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아9장) 영혼의 제련소 "광야에서"
9:1 [금식과 참회의 성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킨 다음 23일은 쉬고, 24일에는 하루 동안 금식하고 회개하는 특별 성회를 열었다. 그들은 모두 베옷을 입고 머리에는 흙을 끼얹었다.
9:2 그들은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모여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자기 조상들의 죄도 고백하였다.
9:3 그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세 시간 동안 그들에게 낭독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여호와 앞에 엎드려 또 세 시간 동안 자기들의 허물을 고백하였다.
9:4 [민족적인 참회의 기도] 온 백성이 통성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또 다른 바니와 그나니는 연단으로 올라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큰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9:5 그러고 나서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와 같은 레위 사람들이 연단으로 올라가 온 백성에게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 일어나 영원 전부터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 그리고 이렇게 대표 기도를 드렸다. '주님의 영화로우신 이름을 저희가 모두 찬양합니다 ! 주님의 성호는 아무리 찬양하고 노래해도 여전히 부족할 따름입니다 !
9:6 여호와여, 주님만이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 주께서 하늘을 지으시고 그 한없이 먼 하늘의 모든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 주께서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곳에 사는 모든 생물을 지으셨습니다 ! 주께서 그들을 살리시오니 천군 천사들이 주께 경배합니다 !
9:7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
9:8 주께 향한 그의 진실한 마음을 보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면서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이 사는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그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은 변함없으십니다 !
9:9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억압을 받자 주께서 그들의 고난을 굽어보셨고 그들이 홍해의 해변에서 부르짖자 주께서 그 소리도 들어주셨습니다.
9:10 애굽의 바로와 관리들과 백성이 모두 우리 조상들을 업신여기며 탄압하자 주께서 크신 권능을 보여주시고 엄청난 일들을 행하여 그들을 제압하셨습니다 ! 그 일로 주께서 영원불멸의 명성을 얻으셨고 오늘날 주님의 성호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9:11 우리 조상들이 원수들에게 쫓겨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주께서 바다를 갈라놓아 바다 가운데를 모두 마른 땅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뒤쫓는 원수들은 주께서 깊은 물 속으로 집어 던져 마치 돌덩이들처럼 모두 거센 물결 속에 가라앉게 하셨습니다.
9:12 낮에는 주께서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걷는 길을 밝혀 주셨습니다 !
9:13 주께서는 우리의 조상들과 하늘에서 말씀하시면서 시내산에 강림하시고 깨닫기 쉬운 법도와 믿을 수 있는 율법과 유익한 규정과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
9:14 안식일을 주님의 거룩한 날로 지키도록 주께서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종 모세를 시켜 온갖 규정과 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
9:15 우리의 조상들이 배가 고프면 주께서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고 우리의 조상들이 목이 마르면 주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 그러고나서 주님은 그들에게 손을 들고 맹세하시며 그들이 들어가 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과연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하고 살도록 일러주셨습니다 !
9:16 그런데도 그들이 교만해졌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고집을 부리며 주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9:17 주께서 가르쳐 주셔도 그들이 거절하고 듣지 않으며 그들을 도와주실 때 행하신 온갖 기적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애굽으로 돌아가 다시 종살이할 생각들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오래 참으시고 변함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
9:18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금덩이를 녹여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 금송아지가 여러분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여러분의 신이십니다 !' 하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토록 주님을 모욕하였습니다.
9:19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크신 자비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 낮이면 구름기둥으로 그들이 갈 길을 인도하셨고, 밤이면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야할 길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
9:20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의 선한 영을 내려 주셔서 그들이 올바른 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내리던 만나도 그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목마를 때마다 그들에게 물을 대어 주셨습니다 !
9:21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40년 동안 주께서 항상 필요한 것을 대어 주셔서 광야에서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 그들의 옷이 떨어져서 누더기가된 적도 없었고, 신발이 없어서 발이 부르튼 적도 없었습니다 !
9:22 주께서는 그들에게 사방의 나라와 민족을 정복하게 하시고, 그런 나라들을 이스라엘의 변두리 지방으로 할당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땅도 차지하고 바산 왕 옥의 땅도 차지하였습니다.
