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을 위하여‧‧‧
보름 전쯤에 친구가 다녀갔다. 다녀가면서 책을 하나 주고 갔다. 친구로부터 “책을 좀 써야겠어.”라는 말을 들은 지 2년여가 된 때였다. “오, 나왔구나.” 내심 기다리던 책이었다. 나오자마자 전해주고 싶었지만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새로 가는 임지가 지방인데도 친구는 제 고향 가까운 곳이라며 얼굴 표정은 밝았다.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더운 날이었던 것 같다. 그전 자리보다 다소 한가한 외직으로 발령이 났다는 말을 들으며 술을 한 잔 기울였던 때가 생각이 난다. “잘 됐지 머. 이번 기회에 쓰고 싶었던 책도 쓰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연구도 더 해보고‧‧‧”라며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지만 풀이 죽은 마음을 가시게 하지는 못했으리라. 내 책도 아니면서 기다렸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 속 깊이 건투를 비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어찌 지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까. 책을 손에 쥐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만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만나더라도 짐짓 직장생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품새나 그때그때 세간에 이슈가 되었던 경제 논리, 때로는 결론도 나지 않을 무슨 무슨 사상이니 철학 따위를 이야기하다가 헤어지곤 했다. 남자 나이 오십 초입이면 동기 중에는 소위 잘나가는 애들도 있을 터였다. 본영에서 소외된 자리에서 보냈던 지난 시간은 내 친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화선 친우”에게 라고 저자 사인을 하는 친구의 옆얼굴을 지켜보며 이윽고 책을 건네받았다. “책 디자인 좋네.” “야, 제목 세게 뽑았는데.” “와, 근데 너 정말 훌륭하다. 애썼고.”라고 어깨를 한번 꽉 쥐어주었다. 그러나 정작 책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한동안 책표지만 앞으로 뒤로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그랬다.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책 앞면에 새겨진 제목과 부제, 뒤표지에 요약된 카피만 보더라도 그간에 쏟아 부은 친구의 지난 시간을 짐작할만했다.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이것이 책의 제목이었다. 먼저 ‘이단’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세게 뽑았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친구는 이견이 있어도 대놓고 주장을 펴거나 강하게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는 품성이 아니었다. 상대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해도 화내는 법도 없었고 오히려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 말았다. 사실 그 웃음 때문에 나조차도 전의(?)를 상실하고 대화를 싱겁게 끝냈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오랫동안 조직에서 훈련된 자세가 바로 이런 거로구나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이단(異端)이라... 그런 친구가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니. 그렇다면 그동안 자기가 믿었던 이외에 어떤 도(道)나 법칙을 발견했단 말인가.
내 친구 박양수는 우리 사회 주류 중에서도 주류라고 할 만한 하다. 조직 내에서 부침은 내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객관적으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고, 소위 스카이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으로 학위를 했으니 빠지지 않는 스펙을 자랑하는 친구이다. 그런 그가 ‘되짚어 보는 지구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까지 달아 책을 낸 것을 보면 주류 경제학자로서 오랜 시간 고민하며 숙고의 과정을 거쳐 토해낸 글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 책은 친구가 처음 낸 책은 아니다. 지난 2011년에 『경제전망의 실제』라는 책을 발표하여, 한국은행에서 20년 넘게 경제전망을 하며 쌓았던 지식을 모두 사회에 내놓은 바 있었다. 이후 통화재정팀장, 계량모형부장, 금융안전부장을 맡으며 연구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금융전문가를 찾기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게는 이 책의 내용을 두고 ‘그르다’, ‘맞다’를 평가할만한 식견이 없다. 다만 그동안 친구의 잠재 역량과 남다른 정의감을 믿기에 모두가 답답해하는 이 시대에 어떠한 해법을 제시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효율적인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책머리에 부치면서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의 일화를 소개한 것을 보자. 2008년 11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경제학자들에게 왜 아무도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물었다. 이때 크루그먼은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경제학은 아무리 잘 평가해도 쓸모없는 정도이며 나쁘게 말하면 경제에 해악을 끼쳤을 뿐”이라고 혹평을 한다. 친구는 거시경제학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사전에 예방책을 강구하는 데 실패했음을 뼈아프게 지적한 대표적인 것으로 이 일화를 꺼내고 있다. 연장하여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 엄중해 보여, "현재 주류경제학의 분석 틀이 가진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빠른 시간 내에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면서 이런 생각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용기를 내었다고 출간 동기를 적고 있다.
