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Bucuresti, la 20a de aŭgusto (sab.) 2016
아침 9시 반에 보킨 선생과 네아구 선생이 와서 먼저 오늘 쓸 돈들을 준비한 뒤 호텔을 떠났다. 20분쯤 걸어서 Parcul Cismigiu 라는 중앙공원에 다다랐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가장 오래 된 공원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꽉 차있고 큰 호수도 있으며 많은 새들도 있어 루마니아 한 복판의 허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원 안에는 루마니아의 유명한 작가들의 동상이 많았는데 네아구 선생은 마치 미리서 공부를 한 것처럼 하나하나 간결하게 빠짐없이 설명해 나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빅토리아 대가 쪽으로 조금 가자 부크레슈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인 Kretzulescu 성당이 나오고 바로 왼쪽에 왕궁이 이어졌다. 바로 동쪽으로 차우세스크가 마지막 연설을 했다는 인민대회당 건물이 나온다. 독재자 차우세스크의 최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최후 연설을 한 뒤 헬리콥터로 잡혀가 죽은 이야기는 인류사에 큰 교훈으로 남아있어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광장 북쪽에는 바로 부크레슈티 대학 도서관이 있는데 마치 왕궁처럼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바로 루마니아 초대 왕인 Carlo 1세의 동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왕궁 앞을 지나는데 울타리에 왕과 왕비들의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왕비가 대를 이어 에스페란토를 한 에스페란티스토였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북쪽으로 가면 다음 거리에 루마니아 아테네움이 있다. 루마니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현재도 콘서트장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남쪽으로 빅토리아 대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였다. 향군회관 건물이 궁전 같다. 그리고 저축은행 건물 등 구시가의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이어지고 5성급 호텔들이 즐비하다. 국립박물관 앞을 지나서 다시 동쪽으로 들어가 옛 궁전박물관을 지나 얼마 안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미 시간은 1시간이 훨씬 지났다. 우리가 먹은 곳은 Hanului Manuc라는 곳인데 소피아나 티라나에서 보았던 터키 시대 상인들이 묵었던 숙소로 그 자체가 문화재인 건물이다.
옛날 팝송들을 들으며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국립박물관으로 와서 금박사와 교수님은 네아구 선생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구경하고 우리는 보킨 선생의 안내를 받아 호프온 호프옵 버스를 타고 시내구경을 하였다.
11시 반에 내려오니 두 에스페란티스토는 이미 와 있다.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기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민속촌 구경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였다. 이곳 회원들까지 합해 10명의 단체 승차권을 이미 구입해가지고 왔다. 5명씩 단체를 왕복으로 끊으면 본디 금액보다 꽤 싸게 산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1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 가서 2호선으로 바꿔 탄 뒤 다시 한 정거장을 가서 aviatorlor역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나오면 바로 찰스드골 광장이다. 오늘 가려는 해라스트라우(Herăstrău) 공원에서 가까운 곳이다.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찰스 드골 상이 서 있다. 러시아 코스모스호텔 앞에 서 있는 드골 상에 이어 두 번째다. 모두 미국에 대해 독자적인 소리를 냈던 드골에 대한 배려 때문에 세운 상들이다.
일본 정원을 지나쳐 큰 길로 나오자 개선문이 보이고 큰길 따라 조금 가니 민속촌 입구가 나온다. 민속촌의 공식 명칭은 디미트리에 구스티 국립 마을박물관(Muzei National al Satului Diritrie Gusti)다. 민속 야외박물관으로 전통적인 루마니아 마을의 삶을 보여준다. 10만 평방미터가 넘으며, 272동의 전국 각지 농민가옥들이 모여 있다. 1936년 디미트리에 구스티, 빅토르 이온 포파(Victor Ion Popa), 핸리 스타를(Henri H. Stahl)이 기획하여 만들었다.
수력을 이용하여 방아를 찌고, 포도주를 만드는 여러 기구들이 잘 옮겨져 있고, 소박한 시골 교회 모습도 볼만하다.
공원을 나오는 길에 머리만 조성한 큰 동상들이 보였다.
“모두 EU 가입에 찬성한 사람들입니다.”
“EU 가입해서 루마니아가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회원 국가를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머물 수 있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U 가입해서 루마니아에 나쁜 점이 무엇입니까?”
“병원에 의사가 없습니다.”
“훌륭한 의사 월급을 더 많이 주는 독일이나 영국으로 가지 무엇 때문에 루마니아에 남겠습니까? 의사뿐 아닙니다. 인구 2000만의 20%정도는 모두 외국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모두가 지금 한창 일할 나이의 인재들이 유출된 것입니다. 대기업들도 대부분 서유럽의 국제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 가입 뒤 우리 경제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옛날 차우세스크 독재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는 차우세스크 독재에 항거한 사람이지만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년퇴직을 해서 한 달에 300달러쯤의 연금을 받는다는 한 노병의 거침없는 비판과 현직 지식인의 가감 없는 표현에 현재 동유럽의 현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후 3시까지 민속촌을 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4시부터 6시까지 펑여우(朋友)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느긋하게 낮밥 겸 저녁밥을 먹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마리안 보킨 선생이 IFEF(철도연맹) 지부장과 함께 와 있었다.
짐을 찾아 역으로 와서 좀 기다리다 13번 홈에 들어온 기차를 탔다. 보킨 선생과 Florin Niegrea 박사가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부크레스티에서 몰다비아 키시나우 가는 길
19:05 부크레슈티를 떠나며 Maps Medpsms 431㎞에 6시간 6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그러나 기차로 14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이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상당히 견디기 힘들었으나 차가 떠나자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참을 수 있었다.
열차 칸은 우리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왔을 때 탔던 구식 칸과 똑같은 것이다. 야간열차지만 우리 단원들은 아주 능숙하게 준비한다. 앞으로 갈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반가움 때문인지 진호는 복도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화장실부터 각 쿠페 사정을 확인하여 여러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신이 나 있다. 소피아에서 올 때는 앉아서도 11시간을 탔는데, 누어서 잠자며 13시간 가는 것쯤은 이미 훈련된 단원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 칸 쿠페는 3~4실을 빼놓고는 대부분 텅비어 가기 때문에 이미 8월 말이 되어 비수기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