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도 약이 된다
불교에 입문하여 선을 수행하고자 발심한 사람이라면 먼저 선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선수행하는 방법 그리고 선수행 중 나타나는 경계를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선수행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반드시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선정 중 나타나는 경계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때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잘못하여 삿된 스승을 만나면 영원히 구제하기가 힘들게 된다. 그러나 선정 중에 나타나는 경계를 올바르게 알면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들이 알면 약이 되지만 모르면 장애가 되는데 이를 통칭해서 마(魔)라고 한다.
현실에서도 장애가 생기면 현실이 원만할 수 없듯이 참선 중에 선정 속에서도 마장이 생기면 참선을 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수행자는 마에 대해서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능엄경』의 「변마장(辯魔障)」은 선문(禪門)에서 주목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선수행할 때 선정 가운데에 나타나는 마의 모습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수행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엄경』에서는 마에 대해 제9권과 10권에서 수행자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50가지의 마경(魔境)을 밝혀서 경계의 옳고 그름을 명쾌하게 가려주고 있다.
『50마경』은 오음(五陰)을 마(魔)로 보고 각 음(陰)마다 10개씩의 마상(魔相)을 제시하고 있다. 오음, 즉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녹아 없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10가지씩의 마경을 제시해 선수행함에 장애를 극복하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모두 50가지로 세분하여 세밀히 설명하고 있다.
오음은 오온(五蘊)이라고도 하며, 색·수·상·행·식의 총칭이다. 색(色)이라는 것은 인간의 육체, 즉 물리적인 요소를 가리키는 것이고, 수(受) 이하의 네 가지는 정신적인 요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수는 감각이고, 상(想)은 표상이며, 행(行)은 의지이고, 식(識)은 판단 이성의 작용이다. 『잡아함경』에서도 나타(羅陀)가 부처님께 마의 정체를 물으니, “색수상행식 모두는 마라고 관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즉 부처님께서도 색·수·상·행·식 오음의 작용이야말로 ‘마의 정체’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오음이 녹아 없어지는 순서는 색음·수음·상음에서 행음·식음의 순서로 차례차례 소멸된다. 처음 색음에 10가지 마경(魔境)이 나타나는데 이를 수행하여 극복하고 나면 색음의 마경은 소멸되나 수음을 비롯한 나머지 마경들이 남게 된다. 이렇게 하여 식음의 10가지 마경까지 극복하고 나면 비로소 온갖 마경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음이 열리어 도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집착하면 마장이 된다
간략하게나마 50마경에 대해 설명해본다면, 색온마(色蘊魔)는 색음마(色陰魔)라고도 하는데, 수행자가 오관의 생각이 소멸되어 일체가 정밀하게 밝아서 동정에 부동하고, 기억하고 잊어버림이 여일하게 되면, 삼매에 들게 되는 것이 마치 눈 밝은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간 것처럼 정밀한 성품은 오묘하고 청정하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을 색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라 하고, 만약 눈이 밝아져서 시방세계가 분명해지면 다시는 어둠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때에 비로소 색음이 다하여 천재지변은 물론 질병과 전쟁 등의 재난에서 벗어나 집착하고 고집부리고 망령되고 어리석음의 견고망상(堅固妄想)이 소멸되게 된다.
견고망상을 여의고 겁탁(劫濁)세계에서 초월하여 색음마가 멸진되어가는 과정에서 10가지 경계가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모든 경계가 단지 선정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일 뿐임을 알면 더욱 공부가 향상될 수 있지만 부처님의 경지로 착각하여 집착하면 마가 되는 것이다.
수온마(受蘊魔)는 수행자가 삼매를 닦는 과정에서 색음이 소멸되면 부처님 마음을 보되, 마치 거울 속에 자기의 모습이 나타나는 듯하여서 소득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쓸 수 없는 것이 마치 가위눌린 사람이 수족이 온전하고 보고 들을 수 있지만 능히 동작할 수 없는 듯하니 이것을 수음의 세계라 한다.
