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칼을 자주 갈았다. 어머니의 칼은 썰고, 가르고, 다지던 25년 동안 종이처럼 얇아졌다. 그 칼에서 나온 음식을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가 끊임없이 먹어야 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이런저런 것을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새끼답게 마구 건방져 지고 싶었다. 나는 긴 세월 동안 칼자루만 바꿔 온 어머니의 칼을 쥐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기서 ‘어미’를 보았다.
어머니는 20여 년간 국수를 팔았다. 가게이름은 ‘맛나당’이었다. ‘맛나당’은 호황을 누렸다. 모처럼 시장에 나온 농부들도, 농협과 수협, 새마을금고 직원들도, 중학교 선생과 속 풀러 온 술집 아가씨도 모두 우리 집에 와 국수를 먹었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엄마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의 다친 손에서 흐른 피가 묻은 국수그릇을 아무렇지 않게 닦고 태연하게 국수를 드시던 할머니는 가장 고마운 손님이었고, 여자를 기다리며 국수를 그릇으로 덮어놓는 매너 좋은 남자는 일만 잘하던 어머니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머니는 무심한 칼 끝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게 일을 도울라 치면 어머니는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어머니는 은근 당당함을 비쳤다. “그건 놔둬라. 내가 한다, 넌 한 줄 모른다.” 나는 어머니를 도우며 수다를 떨었다. 내가 어머니 에게 장난 식으로 핀잔을 주면 어머니는 칼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나는 예고 없이 날아오는 칼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 놀람 뒤에는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신뢰가 자리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 칼을 만난 건 25년 전의 일이다. 아버지의 직장이 있던 인천의 어느 재래시장에서 어머니는 칼장수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1500원 주고 그 칼을 샀다. 그 후 그 칼이 내게 위협을 가하는 개를 쫓아내기도 하고 삶의 지친 아버지의 자살 시도에 쓰이기도 했던 25년 동안 어머니는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았다.
어머니는 내가 여섯 살 때 빚을 얻어 국숫집을 차렸다. 처음엔 체면이 안 선다고 개업을 반대하던 아버지도 나중에 살림이 불어나자 좋아했다. 엄마는 계획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언제까지 빚을 갚고, 언제까지 집을 사며, 돈을 어떻게 나눠 저금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정반대로 순간을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번 돈은 주로 자신에게 썼고, 놀라울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말하자면 ‘나쁘다’기보단 좀 난감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신혼 초부터 실망시켰다. 어머니에게는 구리반지 하나도 못해준 처지에 웬 목욕탕집 여자와 커플링을 하고 다녔다. 동네 분위기 탓에 아버지가 엄마 외에 애인을 가지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엄마도 새로운 애인을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동 후 잠든 어머니의 잔등을 쓸어주고 주름진 얼굴을 만져줄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머닌 애인 대신에 미용실에 모여 아줌마들과 고스톱을 치는 걸 더 좋아했고 틈틈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을 차리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그사이 내 심장과, 내 간, 창자와 콩팥은 엄마의 음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음식에 난 칼자국이 몸 속을 돌아다니며 나를 건드리는 것을 몰라 더 잘 자랐다. 어머니는 부엌 옆에 있는 광에 자주 들락거렸다. 나는 내 먹을 것이 가득한 광을 뒤적이는 엄마의 등을 보며 웅얼거렸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이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가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이다.”라고.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을 때, 처음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겐 어머니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내게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보다 빨리 시들어가는 동안 식구들은 어머니의 퇴행성 관절염을 걱정했다. 어머니는 혈압 약에 대한 약국의 방침이 성가시다 했고 우리도 혈압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맛나당’의 경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에게 전화해 동정하거나 나무라고,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성질을 낸 뒤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니 새끼냐?’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쓰러졌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죽기 전, 음식의 간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을 둘러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큰어머니의 지휘에도 불구하고 음식 나르는 여자들은 우왕좌왕했다. 성질 급한 어머니가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 관 속에서 소매를 걷고 나와 서빙을 도맡으려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