9:23 주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들도 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조상들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약속해 주셨던 그 땅으로 친히 그 후손들을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9:24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들어와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주께서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굴복시켜 그 후손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시고 그 땅의 왕들과 족속들을 그 후손들의 손에 넘겨 주어 마음대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25 그들은 잘 요새화된 성읍들을 차지하고 기름진 논밭을 점령하고 온갖 좋은 물건이 가득찬 집들에 들어가 살며, 바위 뚫고 파놓은 샘에서 물을 퍼마시고 수많은 포도원과 올리브 동산도 점령하고 온갖 종류의 과일나무들도 차지하여 배불리 먹고 살이 찌며 주님이 주신 큰복을 누리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9:26 그런데도 어느새 그들은 주께 대항하고 반역하였으며 주님의 율법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예언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주께 돌아오도록 권고하였으나 그들은 예언자들마저 죽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점점 더 주님을 괴롭히고 모독하였습니다.
9:27 그러자 주께서 그들을 다시 원수들의 손에 넘기셔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주께 부르짖으며 살려 달라고 호소하면 주님은 하늘에서 그들의 음성을 들으시고 강한 해방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사사들을 계속 보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토록 크고 깊었습니다.
9:28 그러나 그들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되자 다시 지난날처럼 범죄하였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그들을 또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원수들이 그들을 다시 짓누르자 그들이 또 주께로 돌아와 부르짖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항상 크신 사랑으로 그들의 음성을 들어주시고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9:29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며 옳게 살도록 가르쳐 주셨으나 그들은 또 자만해져서 주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이 지키기만 하면 살수 있는 계명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으나 그들은 여전히 반항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등을 돌리고 반역하며 냉혹한 고집을 꺾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9:30 그렇더라도 주께서는 여러 해 동안 더 참으시면서 그들에게 주님의 영을 직접 부어 주어 가르치시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보내 깨우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을 강대국들의 포학한 손에 넘기셨습니다.
9:31 그러나 주님은 사랑이 크셔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을 완전히 멸절시키거나 영영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 주님은 그토록 용서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
9:32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주님은 그토록 위대하시고 그토록 권능이 많으시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 주님은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의 후손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변함없이 그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당한 고난을 하찮게 여기지 말아주소서.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 우리의 제사장들과 우리의 예언자들, 우리의 조상들과 주님의 온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온갖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
9:33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고난을 당하였어도 주님에게는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께 반항하고 죄를 지을 때에도 오히려 주님은 항상 우리를 진실하게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
9:34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도 죄인이요, 우리의 제사장들과 조상들도 주님의 율법에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가르치심을 기쁘게 듣지 않았고, 우리를 책망하는 주님의 경고를 언제나 헛듣고 살았습니다.
9:35 주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좋은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넓고 비옥한 땅을 주시고 온갖 복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을 섬기지 않았고 악행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지도 아니하였습니다.
9:36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세를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노예 신세가 아닙니까 ! 우리 조상들에게 주시며 그 좋은 열매와 소산을 먹으며 살게 하셨던 바로 그 땅에서 지금 우리들이 노예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
9:37 이 땅의 많은 산물도 강대국의 왕들이 거두어 갑니다. 주께서 우리를 강대국의 왕들에게 넘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몸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우리의 가축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강대국의 왕들이 마음대로 우리를 부리고 처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9:38 [율법을 지키기로 서명하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지어 온 죄악을 깨달아 고백한 다음, 새로운 생활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그 조항을 모두 문서로 작성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그 문서에 서명하여 확정하였다.
우리의 삶은 광야, 미드바르 מדבר에서 출발한다. 존재의 삶이란 광야의 삶이다. 광야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삶이다. 광야의 삶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삶이다. 그 광야는 내 힘으로 절대 통과할 수 없다. 내 힘만으로 못 건너가는 곳이 광야이다. 당시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은 그 길을 40년간 걸었다. 하루를 걸어가기도 힘든 곳인데 그곳을 40년간 걸어갔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분명한 목적과 꿈이 있어서가 아닐까? 광야는 돌이켜보니 은혜인 것이지 지나가는 동안에는 은혜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다. 광야로 인도하시고 건너가게 하시고 광야를 기억하게 하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례받고 처음하ㅡ는 일이 무엇인가? 광야로 나가서 40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는다.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공생애는 시작되지 않는다.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우리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자체가 광야를 통과하고 있거나 또 광야를 기억해야 하는 삶이다.
