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찰과 묵상 1
실재에 대한 인식의 렌즈로서 로고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지 전부터
말씀(로고스)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1:1)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실패, 어둠, 좌절 그리고 무력감이라는 실존적 무(無)의 경험에서 어떻게 참이라는 진실의 경험, 다시 일어서는 경험, 삶이 궁극적으로는 신성하다는 근원적 체험을 놓치않는 경험을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요한은 우주를 들어올리는 하나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서 실재-인식-행위에 대한 오메가 포인트를 제시한다. 그것은 근원적 시작 곧 ‘한 처음’에 대한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려준다. 실패, 무력감, 좌절, 어둠의 중압감에 의해 움직임을 가질 수 없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근원적인 시작’으로서 <한 처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한 처음>은 인식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그는 어떤 인식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삶의 중압감과 보이는 현실이라는 허상·망상을 깨는 말씀(로고스)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은 눈과 오감으로는 볼 수 있는 실체는 아니다. 그러나 로고스는 “보이는 현실”을 넘어서 실재와 연결하는 형이상학적 끈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실재로서 신과 연결한다는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로고스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점이다. 삶의 결과라는 유무(有無)와 상관없는 선험적인-경험이전의- 실재로서 로고스는 그 무언가의 있음과 없음 이전에 모든 존재의 개별성-만물-에게 주어진 실재의 요소이다. 그것은 그 무언가 창조되기 이전에 있는 창조자의 속성으로 존재한다.
실재의 선함을 만들어내는 그 어떤 유의 경험은 창조(creation)라는 것을 통해 일어난다. 존재의 신성함을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창조라 말하고, 그 창조는 말씀, 곧 로고스, 지혜, 능력의 존재적 요소를 통해 형성된다. 우리는 그 말씀을 끈으로 해서 존재의 근원, 곧 궁극적 실재인 ‘하느님’(이는 궁극실재에 대한 메타포이다)이라는 존재의 궁극성에 맞닿게 된다.
존재의 궁극성으로서 하느님의 “계심”과 로고스의 “함께 계심” 그리고 그 존재의 궁극성과 “똑같은 동일성”에 대한 경험은 삶의 궁극성과 의미있음에 대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실존적 증언을 말한다. 부정적 현실에 대해 궁극적인 의미있음의 “예(Yes)"의 실존적 기반을 말하며, 또한 그것은 있음(existence)의 궁극성으로서 그리고 의미의 궁극성으로서 ”하느님“이란 실재(esse)에 대한 무제약적인 긍정을 말한다. 나의 있음(being)은 그러한 궁극성으로서 실재(esse)에 연관이 되어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은 바로 로고스(logos)를 통해 얻어진다.
그 로고스(지혜, 말씀, 능력, 실재의 통로)는 궁극 실재(esse)를 비추어 주는 창(window)이고, 이를 통해 삶의 궁극적 힘이자, 궁극적 실재이자, 궁극적 의미인 ‘하느님’에 대해 곧 실재의 의미성에 대해 확증해 준다. 이 로고스는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선재>하고, 궁극 실재이신 하느님과 <공재>하며,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으로서 <실재적 동일성>을 지닌다.
선재, 공재 그리고 실재적 동일성으로서의 로고스와 접촉함으로써 우리는 보이는 현실의 망상을 넘어 무엇이 진실로 있는지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을, 무엇이 궁극적으로 있게 될 것인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소명에 대한 자각을, 다시 말해서 꿈에서 깨어남을, 죽음에서 삶에로의 인식을 얻게 된다.
로고스를 말한다는 것은 이렇게 실재-인식-행위에 대한 실존적인 깨어남에 대한 열쇠 혹은 문을 여는 이치를 밝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무(nothingness)라는 어둠과 무력감이라는 내면의 실상과 외면의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실제로는 그 무언가의 있음(being)에 우리의 실존이 뿌리박혀 있고, 그 실존은 단순히 있음이 아니라 <계심>이라는 신성한 실재와 이어져 있어서 우리의 실존과 그 실재간의 이 연결끈으로 우리의 개별성은 그러한 실재의 전체성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실존적 자각을 로고스를 통해 확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유(Being)의 지속적인 확장으로서 창조(creation)의 이치이다. 우리는 그러한 실재 곧, 삶의 의미성을 답보한 실재이신 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로고스를 통해 알게 되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을 통해 의미있는 활동과 움직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로고스는 이렇게 우리의 눈을 열어 실재-인식-행동에 대한 참된 지식을 열어준다.
로고스는 우리가 보는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서 오감과 여섯 번째 인식인 내면의 투사라는 정신구조(mindset)를 넘어서 참다운 실재로 이어주는 제 7의 인식론적 렌즈이자 궁극실재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능력(뒤나미스)이 된다.
(20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