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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중국 연변 이육사 문학제 및 학술 세미나
- 우리는 하나 -
김희선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새벽 1시 30분. 잠을 청한 지 1시간 남짓 되었을까? 눈을 비벼가며 집을 나섰다. 안동 시청에서의 출발 예정 시간은 2시 30분. 27명의 멋진 분들과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하게 된 행복감으로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제3회 중국 연변 이육사 문학제 및 학술 세미나.’
9시 50분에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기류변화가 심하고 안개까지 자욱하여 바다도 육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창가에 앉아 창공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다. 하루의 새로운 시작은 항상 설렘으로 다가온다. 늘 반복되어오던 일상은 이런 일탈의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해 존재하던 것이던가? 끝도 없이 드리워지던 흰 구름을 벗어나니 눈앞에 펼쳐지는 저 찬란한 햇살과 푸른 하늘. 우리의 삶도 구름의 바다를 지나 푸르른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리라.
연길 공항에 내리니, 낡은 공항 건물은 수리를 위해 가림막이 세워져 있었다. 공항을 나서자 연변 작가분들이 환영 플랭카드를 들고 우리를 맞이했다.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국제호텔에 여장을 푼 후 연변대학 행사장으로 향했다.
작년이 조선족 자치주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라 중국정부에서 길과 건물 등을 정비하여 거리도 건물도 반듯했다. 우리 선조들이 개간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연길과 북간도 용정. 조선족이 사는 이 땅에 서면 한 민족이라는 따스함이 마음속에 전해온다.
올해로 세 번째 개최되는 이육사 문학제는 시인으로 독립투사로 널리 알려진 이육사 선생님을 통해 중국의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중 양국의 우호와 미래 상호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조선족 및 중국의 대학생들로 하여금 학술발표와 작품공모전, 시낭송 등을 통해 양국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게 하고, 문화 교류 및 의료 봉사의 기회를 펼쳐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변의 많은 대학생들과 관계자분들이 강당을 메운 가운데 학술발표가 시작되었다.
먼저, ‘저항시인 이육사의 시에 나타난 낭만성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중국 북경 제2외국어대학교 김영옥 교수는 ‘황혼, 청포도, 절정, 꽃, 광야’를 예로 들어 이육사의 시정신을 조국애와 서정성이 녹아있는 저항정신으로 규정지으며, 이육사의 저항시인으로서의 저항정신과 애국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서정시의 범주에서도 이육사의 시가 더욱 깊이 천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안동대학교 손병희 교수님의 ‘윤리적 확신과 예언적 미래(이육사의 삶과 문학)’라는 주제 발표에서는 이육사가 식민지 시대의 찢긴 삶을 드러내는데 머물지 않고 그를 뛰어넘어 그것을 치유하고 훼손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그의 시 속에 굳건히 쌓아올림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룩하였다는 것, ‘청포도’와 ‘광야’를 통해 망국민의 일그러진 삶을 치유하는 해방된 조국, 나아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해방된 세계에 대한 윤리적 소망과 확신 속에 살아 있는 미래를 시적 현실로 형상화하였음을 말하고, 온 겨레가 정치적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 절망하지 않고 해방된 세계를 예언하고 그 씨앗을 뿌린 이육사를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빛나는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한글공모전 시상식이 열렸다. 많은 대학생들이 상을 받는 중에도 특히 대상을 받은 학생의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진솔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중국학생이건 조선족학생이건 상을 받은 학생들은 이육사라는 민족시인과 한국, 그리고 한글에 대한 기억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이어서 김경숙 시인, 여환숙 시인, 강수완 시인 그리고 연변 시낭송회장의 육사시 낭송이 끝난 후 중국 측에서 제공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하였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우리 조선족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중국에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이 행사가 보다 더 발전된 행사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피곤한 몸을 뉘였다.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호텔 조식 후 8시에 출발하여 용정 대성중학교로 향했다. 1865년부터 함경북도 이주민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는 용정의 길가에는 허름한 빈집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용정은 민족문화의 발상지이다. 대성중학교 안의 전시실에서 이상설을 비롯한 많은 민족 교육의 선구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대하고 용정에서 전개된 항일 운동사를 읽으며 그 웅대하고 고귀한 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윤동주님은 은진중학교를 졸업하였으나, 후에 조선계열의 학교들이 통합되어 대성중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어 많은 조선족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윤동주 책방, 윤동주 교실을 둘러보는 동안 회색빛 하늘 아래 애국지사들의 옛 자취를 찾아보는 이 여정이 가슴 뿌듯했다
윤동주 선생의 생가를 찾아, 젊은 나이에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돌아가신 윤동주 전시관의 글들을 읽고, 맺는 글을 옮겨 적어본다.
