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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굿
당굿은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동신(洞神)에게 동민(洞民)이 합동으로 제(祭)를 올리는 대대적인 굿이다. 동제(洞祭)는 신당(神堂)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매년 춘 · 추로 연 2회 또는 봄 1회로 제사를 올리는 것이 통례이고 지역에 따라서는 격년제로 당굿을 행한다. 서울지역의 전형적인 당굿 진행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부군당굿(府君堂굿)>
○ 제의조사일자 : 1970년 2월 6일
○ 부군당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 1동 193번지
○ 부군당의 위치와 형태 : 이태원 1동 마을 배후 산 위 괘목 신림(神林) 속에 위치. 신당 부지 약 600평, 16평의 단청(丹靑) 전각(殿閣). 이 밑에 부엌과 방 2개가 있는 제(祭) 준비실이 한 채 있다. 이것을 도가(都家)라 부른다.
○ 주신(主神) : 부군신(府君神). 이 외로 산신(山神) · 삼불제석별상(三佛帝釋別上) · 대감(大監) · 장군(將軍) · 군웅(軍雄) · 기마장군(騎馬將軍) · 창부(倡夫) · 호구 · 가망 · 걸립, 12신이 무신도(巫神圖)로 그려져 봉안되어 있다.
○ 제의목적 : 마을 전체의 제액초복(除厄招福)
○ 제일(祭日) : 정월 · 4월 · 7월 · 10월에 택일한다. 정월과 4월에는 무녀가 굿으로 제를 올리고 7월과 10월에는 제관(祭官)들이 제례(祭禮)를 모신다.
○ 제관 : 동회(洞會)에서 선출된 12명의 제관이 고정되어 제를 올린다.[註] 이 곳에서는 제관을 ‘화주(化主)’라 부른다. 화주가 사망하거나 부정(不淨)한 일이 있으면 동회를 열어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선출 보충한다. 홀아비나 불구자는 제관이 될 자격이 없다. 또 집에서 출산이나 상(喪)이 나도 제관이 될 수 없다. 제관의 조직은 수화주 1인, 서기 1인, 평화주 10인이다. 그 소임을 보면 수화주는 제의 일체를 관장하고 평화주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다. 서기는 신당의 경리 일체를 맡는다. 평화주는 제의의 조역(助役)을 하며 수화주의 유고시(有故時)에 연장자 중에서 선출하여 그 임무를 대행한다.
○ 제물 : 메 · 주(酒) · 인절미 · 삼색실과 · 채(菜) · 통돼지
○ 제의순서 : 음(陰) 12월초에 동회를 열어 결원인 제관을 보궐 선출한다. 제관은 제의 준비에 들어가 동네를 돌며 제비(祭費)를 걷는다. 제비는 이태원 1 · 2동의 주민 1,000호에서 약 10만원이 걷힌다. 이 때부터 제의 준비는 12명의 화주(제관)가 맡아서 한다. 제관은 제 15일 전에 대동(大同) 우물을 퍼내고 금줄을 왼새끼에 백지를 3cm×30cm 가량 썰어 군데 군데 끼운 것을 치고 황토를 퍼서 사람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우물에 새로 고인 새 물로 ‘조라’[註]를 모신다.‘조라’는 수화주가 부군당 경내(境內)에 있는 도가(都家)에 빚어 앉힌다.
‘조라’는 찹쌀 2되와 멥쌀 4되 도합 6되를 빚는다. 이렇게 ‘조라’를 모시면 그날부터 온 마을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언행을 삼가하며 금기한다. 122명의 화주는 ‘조라’를 모시는 즉시 부군당 입구에 경내의 출입을 금지하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며, 도가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이날부터 화주들은 철저한 금기로 들어가 육류와 어류를 먹지 않고 부인과 동침을 금하고 입은 채로 잔다.
이와 같이 15일간을 금기하고 제(祭)하는 경우 전날 밤에는 화주들이 도가에서 자고 새벽에 대동 우물을 길어다가 찬물로 목욕하고 제수(祭需)를 장만한다. 제수 준비가 끝나면 화주들은 제복(祭服)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제복은 흰바지 저고리에 흰 도포(道袍)를 입고 머리에 검은 색의 큰 갓을 쓰고 다리에 행전을 친다.
