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僧). 시자侍者
스님(僧)이란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따라,
모름지기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수행하는 거룩하신 출가 수행자 修行者를 말합니다.
그러면 수행 修行이란 무엇인가.
수행도지경(1권) 집산품에 이르시길,
“어떤 것을 수행(修行)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능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고 닦아 익히며
따라 받드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며,
(부처님 법을) 닦고 익히는 것을 곧 행 行이라고 한다. 何謂修行?云何爲行?謂能順行,修習遵奉,是爲修行;其修及習,是謂爲行。
수행도지경 1권 4장
대보적경 113권, 44. 보량취회(寶梁聚會) ① 사문품(沙門品)에서 이르시기를,
가섭아, 나는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다 하여 사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른바 공덕이 있고 의식(儀式)을 두루 갖춘 이라야
비로소 사문이라 하느니라. 迦葉。我不說剃頭法服名爲沙門,所謂有功德儀式具足者乃名爲沙門。
가섭아, 사문이 몸에 가사를 입었으면
마음으로는 마땅히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행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이 없어야만
비로소 나는 가사를 입으라고 허락하였기 때문이니라. 迦葉,沙門身服袈裟,心應遠離貪恚癡行。何以故,心無貪恚癡行,我乃聽著袈裟。
가섭아, 만일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이 있으면서 몸에 가사를 입으면,
오로지 계율을 지닌 데에만 마음을 쓰는 이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계율을 지니지 않는 사람은
곧 가사를 태워서 없애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가사는) 성인의 표식(表式)으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따르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며
욕심을 여의어 없앤 이가 입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迦葉,若心有貪恚癡法而身著袈裟,除專心持戒,餘不持戒人則爲燒滅袈裟。何以故,聖人表式,隨順寂滅行慈悲心,離欲滅者之所應服。
대보적경 113권
시자 侍者란
부처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드는 행자를 말한다.
현우경(8권) 34 개사인연품에 이르기를
“현자 아난은 (사리불·목련존자로부터) 거듭 (부처님을 모시는)
侍者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하는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 합장하고 아뢰었다.
“만일 부처님께서 저의 세 가지 원을 들어 주신다면,
저는 부처님 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일이란,
부처님의 헌옷을 저에게 주어 입도록 하지 마시고,
부처님의 남은 공양을 제가 먹게 하지 마시며,
사람들이 찾아와 부처님을 뵈올 때, 시간을 저의 뜻에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을 들어 주시면
저는 부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賢者阿難重得是語,思惟是事,靡知所如,復更合掌,白諸上座:“若今世尊賜我三願,我乃堪任爲佛侍者。何謂爲三?世尊故衣,勿與我著。世尊殘食,莫令我噉。時節進現,隨我裁量。賜此三願,乃能侍佛。
현우경 8권 9장
불반니원경(하권)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르게 되자,
“수천 리 밖에 있던 4부(승가) 제자들이 모두 왔다.
부처님께서 (시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슬퍼하지 말아라.
왜냐 하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부처를 20여 년 동안 모시면서
부처에게 자애(慈愛)롭고 인자(仁慈)하였으며,
몸을 삼가고 입을 조심하여
부처를 봉양(奉養; 시자侍者)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부처님들의 시자(侍者)도 역시 아난과 같았으며,
미래 부처님들의 시자도 또한 아난과 같을 것이다. 四輩弟子,在數千里外者悉至,佛告阿難:“若莫悲哀。所以然者?若盡心侍佛,二十餘年,慈仁於佛,敬身愼口,大孝於佛,過去佛侍者亦如阿難,當來佛侍者亦如阿難。
너는 부처의 뜻을 알아
너는, ‘아무 때에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優婆夷)들에게, 〈만나 뵐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고,
어느 때에는 ‘그들에게, 〈만나 뵐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고,
공양 받은 음식에 대하여 너는 ‘드실 만합니다. 마실 만합니다.
누우시겠습니까? 일어나시겠습니까?라고 하여
항상 부처의 뜻에 딱 맞았고,
예의에 어긋난 적이 없었다. 若知佛意,若云某時可見,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某時不可見;所供飮食,若言可食可飮可臥可起,常合佛意未嘗失儀;
‘어느 비구, 어느 서심은 경을 좋아한다. 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등
네가 한 말은 모두 진실하였고, 부처를 가장 잘 봉양하였는데,
어찌 우느냐?” 某比丘某逝心,樂經不樂經,若所言皆誠,於佛最孝,啼哭何爲?”
불반니원경 하권 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