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김희선
침묵을 거치고야
그 목소리 힘차다고
드러내지 않고서야
그 자태 더 고웁다고
언 땅위
써내려가는
이 잔잔한 말씀들
매미
김희선
그토록 생생하게
흔적을 남기고도
울음으로 또다시
온 맘을 에워싸나
떠나지
못하는 이별
너뿐이 아닌 것을
종이꽃
-학대 받는 아이들에게-
김희선
한 송이 또 한 송이 속절없이 져버렸네.
금세라도 바스라질 듯 물기 한 점 없는 얼굴
부모란 이름 달고서 너를 지워 버렸구나.
하얗고 여린 미소 너는 그리 어여쁜데
다가서지 않고서는 그 아픔 몰랐었네
서러운 바스라기꽃 다시 살아 꽃 피워라
가정과 사회가 버린 해맑고 귀한 생명
봄 한 철 지나고 나면 이 또한 잊혀질까
또 다시 어느 곳에서 종이꽃이 질 텐데
나이
김희선
나이가 든다는 건
저만치 바라보는 것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둥글어져
고요히
바다 저 편에
섬이 되어 앉는 것
이별
김희선
그대가 떠나간 뒤
꽃들은 시들었다
고운 자태 뽐내어도
내 마음 속 빈 자리
머물던 언저리에는
무성한 그림자만
詩作노트
어쩌다 시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붙잡아 두지 못하고 놓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후에 아무리 되살리려 해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애를 태우곤 합니다. 그 순간 메모로 남기지 않아 그렇게 사라져버린 생각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많이 메모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는 것, 詩作에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인이 되고 싶으면 오직 시 쓰는 일 한 가지에만 매달리라시던 고 정완영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는 참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므로 좋은 시인이 되는 길은 요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시로 표현하는 작업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이제 그 행복을 좀 더 많이 누려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