제 당일 아침 일찍 신주(神主 제관)들은 수화주의 지시에 따라 제상을 올린다. 제상은 12신위(神位)의 신위 앞에 각각 상상(上床)과 하상(下床)을 두 상씩 올려 도합 24상을 차린다. 상상은 신상(神象) 앞의 마루 바닥에서 120cm 높이로 매인 선반 위에 놓고, 하상은 그 선반 밑에 차려 놓는다. 상상마다 메에 백지로 고깔을 접어 씌우고, 주신(主神)인 부군상(府君床)에는 막걸리 3잔을 놓고 그 앞에 새발심지 불을 3개 켠다. 새발심지 불은 접시에 참기름을 넣고 그 위에 백지로 심지를 만들어 접시에 닿는 심지 면이 3갈래로 되게 세우고 그 위 끝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제상으로 올리는 제수(祭需)는 전부 대나무 채반에다 차린다. 제물은 메 · 인절미 · 술 · 어포(魚脯) · 돼지고기 · 미역 · 사과 · 배 · 대추 · 곶감 · 옥출(玉軾) · 유과(油果)를 놓는다. 부군상에는 돼지머리를 놓는다.
이와 같이 제상을 올리고 수화주의 주관으로 제를 올린다. 굿을 하지 않고 제만을 올리는 것을 이곳에서는 ‘고사(告祀)’라고 한다. 고사는 일반 유가식(儒家式)의 제사와 같이 초헌(初獻) · 아헌(亞獻) · 독축(讀祝) · 소지(燒紙) · 음복(飮福)으로 끝난다. 소지는 대동소지(大同燒紙) 1매를 올린다. 당굿을 하지 않는 7월 · 10월의 고사에는 화주 소지 12매, 동민 각호 소지 700매를 개별적으로 호명하며 올린다.
고사를 지내고 화주들이 도가에 모여 아침을 먹고 나서 오전 10시경부터 당굿으로 들어간다. 당굿은 무녀 4인과 재비 4인이 필요하다. 신당(神堂) 앞 공터에 차일(遮日)을 치고 그 밑에서 굿을 한다.
도가에서 신당으로 올라갈 때 주무(主巫)가 선두에 서고 그 뒤에 장고 1, 징 1, 제금 1, 피리 2 , 젓대 1, 해금 1, 수화주 1, 서기 1, 평화주 10인이 차례로 뒤를 이어 따라가고 무악기는 앞에서 계속 연주하며 간다. 주무와 화주는 12인만 신당 안에 들어가 옆으로 나란히 늘어서 부군신께 3배씩 3번 절한다. 신당 좌측의 차일 밑에 굿상을 차린다. 굿상은 부군상으로 제물은 앞의 신당에 올린 제수와 같고, 굿상은 양초를 켠다. 이날 당굿을 주관한 무당은 70세의 무녀 오복동(吳福童, 이태원 1동 거주)이었다.
이어 당굿이 진행되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추당물림>
주무 혼자서 바깥쪽을 향해 장고를 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추당 살(煞)을 피해 밖으로 나간다. 무는 약 5분동안 앉아서 빈 장고를 둥둥 울린다.
○ 부정거리
무가 신당(神堂)을 등지고 밖을 향해 앉아서 부정거리 무가를 구송(口誦)한다.[註] 무악반주는 없다. 부정상(不淨床)의 제물은 간단히 차려 사과 1, 배 1, 과줄 3, 잎떡 1접시, 청수(淸水) 2 대접을 놓고 상 양쪽에 촛불을 켠다. 청수 한 그릇에는 재를 띄우고 다른 청수에는 소금을 풀었다.
무가 앉아서 부정거리를 하는 동안 화주 12명은 신당 안에서 신전(神前)에 3배씩 3회를 한다.
무가가 끝나고‘부정치기’로 들어가, 무가 재를 띄운 청수 그릇과 소금을 풀은 청수 그릇을 각각 양손에 들고 신당을 왼쪽으로 한 바퀴 돌아서 밖에 내다버리고 신당 안으로 들어가 소지 1매를 올린다.
