드러나는 시대적 징조들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세상을 의식한 나머지 전천년설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는 무천년설을 따라 깨어 있지 않으려고 했던 복음주의자들 또한 큰 책망을 받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은 근본주의에 더 가깝게, 세상에서의 삶은 복음주의에 더 가깝게 살아가는 것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좁지만 복음적인 생명길을 걸어가길 소망하며, 함께 그 길을 가자고 힘 닿는 대로 주위에 전하며 사는 것이 그나마 이 땅에서 균형을 잡고 사는 신자의 삶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 SNS에서 나눈 안환균 목사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