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한국은 선진국에 가까운 생산과 소득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경제지표나 특정 산업에서는 기존의 선진국을 넘어서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고, 우리가 선진국민이라고 스스로 칭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도 살면 선진국 아닌가? 아니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더 부자가 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세대의 조부모는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부모는 6·25전쟁과 가난을 겪었다. 그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고생하고 힘들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특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세대가 편하게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1인당 국민 소득도 증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좋아 진다”는 논리를 갖고 후배나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것이 편하지 않다. 자신들도 이전보다 지금이 좋아졌고, 지금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힘들다. 경제는 시간이 간다고 같이 좋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던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브레이크가 걸렸고, 이후 구조조정의 고통과 혁신을 통해 20년의 시간을 지내왔다.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1780년대 영국에서 발명한 증기기관과 기계화를 1차 산업혁명, 1870년대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과 자동차의 발명을 2차 산업혁명, 현대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한 정보화 혁명을 3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은 IT산업으로 대표되는 3차 정보화 혁명의 한 축을 담당했다. 몇차 산업혁명이건 간에 혁명에 가까운 산업의 변화는 우리에게 수많은 사회경제적인 과제를 던진다.
한국은 선진국인가? 삶의 질 혹은 분배문제 등 다양한 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경제적 또는 산업적으로 선진국에 가깝다. 산업구조 측면에서 저임금을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과 경쟁하고 있는지, 기술과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과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제조업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에서 기술과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선진국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성장은 선진국을 따라하거나 내부역량이 부족하더라도 낮은 인건비나 토지비용 등을 기반으로 외국인 투자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병은 따라할 수 있는 모델도 없다. 이제 한국경제는 무한경쟁과 글로벌 경쟁력만 주장하며 개인이나 기업에게 각자도생을 요구하거나 상대적으로 경제여건이 양호한 후발국의 상황을 부러워할 처지가 못된다. 심화되고 있는 선진국병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선진국의 경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업과 국가만 경쟁력 갖추고 생존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의 경제 관문은 사람, 기본, 혁신이다. 기성세대가 잘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다음 세대가 미래경제를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