광야를 거쳐야 하는 것은 우리는 광야를 거치는 동안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수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우리는 사람이 단순해진다. 이 복잡한 세상은 하나님께 집중하기 어렵다, 몰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몸과 맘의 제련소 광야로 부르신다. 광야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오직 하늘을 바라봐야 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는 은혜부터 시작한다. 먹고 사는 것을 파라오 권력자에게 의지하고 파라오을 바라 봐야만 하는 지점에서 이제 먹고 사는 것은 하늘에 있음을 알게 되고 하늘을 바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을 알게된다. 만나를 받으면서 그것을 날마다 목격하고 경험케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분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해가지면 만나가 사라진다. 아침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면 하루을 굶게 된다. 영성은 그렇게 저금하듯이 축적되지 않는다. 누구도 신앙과 영성의 거장은 없다.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고 오늘 하루 넘어지지 않으면 은혜다. 오늘 하루 거둔 영의 양식으로 오늘 하루 자족하기를 바란다. 어제 영성으로 오늘 살 수 없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요 어제는 이미 끝난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순간만 있을 뿐이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고 그분을 붙들고 있느냐 그분과 동행하고 있는냐?, 이것이 오늘 나의 영성을 결정한다. 그분에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 분이 내 안에 계신다고 하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하늘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이 육신의 목숨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놓치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땅의 사람이요 육의 사람이다. 탐욕의 사람이다. 짐승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들으신다. 받아들이신다. 홍해에서 건져내셨다. 놀랍게도 백성들은 부르짖음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광야를 지나고 홍해를 건너가는 기적 속에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인도하심을 받게 됨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건널 수 없는 바다를 건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그분께서 나를 업고 여기까지 왔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간 것이 아니라 내가 십자가를 지고 왔다. 고난은 우리를 지고가는 십자가와 같다.우리가 고난을 지고 간 것이 아니라 고난이 나를 지고 갔다. 아프리카에서 급류를 만날 때 돌을 품고 간다. 그 돌이 무겁지만 그 돌을 놓치면 내 몸은 떠내려 간다. 급류에 휩쓸리게 된다.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돌을 끝까지 안고 가는 길 밖에 없다. 고난을 버리면 세상에 떠내려간다. 고난 때문에 고난을 응시하고 고난 넘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고난이 없으면 나는 세상의 급류에 떠내려 간다. 나는 그렇게 거룩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돌덩이를 절대로 버려서는 안된다.
이 세상을 건너갈 때 돌이 크고 무거울 수록 좋다. 나의 고난은 무거운 돌덩이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억센 팔이시다. 돌아보니 광야는 온전한 축복이었다.
그러나 먹고 살만 하니까 과거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끈질긴 죄의 본성을 갖고 있다. 기억을 놓치고 감사의 은혜을 놓치는 순간 은혜의 돌을 버리는 순간 한순간에 유혹으로 빠져든다. 수없이 죄악을 되풀이한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그 죄악을 반복한다.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건저내면 머지 않아 또 우상으로 달려간다.
출애굽할 시기는 기원전(BC) 1446년 아멘호텝 2세(Amenhotep Ⅱ)때이다. 이 8왕조 시기는 이집트 역사상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때이다. 제7왕조에는 70일간 재위한 70명의 파라오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곧이어 17여 명에 달하는 파라오가 통치한 제8왕조가 뒤따랐지만, 이들의 지배권은 모든 이집트의 영토를 잃고 멤피스 일대로 한정됨은 물론, 8왕조 자체도 20년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가나안 땅은 이집트의 속국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당시 가나안땅으로 향하는 길이 네 가지 길이 있었다. 첫째 가장 빠른 길은 애굽 라암셋에서 해변길 즉 블레셋길이다. 첫 번째 길은 진중해 연안으로 ‘해변 길’(Sea Road)이라고도 부른다.
이 길은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라 불리며(출 13:17), 지중해 해변을 따라서 가사(Gaza)를 비롯한 블레셋 성읍들을 거쳐가는 길로, 약 10일이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최단(最短)코스다. 하나님께서는 라암셋에서 발행한 이스라엘 백성의 방향을 돌려서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시면서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가는 것을 막으셨다.
둘째로 숙곳을 거쳐 아말렉 방향의 수르길이다. 이 두 번째 길 ‘수르(술) 길’(Way to Shur)은 고센 지방에서 숙곳을 지나 수르 광야 중심부를 통과하여 가나안 남부의 중앙으로 가는 길이다.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첫 번째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은 이 길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에담으로 인도하시면서, 이 길로 가는 것도 막아 버리셨다. 이 수르길에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이 있었는데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를 방해하면서 적대 관계가 되었고, 르비딤 전투에서 패했다가 후에 가나안으로 쳐들어오는 이스라엘군을 가나안인들과 함께 연합해 무찔렀다. 지친 여정으로 전쟁할 여력이 없었던 모세와 히브리민족은 수르길을 피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세째는 숙곳을 거쳐 바란광야로 가는 세일산길이다. 세 번째 길 ‘세일산으로 가는 길’(Way to Mount Seir)은 애굽의 온(On)을 떠나 수에즈 만의 북쪽을 지나 시나이 반도 중앙부를 관통하여 아카바 만 상부의 에시온게벨에 도착하는 길이다. 그 곳은 “왕의 대로”(민 20:17, 21:22)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길을 따라 요르단 동편으로 북상하다가, 모압 평지를 경유하여 요단강을 건넘으로써 최종적으로 가나안에 도착한다. 바란광야는 시나이 반도의 북동부, 미디안과 애굽사이의 가데스와 신광야를 포함한 지역을 말한다.
