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를 한 차원 견인해 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박숙영 (회복적생활교육 센터장)
이국종이라는 사람.
지난 한해, 나는 한 사람에게 주목했었다. 중증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다. 아침마다 듣는 CBS의 김현정 뉴스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듣고 나서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과 열악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고, 뉴스 앵커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해법이 무엇입니까?” 나는 뻔한 대답, 그러니까 예산확대나 정책지원에 대한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 바보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좋은 직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해법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바보 같은 사람들이 사는 좋은 직장’이었다. 답변이 생뚱맞아 보였지만,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이국종이 일하고 있는 중증외상센터는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온 몸이 뭉개져 망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 취약계층이지만, 그들의 피해는 치명적이어서 생환을 위해서는 값비싼 외제 의료기술과 치료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증외상의료센터는 사회적 취약계층과 고액의 치료비가 만나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었고 일을 해서 돈을 잃었다”라고 말한다. 이국종이 중증외상센터에서 사선을 넘는 환자들을 살려내고 치료할수록 병원은 적자가 늘어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의사의 본업으로 환자를 살려내야 하면서도, 병원의 조직원으로써 병원의 이윤을 도모해야 하는,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없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중증외상센터에 맞는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도 이국종은 본업의 의미를 살려 내기 위해 모순과 허무, 무의미를 고통스럽게 버텨내고 있었다.
이 사회를 한 차원 견인해 올리는 힘, 높은 도덕성과 소명의식
사회의 변화는 가능한가? 유명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의료조건개선을 공언했지만, 중증외상센터의 고충과 모순은 그대로라고 이국종은 말한다. 환자들의 생환이 걸린 헬기닥터운행의 악조건도, 고액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모순과 부조리한 메커니즘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교육은 어떤가. 입시제도의 모순도 여전하고, 초등1,2학년에서의 영어선행허용으로 인한 사교육열풍도 머지않아 보여서 학교의 경쟁교육도 변함이 없고 여전하다. 국민들의 촛불로 이끌어 온 변화는 또 어떤가. 국민들도, 정치인들도 너무 빨리 변화의 동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너무 빨리 변심하고 너무 빨리 나약해졌다.
지난해의 막바지에 작은 소식이 하나 올라왔다. 의과대학 모집에서 외과 기피현상은 오랜데, 전년보다 충원율이 증가했으며 심지어 이국종이 있는 대학에서는 정원을 초과하는 이변이 일어났다는 거다.
다시 묻게 된다.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 사회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시선에서 발견한 것은, 한 사람의 높은 도덕성과 소명의식이었다.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지만 높은 도덕성으로 자신의 본업의 의미를 지키고자 소명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변화는 매뉴얼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닌, 결국 사람이다. 외형적인 형식이나 양이 아니라 내용을 채우는 질의 문제다. 그래서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바보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될 수 있는 거다. 이국종의 해법이 맞다.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우리에겐 ‘시작’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변화와 진보는 오는가? 이 답을 찾기 위해, ‘가장 모순된 곳’, ‘높은 도덕성’, ‘소명의식’의 자원을 가지고 힘 있게 솟아오르는 새해를 다시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