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Chisinau, la 22a de aŭgusto(lun.) 2016
차장이 문을 두드려 깨보니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여권 검사가 있다고 한다. 조금 뒤 3시 45분 우리 기차는 웅헤니(Ungheni)라는 역에 다다라 검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세관원이 와서 짐을 보는데 옆방이라고 했더니 그냥 지나가고 4시 10분 기계를 가지고 나타난 검사원이 여권을 검사하고 도장을 찍어준다. 4시 40분에 기차가 떠나는 것을 보니 많지 않은 손님들을 검사하는데 1시간이 다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가면 Prut 몰도바 강을 건너면 바로 몰다비아의 첫 도시인 Block-post 라는 곳에 다다른다. 5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다.
“몰도바 비즈니스? 투리스트?”
가장 먼저 세관원이 와서 묻는다. 투리스트라고 대답하자 그대로 통과다..
“독토르, No problem?”
이라며 가슴 쪽을 가리킨다. 의사인데 건강에 이상이 없느냐는 이야기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대답하니 바로 지나간다. 지금까지 많은 국경을 다녀보았지만 의사가 건강검진을 하는 곳은 처음 본다.
“파스포르트”
아주 키 크고 잘 생긴 젊은 검사원이 내 여권을 받아보고
‘레푸블리크 옵 코리아’
라고 읽어보면서 가져간다는 손짓을 하고 걷어 갔다.
5시 10분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2~3분 뒤 몰도바 쪽 Ungheni 역에 구내로 들어와 선다. 로밍한 사람의 휴대폰으로 외교부에서 테러에 대비해서 신변안전에 주의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위급한 상황에는 영사콜센터 안내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5시 30분 우리 기차는 바퀴를 갈기 위해 크레인 시설이 된 곳으로 아주 천천히 진입한다.
정확하게 1시간 뒤인 6시 30분 바퀴를 바꾼 뒤 웅헤니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가 20분 뒤인 6시 30분 출발하였다. 캄캄한 밤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아침 해가 찬란하게 비치고 몰도바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우선 달라진 것이 차가 아주 천천히 달린다는 것이다. 루마니아 쪽에서는 전동차로 빨리 달렸는데 이곳에는 석탄을 때서 달리기 때문에 느리고 창문 밖으로 연기가 지나가 문을 닫아야 했다.
“지붕 색깔이 모두 회색이네!”
지금까지 대부분 빨간 기와지붕이었는데 이곳은 모두 잿빛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뀐 것이다. 해바라기 밭에도 잡초가 많고, 옥수수 작황도 좋지 않다. 비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마니아가 유럽 권에 들어가고 유럽연합에 가입한 것에 비해 이곳은 러시아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우선 기차 철로가 러시아식이라 바퀴를 바뀌어야 했고, 몰다비아는 킬로포스트가 있다. 7시 30분 현재 킬로포스트는 1,633㎞다. 그렇다면 어디서 시작하여 그렇게 먼 거리가 되는 것인가. 웅헤니에서 수도 키시나우까지는 불과 100㎞ 좀 넘기 때문에 수도가 중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7시 35분 코르네스트 역에 들어선다. 그 뒤 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같다.
9시 7분 정확하게 몰다비아 수도 키시나우에 다다랐다.
역에서 내려 보니 코스모스 호텔이 멀리 한눈에 들어온다. 역 앞에서 호텔로 가는 길가에는 옷가지나 구두 같은 구제품들을 파는 시장이 아주 길게 이어진다. 싼 중국 물품을 파는 시장들보다 훨씬 저가의 물건들이다. 이 나라의 경제사정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우리 호텔이 있는 네거리는 대형 백화점이 두 개나 들어서 있는 곳이지만 곳곳에서 도로 공사를 하느라 멀지 않는 거리를 쉽게 갈 수 없었다. 호텔은 오래 된 것이지만 가격 대비 훌륭했다. 특히 근무하는 사람들이 성의껏 잘 해 주었다. 이곳에는 시내지도도 돈을 주고 사야 하지만, 호텔에서는 아주 간단한 지도를 복사해 놓았다가 손님들이 요구하면 준다. 내일 가는 버스표를 산다고 했더니 바로 전화해서 5시 50분차는 없고 6시 50분차는 자리가 10개 남아있다고 자제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아마 5시 50분차는 시즌에만 다니는 모양이다. 우리 차 다음에도 07:45, 08:10 차가 있지만 위의 두 차는 매일운행(zilnic)이라고 되어 있으나 뒤의 두 차는 Peste o zi라고 되어 있는데 구글링을 해보니 o zi 가 one day고 Peste는 번역을 못하는데 아마 하루 걸러서 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
방에 짐을 올려놓고 교수님과과 둘이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길가에 택시가 많지 않고 달리는 택시는 주로 이미 손님들이 탄 택시이기 때문에 호텔에 부탁하여 부르는 것이 최선이다. 호텔에서 전화하고 가격까지 적어서 차까지 안내해 준다. 35레이(2000원 상당)를 냈다. 20인석 소형 버스인데 아직 10자리가 남아있어 8장을 샀다. 출발장소가 ‘페론 2(2번 정거장)’라는 것까지 알아보고 다시 택시로 호텔에 돌아와 오데사에 출발 시간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 이미 시간은 11시 반이 되었다. 12시까지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12시에 모여 먼저 돈을 바꾼 뒤 낮밥을 먹기로 했다. 엄청나게 더운 날이다. 아마 금년 들어 가장 더운 날을 맞이한 것 같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건너편 백화점으로 가서 피자집에서 밥을 먹고 나니 이미 14시가 되었다. 오늘 낮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걷는 것을 줄이기로 하고 택시로 박물관까지 가서 그곳에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택시를 잡을 수가 없어 다시 우리 호텔로 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박물관으로 갔다.