“육도하 기슭에 남긴 애국지사들의 발자국, 선바위에 숨 배인 독립투사들의 숨결……. 나라와 민족과 역사에 부끄럼 없이 살도록 우리를 이끈 선구자들의 깨끗하고 빛나는 영혼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흉금을 울리는 선구자의 노랫소리는 오늘도 지구촌에서 사는 우리 겨레의 심장에서 터져 나옵니다. 역사는 인간을 깨우치는 솔직한 교과서입니다. 역사의 갈피갈피를 펼쳐보노라면 의사들의 염원은 다름 아닌 우리 동포들의 아기자기한 모임입니다. 우리 함께 손과 손을 굳게 잡고 의사들이 꿈을 키우던 터전 명동을 아름답게 꽃피워 갑시다.”
훈춘으로 가는 길에 독립투사들의 상징이었던 비암산과 일송정, 해란강을 차창 관광하며 누군가가 시작한 선구자의 노래가 우렁찬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대명사인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 용정시 비암산 언덕 일송정의 푸른 소나무는 울창한 모양이 정자를 닮았다고 하여 일송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나무가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이유로 일본군이 1938년 사격연습용 과녁으로 이용하였고, 이후에 나무에 구멍을 뚫어 후춧가루를 넣고 쇠못을 박아 고사시켜 버렸다. 이후 용정시 사회단체에서 옆에 정자를 짓고 소나무 복원을 위해 1989년, 1990년, 1991년, 2002년 네 차례 나무를 심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잘리거나 말라죽었고, 2003년 인근 승리촌에서 자라던 수령 20여년생 3m 크기의 소나무를 심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디 건강하고 울창하게 자라 옛 모습 그대로 독립투사들의 웅혼한 기개를 보여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연길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 도문에서 두만강을 바라보았다. 북한과 가까운 곳은 30m이내이어서 북한민이 건너와 먹을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일가족을 몰살하기까지 하여 조선족이 강변에 철조망을 쳐 두었다고 한다. 배고픔이 앗아간 원시적 인간성에 전율을 느낀다.
훈춘을 들어서며 두만강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 저 너머로 북한을 바라본다. 훈춘은 러시아, 중국, 북한의 접경지이다. 입석에 새겨진 彼岸相望(상대편 언덕을 서로 마주 바라봄)이라는 붉은 글씨가 가슴에 아려온다.
버스에서 내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으로 가시기 전 머물렀다는 집으로 향하는 하늘 저편에 옅은 무지개가 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역사적인 이 집은 지붕이 무너져 내려 풀더미 속에 그 형체만 남아 있다. 내년이면 형체마저 없어져 이 역사적인 현장이 기억 밖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이 역사의 현장들을, 이 유의미한 유적들을 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나라 위해 내달리던 혼백이 머문 자리
아직도 뜨거운 피 가슴을 적시는데
처참히 무너진 모습 내 발길 동여맨다.
우리는 다시 연길로 돌아와 북한이 운영하는 유정식당에서 답례만찬을 가진 후 국제호텔로 향했다.