○ 가망청배(가망請拜)
이 굿은 제를 받는 신을 청해 오는 과정이다.
차일 밑에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무가 춤을 출 자리만 자리 2잎을 이어 깐다. 이 자리를 가운데 두고 신당을 향해 장고 · 징 · 제금을 맡은 조무(助巫)들이 앉고 이어 안으로 조금 휘어져 피리 2, 젓대 1, 해금 1의 재비가 앉는다. 이하 굿은 계속해 이 굿당 앞에서 한다.
무(巫)가 구군복(具軍服)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와 백지 1매를 들고 북쪽 하늘을 우러러 3배하고 나서 무악반주에 맞추어 가망거리 무가를 구송한다. 굿을 하는 동안 동민들이 떡을 쪄서 시루채로 소반에 받쳐 들고 와서 신당 안의 신전(神前)에 놓고 연거푸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 서낭맞이
무가 홍철릭(紅天翼)을 입고 머리에 홍갓 쓴다. 홍갓 양쪽에 꿩의 깃털이 하나씩 꽂혔다. 무가 150cm 길이의 잎이 달린 참나무 가지 하나를 손으로 잡고 앉아 서낭신이 강신(降神)하기를 축원한다. 이 참나무를 ‘대’(神竿)라 하고, ‘대’는 나무 목판에 쌀을 담고 돈을 놓은 그 위에 받쳐 세운다. 고조된 무악이 계속 울리고, 참나무 가지가 떨리면서 신이 내리자 조무가 ‘대’를 잡고 있는 주무(主巫)의 홍갓 꿩털을 뽑는다.
신이 내린 채로 무가 ‘대’를 흔들면서 신당 뒷쪽에 있는 서낭당으로 간다. 서낭당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밑에 돌로 된 단(壇)이 있다. 조무가 이 제단에 제물을 놓고 또 다른 조무는 제금을 친다. 수화주가 서낭목 가지에 백지 3매를 매고 나머지 11명의 화주는 그 옆에서 서낭목을 향해 일렬횡대로 늘어서 절한다.
무에게 서낭신이 내려 ‘공수’, 12명의 화주가 무를 향해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며 허리를 굽혀 연거푸 반절한다. 이러는 동안 신당 안에서는 재비들이 계속 무악을 울린다. 동네 부인들이 떡시루를 준비해다 제단 앞에 놓고 절한다. 무가 제단에 부어 놓은 술잔을 서낭목 밑에 붓고 제물을 서낭목 주위에 뿌린다. 무가 제단 앞에서 서낭소지 1매를 올린다.
○ 본향바램(本鄕)
무가 신당 앞에서‘부군옷’(두루마기 모양의 것으로 분홍 바탕에 빨간 색깔)으로 갈아 입고 오른손에 백지 2매와 부채, 왼손에 백지 1매와 방울을 들고 먼저 북쪽 하늘을 우러러 3배하고 나서 사방으로 하늘을 우러러 3배씩 하자 높이 추켜든 무의 손이 가늘게 떨리면서 신이 내린다. 무악이 계속 울리고 12명의 화주가 신당 안으로 들어가 부군신 앞에 술 3잔을 갈아올리고 합동으로 3배씩 3회 한다.
무가 ‘공수’를 내린다. 12명의 화주들이 무 앞에 늘어서서 손을 비비며 빈다.
무가 부채와 방울을 놓고 양 손에 백지만 들고 춤을 춘다.
무(巫)가 ‘공수’하고 화주들은 손을 비비며 일동이‘예―’,‘예―’한다.
무가 고조된 춤을 추며 도무(跳舞)하고 ‘공수’한다.
무가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들고 춤을 추고‘공수’한다. 화주들은 손을 비비며 ‘예―’하고 응수한다.
무가 오른손에 부채를 든 채로 신상(神象) 밑의 상상(上床)에 차린 대추접시를 왼손으로 들어 수화주에게 ‘대추산’(대추점) 준다. 대추점은 무가 대추 담은 접시를 추슬러 떨어지는 수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데, 짝수로 떨어지면 나쁘고, 홀수로 떨어져야 길하다. 다음 서기 화주에게 같은 방법으로 ‘대추산’을 준다. 조무가 징을 받쳐 들고 화주들에게 돈을 청한다.
