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치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고, 단박 깨치고 점차 닦는 두 가지 문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으리니, 그것이야말로 몸을 뛰어나는 살길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공안을 참구 함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짓되,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이가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 한 화두를 올 때도 들고 갈 때도 들고, 들어 올 때도 의심하고 나갈 때도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생각할 길도 끊어져, 아무 재미도 맛도 없어지고, 마음꼬투리가 답답할 때, 그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 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려고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서,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또 평소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 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가라앉았다 떴다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