2013. 09. 14 토요일
6시, 호텔을 출발하여 연길 공항에 도착하였다. 7시 30분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11시 40분에야 연길공항을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 중의 4시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인가? 우리는 빵과 죽, 그리고 요구르트로 아침을 때우고 컵라면과 음료를 서로 권해가며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공항에서의 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임을 믿으며, 우리는 담화를 나누고 우의를 다졌다.
오후 1시 45분 중국의 수도 북경에 도착한 우리는 중국 민주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천안문을 찾았다. 한가운데 마오쩌둥 주석의 사진이 걸려있고, 온통 붉은 빛깔을 띤 웅장한 건물 정면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찾아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천안문 광장은 총면적 44만 제곱미터의 세계 최대 규모의 광장이라고 한다. 1989년 4월 민주화를 외치며 천안문 광장으로 집결한 젊은이들이 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인민 영웅 기념비로 아편 전쟁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고, 마오쩌둥의 유해가 영구 안치된 모 주석 기념관, 중국의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중국 국가 박물관, 전국 인민 대표 대회 개최 및 정부와 인민의 정치, 외교, 활동의 주 무대인 인민대회당 등이 주면에 둘러서 있다. 시간 관계로 자금성을 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은 왕보정거리(먹자 골목)로 향했다. 인주와 붓, 먹 등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왕보정 백화점을 둘러보고, 각종 먹거리들이 나열된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니 각양각색의 꼬지를 손에 들고 먹으며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네, 거미 등 각양각색의 곤충들이 꼬지에 꿰인 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차마 자세히 바라보지 못하고 보는 둥 마는 둥 발길을 재촉했다.
이어서 찾은 곳은 이육사 선생님께서 순국하신 감옥이다. 북경시 동창호동 1-1번지 일본 영사관 헌병대 차디찬 감옥에서 순국하시기까지 모진 고문을 당하셨을 선생님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는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은 원 건물의 1/3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한국에서 압송되어 이곳에 투옥되었다가 순국하셨으며, 지금은 북경 노동자 숙소로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하나 거의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이육사 선생님의 외동딸이신 이옥비 여사님의 슬픔을 참으시는 비통한 모습에 모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왜 우리 선조들이 나라 위해 목숨 바치신 이 역사적인 곳들이 이렇게 방치된 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 그냥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 사라져 없어져버린 후엔 어디서 그 위대한 자취를 찾을 것인가?
먹먹한 가슴으로 임의 자취 헤아리니
잊고 산 지난날이 아프게 스칩니다.
차디찬 감옥 속에서도 뜨거웠을 조국애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건물 위에
웅대한 발자취 범접할 수 없는 기운
저렇듯 사라진 후엔 돌이킬 수 없으리
무거운 걸음을 뒤로 하고, 고대 은나라 삼성퇴 유적지의 신화를 배경으로 한 중국 3대 뮤지컬 중의 하나인 금면왕조를 관람했다. 베이징 올림픽의 공연을 연출했던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글 자막이 흘러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
금면왕조는 전설 속의 시대이다. 신기한 그림책이 소녀를 꿈으로 이끈다. 남면왕이 군대를 이끌고 여왕이 다스리는 금면왕조를 침략하나,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 여왕은 수림 속에서 산책하며 금면왕조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신기한 힘을 가진 통천신수를 만들려 한다. 항복한 남면왕이 통천신수를 단조하고, 선량한 여왕은 남병들을 석방한다. 통천신수는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이고, 사랑의 상징이며, 평화에 대한 기념이다. 여왕은 성대한 축제 의식을 명한다. 그리고 달빛 아래서 남면왕과 사랑을 속삭인다. 돌연 우레가 울고 번개가 치며 홍수가 삽시간에 대지를 휩싼다. 금면왕조의 백성들은 멸망의 재해를 맞고, 홍수 중에 고향과 친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금면여왕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그의 권장을 사랑하는 남면왕에게 넘겨주고 신수의 지시하에 자신의 몸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홍수는 점점 가라앉고, 여왕은 자신의 생명으로 재난을 물리치고 금면왕조의 평화를 지켰다. 사람들은 여왕을 그리워하는 옛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소망을 하늘에 이야기한다. 남면왕은 권장을 손에 들고 사랑하는 금면여왕에 대한 깊은 사념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노랫소리 속에서 여왕은 아름다운 태양조로 변하여 고향의 푸른 하늘 속에서 날고, 사랑으로 천지만물을 적시고, 인간 세상의 백성들을 돌보며, 사랑으로 왕조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지키고 있다.