노년기의 산악형태를 보여주는 바란광야의 뜻은 “굴이 많은 땅”이라고도 하고 "빛나는 땅"이라고도 한다는데 해발 600~750m 높이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으로 바위는 여러가지 색깔을 보이고 있으며, 석회암의 여러 가지 바위의 모습과 산이 물이 흐른 듯 한 지형이 해저 지형과 유사하여 노아 홍수 때에 물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한 광야 중 가장 넓고 산세가 험하여 모세가 언급했던 “크고 두려운 광야”가 이곳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시내 광야를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3일 후 도착해 장막을 쳤던 곳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신1:19)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민10:12)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민12:16)
라암셋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에 이르러 진을 치고(출 12:37, 민 33:5), 그 다음 광야 끝 에담에 이르러 장막을 쳤다(출 13:20, 민 33:5). 에담에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쪽으로 내려오다가 이 길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방향을 다시 바꾸셔서 홍해 근처 믹돌 앞에 진을 치게 하셨다(민 33:7).
출애굽기 14:2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모세와 하비루들은 험준한 광야지역 세일산길, 바란광야를 피하여 급기야 가장 먼길, 히브리인들이 선택한 숙곳에서 마라, 엘림, SIN광야로 가는 시내산을 거쳐가는가장 위험한 홍해길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이길은 현재 진행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이키라는 명령이다. 가던 방향을 바꾸어 홍해를 건너가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빠져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파라오는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출 14:3)고 판단하고 병거를 갖추고 추격해 왔다(출 14:4-7).
첫번째 해변길을 피한 이유는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히브리인들이 다시 에굽으로 뒷걸음딜 칠것을 경계한 것이다.
첫째 해변길을 쭉 가다보면 가사가 나오는데 이 가사에 이집트 최정예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길로 갔다고 하면 가사에 이르러 오합지졸인 히브리인들이 두려움에 떨어 혼비백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라암셋에서 숙곳으로 내리고 다시 남쪽 에담광야로 향하게 한다. 두번째 빠른길 수르길마저 포기하는 결정이다. 에담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바알스본 맞은편에서 홍해를 건너게 된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후 세번째 길 세일산길을 선택한게 아니라 더 남쪽으로 내려 네번째 길 SIN광야를 향하게 한다. 이 때부터 마라의 쓴물을 하나님이 달게하시고 엘림에서 12개의 오아시스 70그루의 종려나무를 만나다. 출애굽한 지 한 달이 지나 SIN광야에서 도착하게 된다. 이 쯤 되니 애굽에서 수송한 양식이 바닥나게 된다. 히브리인들이 고기와 양식이 없다고 불평한다. 하나님이 저녁에는 메추라기,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신다. 이 후 르비딤에서 물이 부족해서 불평하니까 하나님은 호렙산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게 한다. 그리고 광야의 도적떼 아말렉과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 전투에 여호수아가 나가 싸운다. 아론은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잡으며 영적 전투를 벌인다. 이 곳 르비딤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엣을 데리고 방문한다. 또 이 르비딤에서 이드로가 제안한 사법제도를 재편한다. 출애굽한 지 두 달 후 마침내 시내산에 도착한다. 그 후 이듬해 2월 20일에 다시 출발한다.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체류한 기간은 대략 11개월이다. 이 기간 중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는다.
첫째, 너희가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순종하면 거룩한 나라 제사장 백성으로 삼겠다. 둘째, 율법의 전수다. 그리하여 이들이 순종해야 할 말, 613개의 율법이 주어진다. 세째, 속죄하고 은혜 받을 성막이 봉헌된다.