만일 가위눌린 증세가 쉬면 마음이 몸에서 떠나 제 얼굴을 보게 되며 가고 머무는 것이 자유로워서 조금도 막힘이 없어지면 이때가 수음이 다한 때이다. 수음은 허망하게 밝은 망상(虛明妄想) 곧 환상과 착각에서 생기기 때문에 허명망상이 없어져야 멸진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음이 없어지면 견탁을 초월하게 되는데 견탁(見濁)이란 자기 소견만 옳다고 고집부리는 것이다. 수음을 소멸해가는 과정에서 10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상온마(想蘊魔)는 수음마가 소멸되면 비록 누진(漏盡)은 얻지 못했으나 마음이 형체를 여읜 것이 마치 새가 둥우리에서 나온 듯하여 뜻의 자재함을 얻어서 가는 데마다 장애가 없게 된다. 상온마는 생각이 자유자재한 망상 곧 융통망상(融通妄想) 때문에 온갖 번뇌를 초월하지 못해서 오는 마장으로서 상온마가 다하면 번뇌 또한 자연히 소멸된다. 상음(想陰)을 소멸해가는 과정에서 10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행온마(行蘊魔)는 수행자가 상음이 다하면 꿈과 생각이 소멸하고 잘 때와 깰 때가 한결같으며 각(覺)의 밝음이 비고 고요한 것이 청명한 허공과 같아서 다시는 거칠고 중한 티끌세계와 그림자 같은 허망한 일이 없어진다. 행은 보이지 않는 습에 의한 망상인 유은망상(幽隱妄想)으로 인해 중생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만약 성품이 근본자리에 들어가 근본 습기가 맑아져서 마치 파도가 그침에 화하여 맑은 물이 되는 것같이 되면 중생세계에서 초월하게 된다. 행음(行陰)을 소멸해가는 과정에 10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식온마(識蘊魔)는 잘못 전도된 생각으로 인해 수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오는 마장으로서 앞에서 4단계를 모두 멸진하고 맨 마지막의 과정으로 열두 종류 생명체 가운데 어떤 생명체를 받든지 동요되지 않고 수명을 초월하여 시방세계와 몸과 마음이 명철해지는 때를 식음(識陰)이 다한 것이라 한다. 이 식음을 소멸해가는 과정에서도 10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마경(魔境)은 장애가 아니라 오음이 녹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50마경』은 우리가 실제로 참선할 때 선정 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는 경계들을 상세하고 체계있게 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들은 색·수·상·행·식이 차례대로 녹으면서 나타나는 경계들로 색음(色陰)이 다하면 견문(見聞)은 두루할지라도 마음이 몸을 떠나 자재하지 못하고, 수음(受陰)이 다하면 마음이 몸을 떠나게 되니, 가고 머무름이 자유로운 자재한 몸을 얻게 된다.
상음(想陰)이 다하면 생각과 번뇌가 다하여 오매일여(悟昧一如)가 되며, 행음(行陰)이 다하면 생명의 근원을 알 수 있고, 식음(識陰)이 다하면 생명의 근원을 다할 뿐 아니라 온갖 번뇌와 미망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된다. 이때 비로소 큰 깨달음이 오게 되는 것이다.
단 이 능엄경에서 말하는 50가지 마경은 정말 장애가 아니라 선정 중에서 색·수·상·행·식 오음이 차례대로 녹는 과정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좋은 현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들을 성인이 얻은 경계라고 하여 집착하는 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얻은 경계라고 한다면 일득영득(一得永得)해야 하는 것이다. 즉 성인의 증과(證果)는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지는 것인데, 이 각 오음 정 가운데의 경계는 그렇지 못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인은 오음 정 중에 나타나는 경계가 공용(功用)의 우연임을 알아서 성인의 경계라는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경계가 되겠지만 성인의 경계인 줄 알고 아만(我慢)을 가지거나, 만족하여 이 경계에 머물러 수행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결국 마의 침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참선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금 얻은 경계에 만족하는 것, 성인이 증득한 경계와 똑같은 경계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경계를 구하거나 탐착하는 것, 경계를 계탁하여 사견(邪見)을 내는 것, 수승한 경계에 집착함으로 해서 결국은 성불하지 못하고 마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선지식들은 이러한 것을 가장 경계하고 경책하여 왔던 것이다.
혜거(慧炬) 스님은 1959년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탄허 스님 회상에서 대교과를 수료, 영은사에서 역경사 양성 3년 결사에 동참. 탄허 대화상의 역경을 보조하였다. 조계종 20교구본사 선암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탄허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금강선원(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불자들의 경안을 열어주시는 한편 선수행을 지도하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