뛰어난 예술성을 갖춘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가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홍수 때 무대 전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은 엄청났다. 마술과 서커스, 뮤지컬, 발레 등이 어우러진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7시 30분 호텔을 출발하여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세계 신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만리장성을 찾는 기대감으로 얼굴엔 절로 생기가 돌았다.
만리장성은 기원전 전국시대 북방 유목민을 막으려고 쌓기 시작해 진의 시황제가 본격적으로 구축했으며, 15세기 명대에 이를 온전히 연결시킨, 서쪽 간쑤성 가욕관부터 동쪽의 허베이성 산해관까지의 6000여km구간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2009년 장성 동쪽 끝을 압록강변 단둥의 고구려 호산장성으로 연장해 총길이를 8000km로 발표했고, 이제는 북만주 성터 전역을 사실상 장성 구간에 흡수시키고 있다.
산 정상을 따라 군데군데 놓인 각양각색의 성들은 중국인들의 끈질긴 성격을 보는 듯하다. 그 웅장한 크기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인력의 희생이 있었겠는지도 짐작할 만하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인파는 발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였다.
동서양인들 사이에서 중국인 아가씨 두 명이 목에 건 한국어 이름을 보고 반갑게 말을 건넨다. 자기도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안녕하세요?" 라며 한국어로 인사하는 모습이 무척 반갑고 정겨웠다. 함께 사진 찍고 싶다는 말에 우리는 다정히 어깨동무를 했다. 이것이 바로 민간 외교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모든 중국인들이 이렇듯 한국에 우호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용경협이다. 계곡의 모양이 마치 용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빼어난 기암절벽과 인공호수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거대한 댐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커다란 용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 용의 입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꼬리로 나오면 유람선 선착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베이징에서 85km 북동쪽에 있는 협곡 용경협은 1973년 댐이 건설되어 인공호수가 만들어졌다. 40분 정도 유람선을 타고 가며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는 중에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줄 위에서 공중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슬아슬한 공중서커스도 볼 수 있으며, 너무나 높은 곳에서 번지 점프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양쪽 협곡을 가로질러가는 케이블카의 알록달록한 모습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소고기와 양고기 그리고 야채 샤브샤브로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중국시간 5시 25분(우리 시간 6시 25분)에 중국을 떠났다. 부산 김해 공항까지 1시간 43분이 걸려 도착 후 밤 12시가 넘어 마중 나온 남편과 함께 안동을 출발했다.
잠을 설쳐가며 강행한 여정이었지만, 이육사 선생님과 함께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 바치신 애국지사의 웅혼한 정신을 느낄 수 있어 더 없이 의미 깊고 뿌듯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하나 -
피부에 닿지 않은 이름 하나 떠돈다.
한 핏줄 이어받아 지녀온 민족의 얼
조선족,
멀어져가는
후대들을 보았나
사라지는 모국의 혼
일깨우려 나선 자리
연변에 뿌리 내린
조선족 학생들의
이육사 한글 백일장
그 열기가 뜨겁다.
작은 물방울에 큰 돌도 패이는 것
아직은 미약한 힘 연연히 이어가도
영원히
끊이지 않을
모국의 탯줄이여
이번 행사 중에 더욱 뜻 깊었던 것은,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님의 민족정신을 기리는 추모사업인 ‘광야에 꽃 피우는 새 생명 프로젝트’ 양해각서를 이육사추모사업회(이사장 권부옥), 안동병원, 중국연변작가협회가 체결하여 어려운 연변지역 환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게 된 일이다.
앞으로도 이 의미 있는 행사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지속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