몰다비아 국립 역사박물관(Muzeul Naţional de Istorie a Moldovei)
주소: Strada 31 August 1989 121 A, Chișinău MD-2012 몰도바
고고유물 수장품은 22,292점으로 발굴, 발견, 취득, 증여를 통해서 모았으며, 신석기, 구석기, 청동기, 철기, 로마시대, 봉건 이전시대, 중세로 나누어 전시한다. 오늘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쉬지만 특이하게 이곳은 금요일에 쉰다고 한다. 예상대로 박물관 소장품은 다른 큰 나라에 비해 수량이 적었다. 그러나 선사시대 몇 천 년 전의 채색 토기 같은 유물은 아주 특색 있고 수준이 높았다. 아쉽게도 교수님이 찾으시는 卍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물관을 보고나서 교수님 부부는 호텔로 가셨다.
스테판 셀 마레 공원
Mihai Eminescu National Drama Theater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16세기까지 왈라키아 공국으로 한 나라 한 국가였다. 공포영화 주인공으로 유명한 드라큘라 공작이 루마니아를 투르크의 침공으로부터 지켜내었다. 17세기 이후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오스만투르크에 복속되었으나 언어 종교 문화의 동질성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루마니아인들은 유사 이래 무수한 외침으로 시달려야 했다. 로마의 식민지 다키아로 시작해, 훈족 타타르 투르크, 러시아, 나치 독일, 그 뒤 러시아의 뒤를 이어 소련에 국토가 유린된 나라가 루마니아고 그 루마니아 인들이 잊지 못할 고토가 몰도바다. 크림 전쟁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루마니아와 몰다비아는 같은 나라 국민으로 살다가 소련이 1940년 몰다비아를 병합하여 루마니아의 영토에서 떨어져나갔다. 소련이 해체되자 몰다비아는 몰도바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다시 1940년 이전으로 돌아가 루마니아와 한 나라가 되어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루마니아는 흑해 연안을 넓게 차지하고 있지만 몰도바는 내륙국이다. 몰도바가 발전하여 잘 살고 싶으면 루마니아와 합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텐데 그렇게 안 한다.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가장 입지조건이 좋은 나라지만 부패무능한 정치로 인해 삶은 피폐하다. 그렇다 해도 소득수준은 루마니아가 몰도바보다 훨씬 낫다. 1인당 가처분 소득이 몰도바 3,500 달러, 루마니아 13,000 달러로 루마니아가 4배 높다. 몰도바는 유럽 최빈국이고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못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왜 갈라져 사는 것인지 궁금한데 결국은 지금껏 살던 식으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현실주의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루마니아인들은 몰도바를 귀찮게 여기는 것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몰도바를 통합해봤자 별로 나아지긴 커녕 몰도바 재건비용만 부담하는 게 싫고 몰도바 인들은 루마니아와 같은 말을 쓰기는 하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해 살아온 지난 시절의 유산이 구조로서 굳어진 마당에 루마니아와 합친다고 해봤자 나아질 것 없다는 계산이다. 몰도바에는 루마니아와 합쳐지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30% 가량 된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터키인(가가우즈) 들 루마니아 인들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자들이다. 몰도바는 1991년 독립 후 슬라브인들과 내전을 벌여 수천 명이 죽은 일이 있다. 몰도바 내 민족주의자, 즉 루마니아와 합치자는 쪽과 통합에 반대하는 쪽이 무력을 동원한 충돌이었다. 몰도바가 겪은 내전과 대립은 한반도 해방 후의 군사 충돌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위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을 보는데 도움이 되지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루마니아인들과 이야기 해보니, 우리가 남북통일을 원하는 것만큼 두 나라의 통일을 바랬다. 그리고 앞에서 본 비루마니아 계, 특히 러시아인들에 의해 이미 두 나라로 갈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루마니아와의 통일은 훨씬 쉬울지 모른다. 문제는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의 의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