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집 주변에 무궁화 꽂이 피기 시작했다. 환경이 좋은 나무부터 몇 송이 피고 있다. 이제 시작이니 무궁하진 안겠지만 3-4개월은 계속 필 듯하다. 어렸을 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0자) 놀이를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놀이인데 무슨 재미로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별다른 놀이가 없어서인지... 친구들이 좋아서 인지... 얼마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오징어게임이란 드라마에서 이 “무궁하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놀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임이 되기도 하였다.
무궁화는 우리 나라꽃이다. 법에 명시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중국의 산해경 같은 고서에 동쪽의 군자 나라에서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중국 기록에 무궁화 이야기가 있다, 우리 기록에도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고 스스로 우리를 근향이나 근국으로 불렀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는 무궁화가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되었으나, 조선에 들어와 왕실의 꽃이 이화로 정해지면서 무궁화는 대중의 꽃이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탄압받고 감시 받는 꽃이 되었다. 진딧물이 많으니 꽃이 지저분하니 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무궁화를 기피하게 만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무궁화 심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이제는 3군 사령부가 있는 계룡시나, 홍성의 만해 한용운 선생님 생가 근처와 같은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는 무궁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벚나무는 길가에 지천인데 무궁화는 거의 없었다. 이사 온 다음해 2019년부터 유동마실길이란 마을 모임을 통해서 마을에 무궁화를 심었다. 홍천군의 무궁화 보급사업의 도움을 받아 2년간 무궁화 묘목을 충분히 받았다. 마을 입구와 집 주변에 많이 심었다. 동네 사람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진디물 때문에 농사에 지장알 줄 수 있다는 것이 주였다. 그러나 실제 집 주변에 심어보니 다른 나무 정도이지 심하지는 않았다. 자연 순환적 농법을 하시는 사람들은 나무나 농작물에 진디물이 있어야 진디물 잡아먹는 곤충이 생기고, 또 그 곤충을 잡아먹는 새와 개구리가 생겨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어렸을 때 대전 근처 외갓댁에는 무궁화가 많았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제시대에 감나무 과수원을 조성하고 길 쪽으로 무궁화를 촘촘히 심어 울타리로 하였다. 멀리 산에 올라 과수원을 보면 한반도처럼 보이게 만들고, 한쪽 울타리를 무궁화 나무로 하신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조그만 과수원을 당신이 바라는 나라로 생각하셨을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1960년대 초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후 마을 사람들이 조그만 공덕비를 마을 회관 한편에 건립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 마을 사람들 마음에 남는 일을 많이 하신 듯하다.
얼마 전 홍천군마저도 무궁화 보급 사업을 중지했다고 들었다. 아쉽다. 무궁화를 애국심에만 의존해 보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연구하면 무궁화의 활용방법은 많을 듯하다. 뿌리는 폐암에 효과가 있다는 기사를 본 듯하고, 꽃은 꽃차로 쓸 수 있고, 막걸리 빚을 때 고두밥에 같이 넣을 수도 있다. 잎은 나물로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무궁화는 꽃이 귀한 여름철에 많이 피기 때문에 여름철의 밀원식물 노릇도 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어찌되었던 우리 집 주변에는 무궁화를 20주 정도 심었고 1-2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잘 자라고 있다. 꽃은 백단심과 홍단심이 섞여 있고, 청단심도 조금 있다. 나는 백단심이 가장 마음에 끌린다. 지금부터는 무궁화 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묘목 심은 지 2-3년이 되어 올해는 거의 모든 나무에서 꽃을 볼 듯하다.
첫댓글 법에는 없지만
전 국민들에게 불리우는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이렇게 우리 나라 꽃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