이를 위해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는데 1차 등정을 통해서 모세는 십계명과 613개 조문의 율법을 받고 하산한다. 하산하자마자 율번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식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지켜 준행하겠습니다." 고 화답한다. 모세는 다시 올라가서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성막의 규례를 보고 수치 등을 받아 적는다. 시간이 걸려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 사이에서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이 벌어진다. 모세는 내려왔고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코자 했다. 자신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모세의 중보기도가 있고 하나님께서 진멸을 유보하신다. 모세는 세번째로 다시 올라가서 미처 받지 못한 성막의 규례를 마저 받고 내려온다. 모세가 내려올 때 모세얼굴에서 빛이 나고 수건으로 가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내려오자마자 성막을 건축하는데 성막 봉헌이 출애굽 한지 이듬해 1월 1일로 5개월 반 만이다. 1월 14일 출애굽을 기념하는 첫번째 유월절을 성막에서 지킨다.
2월 일 인구조사를 했는데 이때 인구가 60만 3,550명이 된다. 2월 20일 시내산을 출발하게 된다.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Kadesh-Barnea]
까지 가는 여정을 향한다. 다베라, 기브룻핫다아와에 와서 만나에 실증을 내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한다. 지친 모세에게 최초의 장로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 하세롯에서는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고 아론과 미리암이 이를 비방한다. 가데스바네아[Kadesh-Barnea] 에 도착해서 열두명의 정탐꾼을 파견한다. 40일간 가나안땅을 탐지하게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결국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결국 히브리인들은 20세 이상 성년이 모두 죽을 때까지 이들 주변에 있는 바란광야를 37년 6개월 동안 유리 방황하게 된다.
그들이 다 죽고 40년 1월이 되는 해에 이들은 가데스바네아[Kadesh-Barnea] 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 때에 미리암이 죽게 되고 가데스바네아 반석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샘물이 나온다. 모세는 분노해서 반석을 지팡이로 치게되고 이 사건으로하여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에돔 땅을 통과하겠다고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40년 5월이 되는 달에 아론이 123세를 일기로 죽는다. 아랏왕이 쳐ㅡ들어 오고 아랏을 물리친다. 에돔땅을 우회해서 혹독한 사막길을 지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니까 불뱀을 보내고 또 놋뱀을 높이 든다. 아모이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물리친다. 40면 11월1일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모압평지 느보산에서 죽으면서 출애굽 40년 대단원의 여정이 끝이 난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사람의 게획의 관점에서 왜 모세와 지도자들은 출애굽 이후 시내산 홍해길을 선택했는 지 의문이 남는다.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19:5-6)
내가 나 된 것을 감사드린다. 나의 출애굽 40년은 무엇일까? 나는 땅을 살고 살았지만 하늘의 사람이라는 자각이 아닐까?
전통적인 히브리어 케마트리아에서는 멤(מ)의 숫자값은 40이고, 같은 게마트리아 값이 "나", "생명" "미아" "칼" "Am I"다.
다음에 나오는 것들과 관계가 있다.
* 홍수의 40밤낮
* 광야에서의 40년
* 모세가 시내산에 있었던 40일
*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정탐한 40일
* 정탐한 날 수를 일년으로 처서 40년간 죄악을 담당
* 에스겔 오른쪽으로 누워 40일간(하루가 일년)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겔 4:6)
* 셜리콧(Selichot, 지정예배) 40일
(나팔절 (Rosh Hashanah) 전의 회개기간 (teshuvah))
* 우리의 주 메시야 예수의 40일의 금식
* 예수님 부활 후 40일 동안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심(행 1:3)
* 수정에서 초기 태아의 형성까지의 40일
* 태어나기까지 임신 기간의 40주
* 사람의 통찰력(insight)이 성장하는 나이 40살
'sial(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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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히브리 성경에서만 홍해를 얌수프(yam suph)로 되어 있다.
이는 실제로 갈대 바다라는 뜻이다.
문헌에 의하면 영국 성서공회에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Reed Sea(갈대바다)를 Red Sea( 홍해)라고 번역하였다고 한다.
철자(스펠링)하나 차이로 Reed가 Red로 오역하는 큰 실수를 범했으니 Red(붉은)와 Reed (갈대)의 차이는 글자 한자의 차이 이 지만 결과는 갈대바다를 건넌 것이 홍해바다를 건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Reed인데 성경 번역자 또는 인쇄자가 깜빡잊고 그만 글자 한 자를 빼먹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전 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경(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70인역 성경 에서
얌숲 (Yam Suph를 홍해라는 뜻을 가진 Erythra Thallas라고 번역을 했다.
여기에서부터 갈대 바다 얌수프(yam suph)가 홍해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