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백화점에서 예쁜 옷을 보고 “여보, 이 옷 참 이쁘지?” 할 때, “응, 그래, 이쁘네” 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당신은 아마 하루 종일 아내의 불편한 심기를 견뎌야 할 것이다. “여보, 이 옷 이쁘지” 라고 한 말은 그 옷에 대한 감상을 말한 것이 아니고 “나 이 옷 사줘” 하는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한 그대의 우둔함에 대한 대가이다. “자기야, 저 여자 이쁘지” 라고 했을 때 “어, 그래, 정말 이쁘네” 하고 무심코 대답했다간 그대는 아마 토라진 그녀를 달래기 위해 한동안 진땀을 빼야 할 것이다. “자기야, 저 여자 이쁘지” 했을 때 “응, 이쁘긴 한데 자기보단 훨씬 못하구만” 이라고 하는 재치가 없었던 대가이다. 신혼의 아내가 “자기야, 오늘은 꼭 껴안고 자자” 한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오늘밤은 정열을 불태우자 라는 뜻으로 알고 마음을 다잡아먹고 전의를 불태울 것이지만 기실 “자기야, 오늘은 꼭 껴안고 자자”의 진짜 뜻은 말못할 어떤 이유로 인해 오늘은 아무 짓도 하지말고 그냥 껴안고만 자자 라는 뜻인 줄은 알지 못한다. '여자는 다루기 힘드니라'고 하신 공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여자들의 행동에 대해 “뭐가 그렇게 복잡해, 갖고 싶으면 갖고싶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지” 라며 볼멘소리를 한다면 남자에게 여자란 이해해야할 존재가 아니고 다루기 힘든 존재가 되고 만다. 여자들의 마음은 거울 벽 미로가 있는 마법의 성 같기도 하고 여름 하늘 구름 모습 같기도 하다. 보통의 남자들은 델리게이트 한 여자들의 심리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혹여 공자님은 그때 여자들의 이러한 심리를 간파하고 다루기 힘들다고 하였을까. 아니면 소크라테스처럼 진짜 다루기 힘든 부인을 두었던 것일까.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기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밥 뭇나” “그만 자자” 퇴근해서 돌아 온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 세 마디 뿐이라 할 지라도 그 세 마디 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다 들어 있는 줄은 잘 알지 못한다. 빡빡한 사회생활 속에서 어떠한 약점도 보이지 않고 작은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늘 절제와 긴장 속에 살아오다 집에 오면 그 긴장의 끈을 일시에 놓아버린다. 그래서 말도 함부로 하고 교양 없이 굴기도 하고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일도 곧잘 한다. 그럴 때는 아내가 어머니나 누님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자기의 모순된 행동까지도 감싸안아 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이 집에서나마 해방된 기분을 느껴보려는 일종의 보상심리 인줄은 알지 못한다. 남녀 상호간에 상대방은 나와는 전혀 다른 의식구조를 가졌다는 대전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남녀의 트러블은 불가피한 일이다. 오죽하면 존 그레이는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 이렇게 다른 행성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로 파악하려 했을까. 흔히 여성 예찬론자를 페미니스트라 한다. 페미니즘은 라틴어의 페미나(femina 여성)에서 파생된 말로 <남녀평등주의>란 의미지만 다소 의미가 확대 발전하여 <여권주의>, <여성 예찬>의 의미로도 쓰인다. 인간은 본래 평등한 것이고 남녀 또한 평등할진대 왜 굳이 <ism>이란 이념적 개념인 페미니즘이 생겨났을까? 그것은 결국 인류 역사에서 남녀는 평등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암 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어디서 아녀자가 나서길 나서' '명태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씩 패야 제 맛이다' '여자의 웃음소리는 담장을 넘어 가서는 안 된다' 등.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 전통 사상을 잘 나타내는 속담과 격언들이다. 지금도 일부 남성은 여자가 운전하는 걸 보면 밸이 뒤틀려 “집에서 밥이나 하지 여자가 운전은 무슨 운전” 하며 노골적 야유를 하고, 여자는 “밥하려니 쌀이 없어 쌀 사러 나왔다 어쩔래” 하고 항변을 한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동양은 예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다. 서양에서는 흔히 레이디 퍼스트, 레이디 엔 제너먼이니 해서 겉으론 여성 우선 시, 여성 존중의 사회 같아 보이지만,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토마스 하디의 <테스>, 호손의 <주홍글씨> 등을 보면 서양 사회도 동양 못지 않은 남성 우월주의, 남성 중심의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반이 여자이고 남과 여는 상호 보완적인 존재임에도 남성은 여성에 대해 그 절반의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이러한 모순되고 공평하지 못한 사회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생겨난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모름지기 여자란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가. 여자로 인해 가슴 설레이고 여자로 인해 행복하고 여자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며 나아가 사랑하는 여인이 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되어 본 경험은 없었는가? ' 이 세상에 여자 없이는 무슨 재미로 / 해가 떠도 여자, 달이 떠도 여자 / 여자가 최고야 ' 많이 듣고 부르든 대중가요의 가사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말 그대로 그 시절의 세태와 대중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한다. 여자가 최고라고 노래하면서도 막상 여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며 알려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그런 중에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근자에 와선 여권이 신장되어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남자가 여자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하는 역전 현상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피상적 현상일 뿐 남녀 공히 진정한 상대의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닌 듯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상과 철학의 근저에는 음양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음양의 조화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깨우치는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음과 양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개념이다. 반대란 다름의 이쪽과 저쪽이다. 남과 여도 음양의 양극이다. 이 이질적인 두 개체가 조화를 이룰 때 평화와 행복에 대한 흔들림 없는 패러다임이 구축될 것이다. 자기와 다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대에 대한 탐구가 결국 상호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모여서 세계가 되고 가족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가족은 남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만남 이후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회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였는가. 또 앞으로도 내내 많은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 많은 시간 중에서 얼마간, 아니 조금만 여성학에 투자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자. 인류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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