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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유민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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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이야기 스크랩 육영수 여사.....
오마아르 추천 0 조회 26 13.06.26 21: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50년 8월. 피란지 부산의 영도다리 옆 허름한 음식점.

군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소박한 차림의 여자 하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두 사람 사이의 옆자리에 앉은 송재천 소위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낸다.

 “이 분은 나의 대구사범학교 1년 선배이고 또 현재 직속부관이시며

육본 정보국 제1과장님이신 박정희소령님이고...또 이 사람은 제 6촌여동생 육영수양입니다.”

이날 맞선 자리에서 여인은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군화 끈을 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그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뒷모습은 얼굴과는 달리 거짓말을 못합니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본 듯 했죠.

" 육영수의 부친은 귀한 딸을 전란 중에 군인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불안해서 반대를 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림질을 할 때 라디오를 켜놓고 '마포종점'을 흥얼거리던

처녀는 그를 만난 뒤부터 '그대의 것이 되었답니다'로 끝나는 연가로 노래가 바뀌었다.

어찌나 자주 부르는지 집안 사람들이 모두 다 욀 정도였다고 한다.

 

1950년 12월12일 대구 계산성당. 전쟁 통에 결혼식이 있었고 대구시장 허억(작고)이 주례를 봤다.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 착오로 두 사람의 이름을 바꿔말하자 식장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신부에게 반지를 끼우는 차례가 됐는데 갑자기 신랑이 주머니를 뒤집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다른 쪽 주머니에서 반지를 찾아 무사히 신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곧 중공군이 개입하여 전황이 급박해지자 신랑은 신혼 닷새만에 강원도에 투입되었다.

당시 박정희는 9사단 참모장으로 중령이었고 34세였고 육영수는 26세였다. 

 

 

 

 

52년 7월2일 박정희는 '잠자는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라는 시를 짓는다.

 

밤은 깊어만 갈수록 고요해지는군

대리석과도 같이 하이얀 피부

복욱한 백합과도 같이 향훈을 뿜는 듯한 그 얼굴

 

숨소리 가늘게, 멀리 행복의 꿈나라를 거니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 잠든 얼굴 더욱 예쁘고

평화의 상징! 사랑의 권화!

 

아!그대의 그 눈, 그 귀 ,그 코,그 입

그대의 인과 자와 선의 세가닥 실로써엮은

한폭의 위대한 예술일전저

 

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

길이 빛나고 아름다워라.

 

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

한 개 사나이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의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서

인생코스가 되어주오

 

그대 편안히 잠자는 모습을 보고

이밤이 다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53년 서울 고사북동(성북구 보문동) 언덕바지 동네 월셋집에 젊은 부부와 딸 하나가 이사를 왔다.

외할머니와 이모가 함께 사는지라 20여평의 방 세 칸 짜리 집을 썼다.

박준규 전국회의장 집이 마침 그 앞집이었다.

“저어기, 물 좀 길을 수 있을까요? 저희집 수도가 나오지 않아서요.”

해사한 얼굴을 한 뒷집아낙이 박 전의장 부인에게 다가와 물었다.

나중에 바깥어른이 육군 대령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놀랐다고 한다.

이 이웃은 양지바른 장독대에 걸터앉은 세 살 바기 소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자주 들었다.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소녀는 아빠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쪼르르 달려나갔는데 그러면 아빠는 소녀를 안아 들어올린 뒤

거꾸로 뒤집어놓고는 장난을 쳤다. 조금 뒤엔 소녀가 앙앙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박근혜였다. 

 

61년 모초등학교. 아이들이 새로 전학 온 한 아이 곁에 둘러서 있었다.

“빨리 열어봐. 빨리.” 아이들은 대통령 딸의 도시락 반찬이 뭔지 궁금해서 재촉하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보리쌀이 두툼한 혼식밥이 보인다. 소시지 2개와 김치깍두기가 전부다.

“뭐, 이래? 대통령도 별 거 아니네.”

 

67년 4월 청와대 뜨락에 백목련이 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육여사는 한 출입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예요. 작년에 20여 그루 심었는데 꽃이 필 때쯤 되니까 소녀처럼 가슴이 뛰네요.

만개하면 꼭 구경오세요.”

 

71년 겨울 전남 익산군에 있는 나환자 정착촌으로 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대통령 영부인과 한센병 투병시인 한하운이 탔다.

“이거 하나 드실래요?” 부인은 시인에게 귤을 내밀었다.

