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우는데 내가 어떻게 가,
아니야 어서 가줘 나 슬퍼서 우는 거 아니야.
나는 슬퍼서 우는 게 아니였다.
불안해서, 낯설어서, 익숙해서 눈물이 났다.
살면서 내가 마주할 어떤 이별이었다.
언젠가 올 겨울이었고 어쩌면 이미 뒤늦은 계절이었다.
너는 나를 달래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잘못이 있다면 모두 나의 것이라는 것을,
사랑이 변했다는데 습관처럼 너를 탓하고,
나를 가여워하고, 온 적도 없는 불행을 두려워하느라,
나는 그것이 흐려져 가는 걸 지켜만 봤다.
이별이 두려워 지레 이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딜 가든 손을 잡고 걸었다.
겹쳐진 그림자가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는 골목에서,
깍지 낀 손을 흔들면서.
마주보고도 그리워하느라 지하철을 놓치고,
네 버릇을 흉내내고, 시시한 장난에 깔깔대고,
흔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기념하고,
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골몰하고 감동하고,
내어줄 것이 없음을 슬퍼하고,
때때로 네 이름으로 불리거나 너로서 살거나 하며.
겨울에 이별했다.
나는 속이 허전해 옷을 많이 껴입고 다녔다.
그 덕에 감기는 안 걸렸다.
아이야, 나는 너를 만나서 기뻤다.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람이 있다.
그 구실로 우린 언제고 다시 만날수 있다.
살면서 마주할 어떤 사랑을 너와 해서 특별했다.
그러니 고마운 사람아 잘지내길, 안녕.
나 슬퍼서 우는 거 아니야. 어서가. 안녕
김성아 / 어떤 이별
나는 이 역시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 물었다. 나도 이모처럼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끈기 있게 대답을 해주던 이모는 결국 화를 냈고 나는 울었다.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이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들었다.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그건 영영 모르는 게 되잖아!
이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잠시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아마 이모와 나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생각. 이모는 한숨을 쉬며 말을 말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싶었다. 이모와 말하는 게 나의 유일한 놀이이자 사랑표현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세상에서 이모만을 사랑했다. 이모에게 내 사랑을 모두 쏟아부었고, 쏟아붓는 만큼 받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모는 나를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었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 그것이 이모의 사랑표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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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와 할아버지는 같은 병으로 죽었다. 호명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병명을 알게 되자마자 병은 금세 깊어졌다. 이모는 당신의 아버지처럼 당신이 느닷없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죽기 전에 내게 꼭 말해줘야 할 것은 없었다. 이모가 아는 것은 나도 알았고, 내가 모르는 것은 이모도 몰랐으니까.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고서 이모는 말의 시작과 끝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천만 번은 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나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 호흡이 잦아들기 전에는 입모양으로 내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잘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모가 꼭 할아버지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잠결에 그 장면을 보고 엉엉 울었다. 이모도 가겠구나. 할아버지처럼 가겠구나. 내 안에서 그런 소리가 왕왕 울렸다. 느닷없이 통곡하는 나를 보고도 이모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단다. 다 지나갈거야.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있는데. 장례를 다 치른 뒤 나는 귀신을 겁내는 아이처럼 집 안의 불이란 불은 죄다 켜놓고 방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나를 바라보던 이모의 눈빛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할아버지도 이모도 죽고 이제 구마저 없고, 나만 살아있다. 나는 이 문장에 의미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최진영 / 구의 증명
사랑은 끝났다는데
발길은 떨어지지 않고
내 모든 꿈 버리고 바꾼 그대가
사랑은 끝났다는데
발길은 무슨 미련으로 떨어지지 않고
내 가난한 풀밭
한 송이 반지꽃으로 피었던 그대가
내 모든 꿈 버리고 바꾼 그대가
사랑은 끝났다는데
발길은 무슨 미련으로 장승처럼 떨어지지 않고
최석우 / 사랑은 끝났다는데
사랑이 끓어넘치던 어느 시절을 이제는 복원하지 못하지.
그 어떤 불편과 불안도 견디게 하던 육체의 날들을 되살리지 못하지.
적도 잊어버리게 하고, 보물도 버리게 하고,
행운도 걷어차던 나날을 복원하지 못하지.
