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시대라는 것은 완전한 언약이 문서화되어서 완전한 법을 성립시킨 때를 가르쳤다.
먼저 속죄의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양의 피로 그 민족을 바로의 악정에서 구출시킨 일이 있었던 것은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악마의 권세 아래서 택한 자녀를 해방시키는 일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동시에 다음과 같이 법을 세웠다.
첫째: 선민 국가의 행정법을 준 것이 율법과 계명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류적인 법으로 준 것이 아니고 신정적인 선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법인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세상이 알도록 하는 문서인 것이다.
둘째: 성전 도형법을 준 것은 신령한 교회의 일을 유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히9:1 이하)
셋째: 속죄의 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드릴 일을 보여준 것이다.(히13:11~12)
속죄라는 것은 죄를 완전히 가르치고 죄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이 대가를 어떠한 방법으로 도말 시킨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에서 세워진 것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행하여 온 일이었다. 그러나 예언적인 교회가 부패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 부패를 없애기 위하여 북방의 강한 대적을 들어서 치고, 비록 적은 무리이지만 신령한 사람들로 예루살렘을 복구시킨 것은 인간 종말의 예언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이것을 만민이 알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선지들에게 심판과 새 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묵시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 5경으로 선 이스라엘 왕국은 신령한 교회를 목적으로 두고 보여준 예표가 되고 예언적인 교회가 부패하므로 북방 원수에게 먹힘을 당하고 신령한 사람으로 예루살렘이 복구된 것은 지상 평화의 성도통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 예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구약 성경을 들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초림의 주를 증거하던 사도들은 예언적인 민족적 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개혁을 시키는 일에 목숨을 바치고 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될 사명은 주님께서 맡겨준 사명이기 때문이다.(눅24:44~48)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성도들은 구약 종말의 선지들이 부패한 종교와 정치아래서 묵시를 받아 기록한 글을 가지고서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으므로 인간 종말에 완전한 역사를 일으키는 일이 있게 되어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율법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친 말씀이나 일어난 역사가 다 예언이 된다.(사46:10) 율법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예언적인 역사로 본다면 다음과 같은 구분을 지을 수 있다.
이것은 예언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역사보다도 아브라함에게 민족적인 언약을 세운 말씀이 응하는 동시에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유를 찾기 위하여 싸운 것이 출애굽기의 역사라는 것이다.(출5:3~9, 8:25~27) 그러므로 하나님은 양의 피를 흘려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증거를 삼게 하여 그 피를 보고 역사하도록 했던 것이다.
희생의 제를 드리기 위하여 자유를 부르짖던 이스라엘에게 그것을 완성시켜 준 것이나 이스라엘 왕국이 가나안 복지에 자리 잡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짓게 된 것과 선민적인 종교가 되어서 합당하게 제사를 드리면 복을 받았고 합당치 않게 제사를 드리면 징계를 받은 것을 선민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들이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조금이라도 이방 신과 타협이 있을 때는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 나라를 치되 이방의 세력을 들어서 쳤던 것이다.
이 역사는 생명 없는 역사가 아니고 생명이 있는 역사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예언적인 선민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인간 종말에도 꼭 그와 같이 역사하겠다는 것을 세밀히 말씀해 놓은 것이 선지서이다.
하나님은 앞으로 될 것을 말씀할 때에 산 증거를 보여 주시면서 앞일을 묵시로 인간에게 보여준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알파와 오메가가 결부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참된 선지의 예언인 여호와의 말씀은 순종치 않고 이단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전을 황폐화시키는 환란을 오게 하셨던 것이다. 이때에 참된 선지는 억울하게 훼방을 받고 압박을 받았으며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미명 하에서 고질화된 습관에 젖어 생명의 종교가 그 왕국의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생명이 없는 한 종교로 의식화되었을 때에 그 종교로서는 도저히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패한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를 다 없애기 위하여 북방의 세력을 들어서 쳤던 것이다.
이때의 예루살렘 비극이야말로 기가 막히고 앞길이 캄캄한 환란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참된 선지의 신앙을 존중히 알고 그 신앙 사상을 조금도 잃지 않고 싸워 나가는 자들을 다시 일으켜서 동방 고레스와 합세하여 권리 행사로 예루살렘을 복구했던 것이다. 모든 선지는 이런 무서운 재앙이 예루살렘에 올 것과 회복되는 이 사실을 예언하였으며 그들이 받은 이 묵시의 글이 심판의 다림줄이 된 것이다.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용서 없이 멸망을 당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의 심판도 이와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묵시로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 이제 구약에 나타난 역사와 그리스도 역사와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출애굽기의 역사는 희생의 제를 드리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싸우는 데서부터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서 끝을 맺은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승리아래는 선민적인 종교는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 그러나 예언적인 종교가 망했다가 복구된 것은 기독교 종말에 가서 심판과 새 시대로 끝을 맺는 것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 때 하나님의 역사는 전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뿐이요, 실지 열매를 맺는 것은 독생자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되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씌워지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율법 시대에 역사하신 것은 전부가 심판과 새 시대에 일어날 역사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구약 때 속죄제로 드린 것은 십자가의 속죄제를 목적으로 하여 보여준 일이요, 여호와께서 그 나라에 나타나서 역사하신 것은 전부가 심판과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