정말 그렇다. ‘결국은 각자 도생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인가’하며 모두가 고민스러워 하는 이때, 새로운 거시경제학과 거시정책 당국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낼 수가 있다면, 최소한 논의의 장으로라도 끌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소득은 없을 터이다. 친구는 거대 담론을 치고 나오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무엇이 문제인가?”부터 짚고 내려간다.
제1절 무엇이 문제인가?
해법은 문제를 파악하는 데서 나온다. 친구는 우선 1900년 이후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를 주목한다. 이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가진 연구 대상을 비교적 객관화하여 일반성을 부여한 시도로 보인다. 다분히 사회과학자로서의 전형적인 연구방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접근이다. 친구는 법인세 인하, 환경규제 철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 기업에게 유리한 조치를 취해야만 했던 일련의 정책들은 세계 경제가 무역 자유화로 인해 초국적기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했던 상황으로 파악한다. 또 정책 결정 시 거시건전성 유지, 자본 유출에 대한 외화 확보 등 금융 불안 해소가 우선순위로 자리한 상황을 설명한다. 아울러 1980년대 이후 그림자 금융의 성장과 금융기관의 대형화, 국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던 배경을 놓치지 않고 설명한다. 이윽고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경제 환경 변화가 어떻게 경제 주체들의 행태를 변화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는지 그 과정을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정리해 놓고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요 경제 현안들을 살펴보는데 경제학자나 정책 당국자들이 벌인 논쟁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어떤 식으로 조화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한 핵심을 정리해보고 싶었던 의도로 보인다. 연구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를 고민하고 설사 욕을 먹을지언정 어떻게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반듯한 학자에게서 볼 수 있는 모양새다. 역시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아 자랑스러웠지만 고마웠다. 이 외에도 구조적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 기후 변화에 대한 심각성, 인공지능 문제 등등 언제 이렇게 많은 부문에 천착하여 연구를 했는지, 게다가 문제를 넘어 대응책까지 살펴 본 것을 보며 가끔 직장에서 한직에 나가 있는 것도 약이 될 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2절 해결방법은 어디서 찾을까?
친구는 이를 위해 기존 주류경제학의 한계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분석 틀 또는 모형이 어떤 부분을 포함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먼저 금융기관이 신용 창출에 적극적인 상황을 포함해야 함을 제시하는데 통화의 내생성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통화의 내생성과 외생성에 대한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후 주류경제학은 금융회사를 명시적으로 도입하여 신용채널을 강화하는 등 금융-실물 연계 모형 분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부분이다. 모형 경제학을 전공한 그로서 다각도로 검토한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고 이를 소신을 가지고 주장한 것이 더 귀해 보인다. 이외에도 소득 불평등과 소비 및 성장의 관계를 포착할 수 있게 이질적인 경제 주체를 가정해야 한다든가,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 안정에서 금융 안정 등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등 논리를 펼친다. 이 장에서는 유독이 “ ~한다면”이라는 가정이 많다. 친구도 서문에서 고백했듯이 아마도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지구촌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를 하면서는 350여 년 전 노예해방을 주창했던 인본주의 사상에서부터 현 세대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까지를 아우르며 비주류로 치부되었던 그간의 사상이나 정책 근간을 끄집어내고 있다. 이 장은 새로운 사고 체계의 정립을 위한 그의 깊은 고민과 노력으로 엮어진 글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돋보이는 가장 큰 점은 신뢰할만한 통계자료를 기초로 했다는 점이다. 서문에 감사의 말을 전한 기라성 같은 금융 전문가들의 사전 스크린이 있었으니 당연할 법도 하지만 친구의 매서운 눈썰미가 여러 통계수치들을 확인 없이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구구한 형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에 매번 낯설고 급박한 변화에 직면하곤 한다. 아마도 친구가 '이단자'가 되어도 좋으니 작심하고 나섰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친구가 진심을 담아 쓴 책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보자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데는 친구 나름대로의 주관과 속 깊은 울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 난 발령지가 제 고향 가까운 곳이라며 좋아하던 전라도 무안 촌놈의 인생 2막이 활짝 피어나기를 응원하며, 기쁜 마음으로 서평을 마무리 한다. “양수야, 출간 축하한다. 애썼고.” ........ 이화선 friend@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