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 2021.08.13
“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대한민국 전부가 잘못 되었다고 하는 걸
왜 사법부만 모르고 변하지 않는 건가.
이제 남은 건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
래서 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
- 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 중 -
지난 9월 6일 부산고등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의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기각하였다. 해당 사건은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청구인이 성폭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하지 않고 '고의에 의한 상해'로 보아 구속 수사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건이다. 반면 성폭행을 시도했던 가해자는 특수주거침입죄와 협박죄만 인정받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청구인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56년 만인 작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청구 이후 한국여성의전화는 기자회견, 청구인 심문 지원, 의견서 및 탄원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하여 재심 개시를 강력히 촉구하였다. 또한, 국민 청원 및 3차에 걸친 서명운동에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올해 2월 17일 부산지방법원은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며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변호인단은 즉시 항고하였고, 부산고등법원은 지난 9월 6일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또다시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공소에 관여한 검사의 불법체포감금죄 등에 대해해서는 불법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 재심대상판결에 관여한 법관의 소송지휘권 행사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법률적 환경 하에서 범죄의 성립 여부와 피해자의 정당방위 등 주장에 대한 판단을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검사와 법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번 항고 기각결정문은 지난 재심 기각결정문을 그대로 복사한 듯 똑같다. 항고심 재판부가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본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부의 항고 기각결정에 대해 분노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이는 재심 개시를 위해 서명에 참여한 2만여 명의 시민들의 분노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중략)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천명하고 있다. 청구인은 1965년 사건 당시부터 정당방위를 주장하였으며, 56년이 지난 후에도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재심을 청구하였다. 재판부는 같은 내용의 결정문을 반복할 게 아니라 56년 전 국가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재심 청구를 인용했어야 했다.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기각한 부산고등법원의 선고가 있은 후 변호인단은 바로 재항고장을 제출했으며, 한국여성의전화와 청구인, 변호인단은 재항고를 통해 청구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여성의 방어권이 인정될 때까지 한국여성의전화는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이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제공일 : 2021. 9. 15 (수) ㅣ 제공자 : 한국여성의전화
문의 : 한국여성의전화 (02-3156-5463 / counsel@hotlin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