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노동의 과제
정현철(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
정치의 계절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에 대한 논의는 없고, 온통 대권주자들의 사생활을 중심으로 원색적인 황색저널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가끔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당 120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는 후보의 이야기로 술렁이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진지한 논의로 이어지기 보다는 원색적인 비난만 난무하다. 120시간 노동에 대한 논란이 노동시간에 대한 의제를 형성하고, 현재의 산업구조와 노동현실 속에서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적당한지를 논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무구한 생각이다. 물론 아직 각 당의 대권후보가 정해지지 않았고, 그러한 논의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좀 더 지나면 한국 사회 비전에 대한 건강한 논의가 될지 지켜 볼 일이지만, 기대난망이다.
노동 현장은 진보정당 분열 이후 정치에 시들하다. 정치가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분열상태에 대한 비판 앞에 맥을 못 춘다. 정치를 외면하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기도 하다. 노동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사람들도 꽤 있다.
현대 사회구조에서 정치를 외면하고 노동운동을 진척시킬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운영원리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자본론을 읽으며 ‘절대적 잉여가치’는 어쨌든 노동조합 운동으로 제어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대적 잉여가치와 기계화 부분’으로 넘어가자 이는 노동조합운동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하게 됐다. 즉, 생산과정에서의 분배문제는 노동조합운동으로 일정 정도 해결할 수 있으나, 기술의 변화와 발전, 생산과정의 고도화는 노동조합운동을 뛰어넘어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노동조합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과정 이후의 분배 문제가 곧 정치의 영역인 것이다. 사회적 자원과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정치의 근본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정치와 노동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의 계절에 한국사회의 노동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2021년 현재 한국사회 노동의 주요의제는 무엇일까. 일단 노동을 둘러싼 환경을 살펴보자.
기후위기 누구나 동의하는 문제다. 기후위기가 환경파괴 수준을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기후위기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탄소다. 산업혁명이후 인류의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됐던 석탄, 석유가 지구를 덮히고,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당면 과제이고, 석탄기반 산업들에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친환경 산업 및 기술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구조조정도 피할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인 대량생산 대량소비 구조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대량생산에 기반한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구조였다.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만들고 자원을 낭비하면서 자본의 배를 불려왔고, 노동자들도 암묵적 동조자가 되어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지구를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나누는 과정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과잉 생산체제를 그대로 두고 석탄산업만 친환경 산업으로 바꾼다고 해서 기후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좀 더 장기적이고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어쨌든 기후위기는 우리 시대의 주요한 화두이며, 노동자들과도 뗄 수 없는 현안이다. 다행인 것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혹은 자본가, 노동자를 불문하고 기후위기라는 화두앞에 자유롭지 못하며, 공동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지금껏 이런 의제는 없었다. 통합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기술의변화다. 소위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의 발달은 자본에는 기회일 수 있으나 노동자들에게 위기로 느껴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부상, 플랫폼 노동의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또 생겨날 것이다. 사라진 일자리에서 종사하는 노동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새로 생겨날 일자리가 질 나쁜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다. 기술 변화에 따른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줄어든 일자리만큼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또한 인구감소도 노동을 둘러싼 주요한 환경변수다.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환경의 변화는 로봇의 부상, 정년연장, 이주노동자 문제 등이 주로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노동운동, 혹은 정치가 풀어야 할 주요한 노동과제는 다음과 같다.
가장 주요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불평등, 양극화 해소이다. 또한 재벌중심 체제의 해소와 선진국형 산업정책 및 일자리 정책으로 전환도 주요한 과제다. 노동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노사관계 변화와 시대적 화두인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만들기도 우리 시대 당면과제다.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 노동안전, 노사관계, 복지 등 영역별 세부과제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임금영역에서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주휴수당 문제,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노동시간은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정년연장의 문제가 있다. 고용영역에서는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화, 실사용자의 책임강화와 사용자성 인정, 플랫폼노동에 대한 법제도 정비, 중간착취 근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안전영역에서는 산업안전인력 획기적 강화, 산재은폐 문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범위, 직장내 괴롭힘, 과로, 자살 등 특화된 정책 대안, 휴게시간 늘리기, 진료시간보장 (유급병가도입) 등의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사관계는 초기업단위 교섭 확대와 단체협약 효력확장으로 실질적인 산별교섭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 해야 한다. 영세사업장의 노조 조직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노조조직률 30%로 높여 내야 한다. 일터 민주주의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5인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은 시급해 해결 해야 할 문제다.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대책으로 실업급여를 확대하고, 근로복지기본법을 개정하여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복지 혜택을 높여 간접적으로 기업체간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년 대선이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기회 있을 때마나 위의 주제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300여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본은 끊임 없는 변화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우리는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알 고 있다. 자본의 무한질주는 양극화와 제국주의를 만들고 대공황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비극을 불러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적 요소의 적극적 도입으로 자본을 통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황금기를 만들 냈다. 80년대 이후 자본은 다시 사회의 통제를 벗어나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사회는 헬조선이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양극화와 불평등, 기후위기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다시 자본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른 말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사회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는 정치의 근본문제이자 오랜 숙제다. 또한 노동운동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