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2
김희선
여리다.
송글송글 맺히는 순진무구
새털 같은 걸음마로
온 땅을 누비거라.
첫울음
그 감격으로 남아
얽힌 타래
풀어라.
기댄다는 말
김희선
두 포기씩 심어야 혀
서로 기대야 잘 크제
투박한 사투리가
정수리에 와 닿는다.
식물도 기대어가며
자라나고 있었구나.
한동안 잊고 있던
기댄다는 말의 의미
다시금 되살아나
가슴을 파고든다.
깊숙이
숨겨둔 그 말
기대고 싶다는 말
과목果木
김희선
지난 해 젖줄 돌아
만삭으로 품은 열매
올해는 빈 둥지로
탯줄조차 달지 않네
미묘한
생명의 언어
눈 먼 나를 조롱한다.
내 가진 것들이
나의 것이 아닌 줄을
제 몸을 비워가며
말해 주고 있건마는
움켜쥔
가슴 저편엔
찬바람만 스쳐간다.
길 위에서
김희선
계절 잊은 감잎 하나 붉은 잎 펼쳐드니
그 아래 어린 풀잎 저도 따라 귀 붉힌다.
발자국
어지러울까
돌아보는 이 한낮
가을에는
김희선
마음을 옥죄이던 시간의 거친 물살
가장 작은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가선
가만히
손 내밀리라
내 안의 나를 찾아
교단일기3
김희선
오늘도 아이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꿈꾸기 이전부터 빼곡한 종이 위엔
마음껏 채색하고픈 여백마저 사라져
해맑은 웃음 속에 가려진 그늘들이
기성의 돛을 따라 무겁게 떠다닐 때
나만은 백지로 남아 너희 곁에 다가가리
어떤 소망
김희선
이도백하의 아침은 좌판 위에 열려오고
잠 설친 손길들이 작은 소망 담아내면
봉지 속 삶의 무게가 거리를 배회한다.
오가는 사람 없는 미명의 거리에서
이국의 손길들만 기다리는 저들 삶도
천지의 물길로 씻겨 거듭날 수 있기를
먹구름
김희선
그 누가 그대를 검다고 말하는가.
그대도 한때는 눈부신 하얀 구름
세진을 다 머금으며 여기까지 온 거다.
지난 날 고운 꿈은 어디론가 사라져
누구도 자유롭지 않을 세파의 한가운데
시원한 소나기 되어 내리고 싶은 거다.
천지 앞에서
김희선
머뭇대는 흰 구름
하늘이 끌어안고
푸르른 천지 물을
내 앞에 펼쳐낸다.
간절히
기다린 시간
맘에 가득 담아라
천지를 품은 산이
나마저 끌어안고
미혹하지 말아라
무거운 짐 벗어두라
정갈한 천지의 물로
내 마음 적셔준다.
소문
김희선
허공에 떠다니는
거대한 입의 날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귀를 달고 있네.
자꾸만
커져가는 입
씹고 있는 빈 껍질
8월 11일 양평 소나기 마을로 문학기행을 떠나며, 책 속의 순정한 사랑 이야기 속에 흠뻑 젖어들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의 마타리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문학관에서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황순원 선생님의 순수와 절제, 그리고 나라 사랑의 정신을 영상을 통해 다시 확인하면서, 수숫단 속에 들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세미원을 거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는 양수리의 두물머리를 찾아 그 뛰어난 경관에 감탄하며, 만남은 이렇게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고 거대한 느티나무 밑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문학 기행은 이렇게 행복합니다.
소나기 지난 후의 은은한 무지개처럼
살며시 가슴 졸이는 사랑을 해 보았는가
조약돌 만지작거리며 두근대어 보았는가
짧고도 순정한 사랑 마타리꽃 향기 되어
오늘도 소나기마을 뜨락에 피어있네.
모두의 가슴 속에서 다시 쓰는 그 이야기
<약력>
<시조세계> 신인상,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문학상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여성시조이사, 한국문인협회 봉화지부장,
경북여성예술인포럼위원, 시조 동인『오늘』회원. 현, 봉화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