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능력을 위한 의식변형실습<내면작업 18일차: 마지막회>
○ 나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오늘 나는 두려움 대신에
사랑에 기초하여 모든 결정을
할 것을 선택한다.
당신의 빛은
내가 보는 모든 것이며
이는 오직
내안에 있는 빛의 반영일 뿐이다.
(성찰:
나의 생각, 언어, 행동이 하나로 꿰어져 일관성을 가질 때, 그리고 생각, 언어, 행동들이 나의 의식으로부터 파생되어 출현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나는 중심을 얻게 되며 또한 에너지가 가장 소비되지 않은 방식으로 살게 된다. 나무로 비유한다면, 생각이라는 뿌리, 언어라는 줄기 그리고 행동이라는 이파리들은 의식이라는 터전에서 저절로 성장하고 그 터전의 질에 따라 그 크기와 상태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은 우리의 사고, 언어, 행동의 모체이다.
우리의 의식은 단순히 연기자가 아니라 경험자로서 실재(what-it-is)에 연결을 하는 문이지만, 어떤 에너지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개되는 삶의 현상들(what-it-happens)은 달리 전개된다. 이미 진술한 대로 두려움의 에너지로 의식이 펼쳐지는가 아니면 사랑의 에너지로 펼쳐지는가에 따라 눈앞에 전개되는 실상들은 다르게 출현하는 것이다. 이를 이미 영사막(의식+에너지)과 스크린(실상)으로 진술하기도 하였다.
이 마지막 의식실습에서 이미 진술한 이해에 덧붙여 한 가지 더 추가하고자 하는 것은 ‘책임’과 ‘선택’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펼쳐지는 삶의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소유권(ownership)을 가질 것인가? 내 사고, 언어, 행동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즉, 의심, 통제, 공격, 무력감에 대신하여 어떻게 기쁨, 평화, 안전, 일치를 선택하고 내 안에서 발현시키도록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책임과 선택이 나로부터 발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식에서 만나는 두려움과 사랑의 에너지에 대한 또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정서적인 파동과 정보만을 뜻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타자에 대한 분리로부터 일어나며, 나의 생각속에 타자와 사물의 들어옴으로 인한 존재망각을 가져온다. 타자와 사물이 내 의식의 초점으로 들어와 있게 되면서 나는 나됨(I-AM)으로부터 분리되어 나는 책임과 선택을 할 수 없고, 상대를 비난이나 염려 혹은 상대로부터 나에 대한 비난으로서 자책감과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사랑은 나의 존재로부터 발현하며 타자와 사물을 감싼다. 이는 타자와 사물에 연결 능력을 가져오고 사랑에 의해 일치와 조화가 일어난다. 여기서는 나의 현존 의식이 지속되기 때문에 책임과 선택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내 의식에 있어서서 사랑의 에너지라는 영사기가 돌려질 때 내 앞에 전개되는 것은 타자와 사물에 있어서 ‘빛’의 실상들이다. 타자안에 있는 빛들이 보여지고, 나의 사랑의 에너지는 타자의 사랑의 에너지를 촉발시킨다. 내가 보기를 원하는 것이 내 앞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는 것은 ‘당신의 빛’이게 된다. 당신의 빛으로 인해 내 안의 빛이 더욱 명료히 밝아온다. 빛의 인드라망이 펼쳐지면서 빛이 빛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감을 불러 일으킨다.
당신의 빛은
내가 보는 모든 것이며
이는 오직
내안에 있는 빛의 반영일 뿐이다.
나의 의식이 사랑의 에너지 안에 머물 때, 당신의 빛은 더욱 투명하게 내게 다가오고, 내 안의 빛은 더욱 섬광의 빛을 발한다. 기쁨, 평화, 연민, 용서, 자유 그리고 생동감...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현존의 성스러움 속에 나를 잊고 빛의 투명함만이 흐른다.
<마무리 하며>
의식변형작업 18일간의 것이 이번으로 게시는 끝이 남니다. 이에 대한 저의 성찰문은 카페에 올려져 있고 다시 반복하여 다지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쉽사리 변형되지 않은 주형물(frame)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점차적으로 변형되거나, 혹은 극히 소수의 죽음, 심각한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러운 도약과 변형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의식변형실습의 핵심은 다가오는 실상들의 내용과 삶의 조건들에 대한 외부화의 것보다는 펼쳐진 외부의 것인 스크린에 실상을 가능하게 하는 영사기로서 의식과 에너지에 대한 근원적인 것에로의 주목하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은 용어와 마음의 자리매김 때문에 낯설지만 공자의 온고지신의 말처럼 익히고 습하여 들어가면 새롭고 선하며 온전한 것으로 변형되어지는 과정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지금의 나와 의식변형실습에서 보여주는 목표점사이에 균열이 있고, 이것은 저를 새롭고, 선하며, 온전한 곳으로 여는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제가 짧은 묵상과 실습의 글을 성찰하고 글을 풀어 쓰는 지난 20여일의 순간들이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부활절 몇 주간의 성서의 특별한 텍스트 이후 새롭게 만나지는 의식의 부활에로의 여정이 내 영혼의 가슴을 축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길위에서(on the way)’ 만나는 마가가 소개한 그리스도의 현존처럼 그러한 ‘길’위에서 각자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제자직이 형성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