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투명인간
작가 : 성석재
1960년 경북 상주출생
연세대학 법학 학사
2014년 제31회 요산문학상
2003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출판사 서평 (알라딘)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또다른 투명인간이 그를 알아본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그는 왜, 어떻게 투명인간이 된 것일까. 그리고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그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는 어려서부터 ‘큰 머리에 비해 가느다란 몸통에 유난히 길어 보이는 팔다리’와 ‘토끼처럼 커다란 앞니’가 두드러진 볼품없는 외모에, 유난히 허약하게 태어난데다 말도 늦고 매사에 이해가 더디지만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하다.
소설은 그의 가족을 비롯해 친구, 동료 등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해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진술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본 만수의 일면, 그들이 보고 겪은 각각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짧은 이야기를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입체적이고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와 함께 소설은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겪는 세상살이의 한 대목들을 모아 수십년에 걸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장면 사이사이의 시간적 공백을 통해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내는 절묘한 구성 또한 이야기꾼 성석제의 독보적인 면모다.
사라질 수 없었던 사람, 그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각박한 이 세상, 바보같이 아름다운 한 인간의 이야기
부잣집 삼대독자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사상 문제로 고초를 겪고 세상에 등을 돌린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와는 달리 거친 상농사꾼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
타고난 명석함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상한 큰형,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와 누이들, 영리하고 악착같은 성정으로 늘 만수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동생 등, 만수의 가족들은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묵묵히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던 시절부터 꼬박 이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고, 바구니를 끼고 산나물을 캐러 다니고, 차력사의 묘기를 따라 하고 썰매를 타다 사고를 내기도 하고, 채변검사, 썰매 타기, 혼분식운동 등에 얽힌 갖가지 소동들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만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아련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만이 알고 있을 그 기억과 감각을, 그때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세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해내는 솜씨 역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소박하던 시절은 베트남전에 파병된 큰형이 고엽제로 인해 목숨을 잃고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면서부터 더는 지속되지 못한다. 변두리 단칸방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누이들, 연탄가스 중독과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 등등, 1970년대 이후 산업화의 물결과 굴곡의 현대사의 흐름에 휩쓸리면서 만수의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크고 작은 고난과 비극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들이기도 하다. 상경 이후 무능력한 술꾼으로 전락한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이 된 만수는 그 가운데에도 낙관을 잃지 않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헌신적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생활을 꾸려나간다. 전문학교를 다니는 틈틈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교통경찰을 보조하는 전경으로 복무하면서 소소한 뇌물을 챙겨 생계를 도모하고, 이후 관리직으로 공장에 입사해서는 인상 좋은 얼굴로 노사 양쪽을 오가며 1980년대 말의 격동기를 건너간다. 위장취업 후 행방불명된 동생이 남긴 아이를 맡아 키우는 것도, 여동생의 식당에 힘을 보태 가계를 일으키는 것도 모두 그의 일이었다. 그렇게 그의 희생에 힘입어 만수와 가족들은 점차 나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해 보이고, 만수도 뒤늦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만수의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사장마저 공장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남아 공장을 지키려 했던 만수에게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이 청구되면서 다시 시련이 닥친다. 그 와중에도 만수는 끝까지 답답해 보일 만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매몰찬 외면, 그리고 더 큰 불행일 뿐이다. 마침내 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비극은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눈물겨웠던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바로 우리의 인생사
가진 것 없고 잘난 것도 없지만 미련스러울 만치 순박하고 헌신적으로 가족과 삶을 지켜나가는 만수, 그러나 그는 끝내 누구에게도, 가족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온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혼신을 다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고 애쓰며,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난관에 가로막혀 힘겨운 고난을 겪고, 그럼에도 그 좌절까지 떠안은 채 차마 세상으로부터 사라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질기게 버틴다.
소설은 끝까지 만수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김만수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나 흔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구보다 기막힌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렇게 ‘김만수’라는 이름은 우리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더욱 비범한 인간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끈질기게 닥쳐오는 비정한 현실의 무게 속에서 끝내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족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뒷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한 감동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