고개를 돌려본 한하운은 깜짝 놀란다. 손가락이 없이 까기가 불편한 그를 위해 곱게 귤을 까놓았기 때문이다.  

 

74년 8월15일 아침. 육여사는 조간을 펼쳐들고 붉은 볼펜으로 주요기사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는 전날밤 청와대에 머물렀던 어머니 이경령여사에게 문안을 드렸다.

그날은 참석할 행사가 많았다.

10시부터는 광복절 기념식이 있고, 11시엔 지하철 개통식이 있다.

밤 6시반엔 광복 경축 연회도 있어 마음이 바쁜 날이었다.

대통령과 함께 식탁에 앉았으나 기념식 전에 해놓아야할 일이 생각 나서 아침을 얼마 들지 못하고 숟가락을 놨다.

 

10시가 가까워지자 간밤부터 내리던 비는 멎었지만 인왕산 주위는 여전히 비구름이 새까맣다.

기념식장으로 향하려는데 이여사가 아래층에 내려왔다.

“어머니, 주사 맞으시고 텔레비전 꼭 보고 계세요. 오늘 제가 나올 거예요. 잘 나오나 봐주세요.

” 대통령 부부를 태운 승용차는 장충단 국립극장을 향했다.

정각 10시. 극장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큰 걸음으로 앞서 걷는다.

“저 좀 보세요. 천천히, 함께 가세요.” 아내가 말하자 그는 돌아보며 씽긋 웃는다.

“그래. 나도 속도를 줄일테니 당신도 속도를 좀 내시오.”

 

10시6분. 식이 시작됐다. 이경령여사는 딸의 부탁 대로 열심히 TV를 보고 있었다.

대통령이 축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탕, 탕탕, 총소리가 들렸다. 한 발에 이은 두 발의 총성.

연설대에 있던 대통령은 몸을 낮췄다. “잡았나?” “총 쏘지마!” 그는 두 마디를 낮게 외쳤다.

청중 쪽으로 쏴서 사고가 날까 우려한 말이었다.

그때 단상에 앉아있던 영부인의 상반신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그것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저기, 우리 식구한테 가봐.”

그 소리와 동시에 합창단 바로 뒤에 앉아있던 여인 하나가 1m가 넘는 단상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병원, 병원!” 대통령이 소리쳤다.

그녀는 독립투사의 부인인 탁금선씨(올 6월6일 타계)였다.

탁씨는 영부인을 서울대병원까지 안고 갔다. 그녀는 지혈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옷고름을 풀고

경호원의 넥타이까지 풀었으나, 피는 멈추지 않았다.

 

 

 

“각하, 가만히 계십시오.” “잡혔나?” “예.” 소란이 가라앉자

대통령은 “연설을 계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총성으로 중단된 구절 뒷문장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퇴장 때 그는 아내가 앉았던 자리를 보았다. 초록빛 빈 의자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내가 남긴 한짝의 고무신과 핸드백을 직접 주워들고 나오다가 경호원에게 넘겼다.

범인으로 체포된 재일동포 문세광(당시 23세)은 그해 12월20일 사형된다.

이날 김두한의 후계자인 ‘낭만주먹’ 조일환씨(올 7월15일 타계)는 격분하여 단지(斷指)를 한다.

 

 

 

16일 밤 청와대 본관 빈소에서 밤샘을 하며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다.

 “참 저 사람은 매사에 그렇게 지성일 수가 없었지.

언젠가는 나병환자를 방문하고는 일일이 악수를 하더군.

뭉그러진 손을 잡은 뒤에 내게도 그 손을 잡아주라고 내밀더군.

그래서 나도 선뜻 그 손을 잡았어.”

 

그 무렵 맏딸 박근혜는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사관 파우치를 통해 어머니에게 안부 편지를 보냈다.

그 뒤 참변 소식을 들었고 그녀는,

부랴부랴 귀국해서 자신보다 늦게 도착한 자신의 편지를 읽으며 오열했다.

 

75년 8월 진해의 한 섬에서 박정희대통령은 떠나간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짓는다.

 

임과 함께 놀던 곳에 나 홀로 찾아오니

우거진 숲속에서 매미만이 반겨하네

앉은 자리 밟던 자국 모래마다 밟던 자국

저 돝섬 백사장에 체온마저 따스해라

파도소리 예와 같네

짝을 잃은 저 기러기 나와 함께 놀다 가렴

 

이 시는 '고향의 강'과 '추풍령'을 부른 옛날가수 남상규가 2004년 노래로 불러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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