그래도 약속한 일은 해야해서,
재회라는 게 어색하기는 했지만,
때맞춰 들어온 햇살에 절반쯤 어두워진 너.
수다스러워진 너.
여전히 내 마음에 포개지던 너.
누가 더 많이 그리워했었지.
오늘의 경건함도 지하철 끊어질 무렵이면 다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서로 들고왔던 기억. 그것들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그것이 저주였음을.
재회는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아니었음을.
오래전 노래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음을.
그리움 같은건 들키지 않기를.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기를.
지금 이 진공관 안에서 끝끝내 중심 잡기를.
당신, 가지도 말고 오지도 말 것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말기를.
그래서 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
허연 / 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
빼다 박은 아이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거룩해지지 않기.
상대의 문장 속에서 죽지 않기.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 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혹 시간이 맞거든 연차를 내고 시골 성당에 가서 커다란 나무 밑에 앉는 거야.
촛불도 켜고 명란 파스타를 먹고 헤어지는 거지,
그날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 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뻔해, 우리보다 융자 받은 집이 더 노래 남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생을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허연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나 때문에 사는 거란 소리가 듣고 싶어
그 말을 듣고 나서 더 못살게 굴고 싶어
그래도 내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네 눈이 보고 싶어
너는 다정하고 그게 나를 병들게 했어
그리고 당신의 애인 / 태주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답했고, 서로의 의사 표현을 존중했다.
산책을 나가자는 말에 좋아하는 게임을 한 판만 하기도 했고,
그 한 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으나 꼬옥 안아주던 날도 있었고,
눈물을 닦아주던 날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바보처럼 실없이 즐겁기도 했다가
때로는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생각이 하루를 뒤집어놓기도 했다.
함께하자는 약속은 있었지만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사랑일까.
김은비 / 사랑하고도 불행한
너는 내가 애틋하다고 했다. 사랑과 애틋함은 다르잖아.
내가 가엽고 고마우나 함께 할 순 없다는 거지?
너는 답을 듣거나 질문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네가 말을 꺼낸 순간, 그 즉시 우린 이별한 것이다.
어떡하지. 사랑을 구걸해도 될까?
당연한 사실을 확인해도 될까?
찾아온 비극을 모른 척해도 될까.
자정까지 준비할테니 그때까지만 사랑해주면 안될까.
너는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네 토닥임이 좋아서 악몽을 꾸고 싶었던 밤들,
가로등이 없어도 무섭지 않았던 집 앞 모퉁이,
일부러 장갑을 챙기지 않았던 겨울날이 있었는데,
집중하지 않아도 당연했던 유일함.
사랑이 이렇게나 선명한데 이별이라니,
우리가 그래도 될까?
더이상 어리광부리지 않을게 그래도?
대답이 울음이 된다. 어짜피 이별.
답을 하지 않아도 가능한 이별.
고작 이별.
견디면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될까?
김성아 / 사랑의 행방
나는 너랑 나 사이에 무관심이나 결핍 같은 걸 키우고 싶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절절하고 애틋한 감정들을 배양토 삼아
막상 같이 살 맞대고 있으면 별생각 안 드는 그런 거
네 숨이 얕은지 깊은지
속눈썹이 긴지 짧은지 같은 것들만 보게 되는 그런 거.
네 생각을 너무 오래 했더니
보고 싶다고 말하면 그냥 네가 와줄 것 같아
태주 / 그리고 당신의 애인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남겨졌다.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왔는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리하면 어디선가 물결처럼 술렁이며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가늘게 떨고 있는 생의 순간들이 방안 가득 들어찬다.
아직 마르지 않는 글썽거림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표정을 짓고 있다.
글썽거리는 건 빛나고 축축해서 맘에 든다.
무수한 너와 내가 무수한 나와 너로 밀려왔다 사라진다.
경계의 이편과 저편에서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득한 시간을 포갠다.
밀고 당기고 자빠지고 일어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고 나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윤곽이 생긴다.
점과 점이 모야 이 세상 모든 선이 되듯,
애초부터 저 혼자가 아니라는 듯,
또는 저 혼자라는 듯,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있는.
그러니 살아라.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김원경/뜻밖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