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저는 두 살 때부터 이렇게 장애인으로 살며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접하면서 인과를 알았고, 내가
인과를 더 짓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보시라든가 그런 걸 받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은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남한테 보시는 안 받고 싶어도 안
받을 수가 없고
저도 보시를 하고 싶은데 몸이 이러니 보시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 답
갓난애기는 저 혼자 살 수 있어요 누가
돌봐야 해요? (돌봐야 하죠)
그럼 엄마가 애기를 낳아서 돌봤으면 애기가
엄마한테 빚을 진 건가요? (아니죠)
닭이.. 보통 때는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지만,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닭은 어때요? (덤비려고 하죠)
이런 것은 학습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현상, 자연의
현상입니다.
아무리 망나니 같은 여자도 자기 애는 어떻게
해서든 돌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윤리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빚을 졌다, 안 졌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배가 고파서 사과를 하나 따 먹었다고
사과나무에 빚을 진 건가요?
아니에요. 이것은
생명현상이에요.
그런데 내가 살기 위해서 사과 따 먹는 것과
관계없이
그냥
지나가다가 기분 나쁘다고 사과나무 가지를 부러뜨렸다면.. 이건 빚이 됩니다.
노인이 거동이 불편해서 젊은이로부터 부축을
받았다면, 이건 어때요? 빚이 될까? (아뇨)
마찬가지로 내가 신체 장애가 있어서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어줬다든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게 빚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거 너무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부모가 자식을 키워놓고 '내가 너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이러면 올바른 생각이 아녜요.
낳지를 말든지, 낳았으면 20살 까지는
키워야 해요. 이것은 부모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20살이 넘었는데도 돌보는 것은
자연현상에는 없습니다. 자연적인 원리가 아니에요.
내가 2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이것은 빚이에요.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20살이 넘었는데도 돌보는 것은
자식에게
빚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
돼요.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식들한테 빚을 지우고 있어요.
그래서 옛날 부모보다 어릴 때 키울 때는 덜
힘들었는데 나이 들어서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돌봐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어요.
이것은
우리 자식이 불효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래요.
그래서 스님이 말하잖아요. 어릴 때는 끔직히
돌보고, 크면 정을 끊어야 한다.. 이게 생명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어린 아이는 어른이
돌봐야 하고, 노인은 젊은이가 돌봐야 하고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자가 도와야 하고,
배우지 못 한 사람은 배운 사람이 가르쳐야 하고
장애나 환자는 건강한 사람이 돌봐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원리입니다.
이건 복이 되고 아니고.. 그런 것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내가 신체 장애가 있다 하면, 남한테는
말하면 안 되고, 내 스스로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냐 하면
'지난 생에 내가 살생한 인연이 있기에 내가
이런 과보를 받는구나.
그러니 이 생에는 절대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
법은 자기한테 적용해야 합니다.
이 좋은 부처님 법을 남한테 적용하면 비수가
됩니다.
내가
남 보고 '당신은 전생에 살생을 해서 그런 과보를 받은 거야' 이러면 비수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장애가 없는 사람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할 때
'당신은 살생의 과보를 받는 거야' 이런
생각으로 대하면 안 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해야 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대할
때
'당신은
건강하니까 당연히 나를 돌봐야 돼'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이건 내가 살생의 과보로 받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복이죠?
남처럼 걷지 못 하는 거 생각하면
불편하지만,
그래도 눈이 있어서 보잖아? 말할 수 있죠?
법문도 들을 수 있죠?
두 손으로 밥 먹을 수 있죠? 치아도
건강해서 잘 씹어 먹을 수 있잖아?
따지고
보면 좋은 거 많아요.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니까 '아이구, 이만 하길 다행이다.
아이구 부처님, 감사합니다'
기독교인이면 '아이구 하느님, 감사합니다'
자기
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누가 좋다? 자기가
좋아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고치지 않는 한
여기 부처님이 오신다 해도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어요. 아시겠어요?
지금 질문하신 분의 좋은 점은 '아, 내가
부족하구나. 빚을 짓지 말아야지' 하는 건 좋은데
자기 처지에 대해서 약간 자학하는 쪽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면 돼요.
지금 장애인수당
받나요? (네)
그래도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까 받지, 북한에
태어났으면 받을 수 있을까? (아니죠)
장애인수당을 정부에서 준다 하지만, 결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주는 거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100원, 200원씩 모아서 자기한테 주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아는 사람이든 아니든, 공무원이든 아니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숨 쉴
공기가 있어야 하고, 햇빛도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공기에도 감사해야 하고, 햇빛에도
감사해야 하고, 물에도 감사해야 하고. 곡식에도 감사해야 하고..
이 산천초목이 살려면 지렁이가 땅 속에서
구멍을 파고 다녀야 식물이 자랍니다..
그러니까 지렁이한테도
감사해야겠죠?
일체 산천초목, 천지신명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천지신명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원망하고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그래서 질문하신 분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라고..
내가 뭘 어떻게 남처럼 해줘야 된다, 이런
생각을 너무 하는 것도 안 좋아요.
저도 오늘 여기 올 때,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는데, 고마운 일이죠?
그렇다고
나도 운전해서 갚아야 해요?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나는 누구한테
운전으로 도움 받고, 밥 사줘서 먹고, 또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법문해서 갚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빚 갚는 마음으로 하지 '내가
강의하면 얼마 줄래?' 이러지 않는단 말예요.
그러면 노동이 돼요. 자기 재능을 파는 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그 도움을 재물로 받았다고 해서 꼭
재물로 갚아야 하는 건 아녜요.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주고, 밝게
살아주는 것도 세상 사람들한테 복 짓는 거예요.
항상 불평 불만 하고 찡그리면 주위에 보는
사람들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힘들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아이구, 저렇게 불편해서
어쩌나?' 하는데 오히려 본인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니야, 괜찮아~' 하면
그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보시하는 거예요.
그렇게 복을 지으세요.
^^
(출처 - 법륜스님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