○ 부군거리
주신으로 모신 부군신께 제를 올리는 과정. 무(巫)는 ‘부군옷’위에 남쾌자를 입고 그 위에 남철릭(藍天翼) · 홍철릭(紅天翼)을 포개 입고 허리에 부채를 찬다. 무가 무악에 맞추어 홍갓 양손으로 받쳐들고 전후 좌우로 3보 전진, 3보 후진의 느린 춤을 한동안 추다가 왼손으로 언월도를 들고 춤을 춘다. 한편에선 화주들이 비석제(碑石祭)를 지낸다. 신당(神堂) 담 밖 입구에 세운 ‘부군비(府君碑)’[註]앞에 자리 한 잎을 깔고 수화주가 떡시루를 상에 받쳐 올린다. 절은 하지 않는다.
무가 도무하고‘공수’한다. 화주들은 손을 비비며 응수한다. 무가 도무하고 허리에 언월도를 겨누고 서서 ‘공수’한다. 무가 빨간색의 ‘호구치마’를 언월도로 꿰쳐 들고 춤추다가 ‘공수’한다. 화주들은 손을 비비며 응수한다. 무가 오방기(五方旗)를 들고 도무 · ‘공수’하고 도무한다.
무가 왼손에 삼지창, 오른손에 언월도를 들고 도무하고 ‘공수’한다. 삼지창을 옆구리에 겨누고 도무하며 좌로 한 바퀴 돌아 춤이 끝난다. 이어
○ 장군거리
○ 별상거리
○ 신장거리(神將거리)
○ 제석거리
○ 호구거리
○ 대감거리
○ 창부거리
○ 계면거리
○ 조상말명거리
○ 성주 · 군웅거리의 순서로 굿이 진행되는데,
굿의 각 과정마다 무악 · 무가 · 무무(巫舞) · ‘공수’는 앞에서 본 ‘본향바램’이나 ‘부군거리’에서 있었던 것과 같이 되풀이된다. 각 과정마다 무장(巫裝)이 다른데, 이것도 앞에서 본 다른 무의 일반 굿이나‘내림굿’에서 사용하는 해당 굿의 무장과 같다. 여기다 ○ 별상거리에서 ‘사실’[註] 세우는 것과 ○ 성주 · 군웅거리의 ‘밥소래붙임’이 더 추가된다. ‘사실’세우기는 무가 신당 앞 댓돌 위에 소금을 담은 접시를 올려 놓고 그 위에 돼지머리를 삼지창으로 찍어서 거꾸로 세운다. 화주들이 돼지머리 위에 돈을 놓는다. 무가‘사실’을 세워놓고 돼지머리를 향해 절을 하면서 손을 비비며 축원한다.
무가 손바닥으로 ‘사실’대를 받친 접시를 두들겨 ‘사실’을 쓰러뜨리고 다시 닭을 삼지창으로 찍어서 세운다. 화주들은‘사실’에 대고 연거푸 절을 하며 빈다. 마을의 부인들이 나와 ‘사실’에 대고 절을 하며 빈다. 다가오는 한 해 동안 마을 전체가 무병(無病)하고 재수좋게 해달라는 요지이다. 무가 ‘공수’한다. 동민들이 부군신께 바친 돼지머리를 차례로 하나씩 무가 삼지창을 찍어서‘사실’을 세우며 축원하고 그때마다 돼지머리를 갖다 바친 주인집 부인이 나와서 ‘사실’에 대고 절을 하며 빈다. 돼지머리를 제단에 바친 동민은 김칠만(金七萬) · 이병철(李秉喆) · 안봉식(安奉植) 외 29명이었다.
‘사실’이 끝나자 ‘무감’[註]을 선다. 부인들이 나와서 굿상에 돈을 놓고 그들이 마음에 드는대로 무복을 골라 입고 무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처음에 느리게 활개를 벌리고 추다가 점차 빠른 도무(跳舞)로 들어가 두 팔과 두 발을 합쳐 상하로 펄펄 뛴다.
○ 성주 · 군웅거리에서 ‘밥소래붙임’은 군웅신(軍雄神)의 밥 2그릇으로 상징되는 놋동이를 무가 입술에다 붙여서 영력(靈力)을 보여주는 것이다. 놋동이 전을 백지로 싸서 무가 입에 물고 조무 2인이 그 양옆에 놋동이 쇠고리를 잡아준다. 수화주가 나와서 놋동이 속에 돈을 넣고 절한다. 이러는 동안 무악이 계속된다. 무의 아랫입술이 놋동이 전에 붙는다. 화주들은 모두 무를 향해 엎드려 절한다.
수화주 부인이 놋동이를 돈이 든 채 엎어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춤을 춘다. 화주들이 일제히 굿상 앞으로 나와 춤을 춘다. 무악이 고조된다. 굿을 구경하던 동민들이 굿상 앞으로 나와 남녀 가릴 것 없이 한데 얽혀 신나게 춤을 춘다. 이 춤은 약 15분간 계속된다. 춤을 추는 동안은 신권(神權)을 갖는 사제자(司祭者)인 무, 세속의 금기를 거친 신성한 제관(화주들), 세속의 동민들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이 한데 얽혀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 황제풀이
춤으로 어지러워진 제장(祭場)을 정리하고 조금 쉬어서 밤이 되기를 기다려 어두워지면 황제풀이 과정으로 들어간다. 굿상 앞에서 신당을 향해 새로 황제상을 차린다. 작은 소반에 떡 1접시, 막걸리 3잔을 부어 놓고 촛불 두개를 켠다. 무가 황제상 앞에 앉아 장고를 치며 황제풀이 무가를 구송(口誦)한다. [註] 장고 앞전 줄에 백지 1장을 접어서 건다. 12명의 화주들은 무가가 구송되는 동안 무를 향해서 빙 둘러 앉아 있다. 황제풀이는 신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집짓는 법을 마련해 주고 복을 점지해준 그 과정을 서술여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 뒷전
뒷전상은 새로 차린다. 작은 소반에 떡 2접시, 막걸리 3잔, 좁쌀 1대접, 소금 1보시기를 차려서 신당 앞에 놓고 무가 평복으로 오른손에 부채 들고 뒷전거리 무가[註]를 구송한다. 무가가 끝나고 무가 도무 · ‘공수’한다. 무가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바가지에 담아다가 밖에 내다버린 다음 좁쌀에 소금을 넣고 섞어서 들고 춤추며 사방에 뿌린다. 굿에 모여든 잡귀들이 받아 먹고 물러가라는 뜻이다. ‘공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끝낸다. 굿이 끝나서 화주들과 동네 노인들이 그 자리에서 음복(飮福)하고, 제물은 제비(祭費)를 낸 집마다 똑같이 나누어 돌린다.
이것으로 당굿은 끝나고, 만 하루가 지난 이튿날 밤에 신당에서 제관인 12명의 화주들만 모여‘사례제’를 지낸다. ‘사례제’는‘사례치성’이라고도 한다. 화주들의 말에 의하면 이 제의는 당굿을 할 때 세속의 잡인(雜人)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부군신께 그 잘못을 사죄하는 것이라 했다. 사례제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
<사례제>
화주들만이 도가(都家)에서 수화주의 지휘로 제수(祭需)를 장만한다. 밤 1시경이 되면 신당으로 가서 부군신 내외분의 제상 둘을 차린다. 이 때는 제물이 간단하여 메 · 떡 · 채 · 탕만 올린다.
제의는 화주 12명이 제관이 되어 초헌 · 아헌 · 종헌 · 독축 · 소지로 끝난다. 독축은 수화주가 한다. 소지는 마을 전체를 위한 대동소지 1매, 12화주를 위한 소지 12매, 동민 각호를 위한 개별 소지 700매를 올린다. 개별 소지는 각기 호주의 성명을 호명하면서 소지를 올려 준다. 제를 마치고 음복한 후 도가로 돌아오면 새벽 3시경이 된다. 사례제가 끝나면 다음 제까지 어느 누구도 신당의 출입이 금지된다.
자료출처 : 서울 육백년사 홈페이지 무속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