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3:(그러나)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압살롬은 다윗이 가장 총애한 아들입니다. 허나 이복형 암논이 그의 여동생을 강간한 후에 보여준 파렴치한 행위를 아버지께서 알고도 징계를 가하지 않자 자신의 손으로 암논을 죽인 후 그랄 땅으로 도망갑니다.
보통 가정교육의 중심엔 어머니를 강조하지만 성경은 한 쪽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기 딸을 강간한 아들 암논을 불러다가 사랑의 매를 들었다면 압살롬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밧세바와 저지른 죄악의 상처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보여 주니 제 가슴도 무척 답답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도 얼마나 보시기에 안타까웠을까요? 얼마든지 그 상처로 딛고 일어선 사명 감당자로,즉 상처 받은 치료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랄 땅으로 피신 간 압살롬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 오도록 영향력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조카요 다윗 왕을 섬기는 장군 요압이었습니다.허나 그도 왕의 얼굴까지 대면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마음과 마음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골 깊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서 화목케 하는 사역은 화목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쏟으신 보혈에 전적 의존하는 사역으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화목케 하는 길이 예수 십자가의 피로 개통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중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서,불화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화목케 하는 사역에 올인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낙심치 않고 선한 일을 하면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이를 믿고 열방 곳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모든 남녀 종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위로부터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온 이스라엘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을 정도로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언젠가는 왕을 볼 수 있겠지라는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자 왜 요압이 그랄 땅에 있는 자기를 이스라엘로 돌아 오게 했는지 의구심을 풀기 위해 요압 집에 여러번 종들을 보내지만 끝내 만나주질 않습니다.
아마도 온 이스라엘로부터 추앙받는 압살롬은 차기 왕권은 자기라는 확신속에 사는 자 같습니다. 자기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왕실 출입 금지령이 해제되질 않으니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우리가 여기서 포인트 하나를 찾아 낸다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교만하면 지금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눈 멀고 귀 먹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왜 이런 상황가운데 내가 있어야 하는지 여호와 앞에 나아가 깨달아질 때까지 앉아서 기도하지 않고 자기 생각,곧 허사를 묵상(경영)하니 그렇습니다. 이해가 안가니 분노만 치밀어 오릅니다.
아무리 종들을 보내도 요압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자 압살롬은 그의 종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 밭에 불을 지르게 합니다. 정작으로 태워야 할 밭은 압살롬의 교만한 마음 밭인데 말입니다.
가장 뛰어나고 싶고, 칭찬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찬양 받고 싶고, 선택 받고 싶은 탐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 압살롬이고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소멸하시는 여호와 불이 내려와 이런 저희를 태워주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케 하는 거룩한 존재들로 빚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불 타버린 보리밭을 본 요압이 다윗 왕에게 이런 상황을 아뢰니 왕은 마음을 바꾸어 압살롬을 부르자 압살롬은 잽싸게 왕 앞에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합니다.
여기서도 포인트 하나를 찾자면 압살롬은 우상에게 절한 것이지 아버지에게 절한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픈, 저 왕좌에 앉고픈 탐욕이 만든 왕과 왕좌란 우상에게 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이런 아들에게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타오르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고스란히 계승 받을만한 아들들이 지상에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누구라도 부러워하는 왕 같은 직분은 계승받고 싶은데 자기를 죽여서라도 더럽혀진 아들에 대한 하나님 사랑을 확증하려는 종들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되레 자신이 더럽혀진 아들에 의해 더럽힘 당할까 두려워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하는 비극만 오늘도 연출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돌아온 탕자,탕녀들을 껴안고 입맞출만큼 부정은 자기 몸으로 스폰지처럼 다 빨아 드리고 자기 안에 출렁이는 거룩함을 다 내어주는 종들이 탄생되길 기도합니다
아버지로부터 화해와 사랑의 입맞춤을 받은 압살롬은 이제 본격적으로 그 아버지 사랑을 철저히 기만하기 시작하니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세웁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성문 길 곁에서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을 유인하여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훔친 것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까지 자기 편으로 끌어드릴 정도입니다.
반역 하는 일이 커지면서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들도 많아집니다. 드디어 전령이 와서 다윗에게 이스라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다고 아뢰자 다윗은 급히 피신할 것을 택합니다.
이 때 쓴 시가 시편 3장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심령에 주로 모시고 살다보면 다윗의 시들처럼 맛난 시는 없습니다.
다윗 왕의 수난은 다윗 왕국,이스라엘의 수난으로 하나같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겪는 수난입니다.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교회와 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겪는 수난이라 하겠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란 분명한 정체성 가운데 사는 성도일수록 다윗에게 부어진 왕,제사장,선지자란 삼중직 기름부음이 고난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증가된 성령의 감동 속에 쏟아진 기름진 언어들로 구성된 시들을 사랑하면서 살것입니다
솔직히 시편3편은 그 첫 마디부터 제 영혼을 어찌나 강력하게 사로잡아 가는지 저 스스로에게 "이게 뭐지?"라고 물을 정도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오래 전 한 선교사님께서 제게 사단의 아들들이 몰려 올 것이라고 예언 기도를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거대한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사단의 아들들이 두려운게 아니라 정체불명의 두려움이 더 두려운 것인데 말입니다.허나 이내 제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에 잠겨 크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올테면 와봐라! 반드시 나는 예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이다"
그런 세월을 지나고 보니 바닥으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세차게 치고 올라가길 이전보다 더 높이 날아 오르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생기와 계시를 기록된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불어 넣어 주사 모든 진리 가운데로 친히 인도하심으로서 참 안전한 곳,저 높은 전능자의 품 안에서 머물게 해주시니 사단의 아들들이 오히려 저를 제일 많이 도와준 셈입니다.남 말이 아닌 제 말입니다.
전리품은 전쟁터에서 물러선 자가 아니라 끝까지 남아서 싸운 자들에게 돌아 갑니다. 남은 자들의 복입니다.
진리는 주께서 우릴 위해 쏟으신 생명의 절대적 사랑과 은혜를 뼈 마디 마디 관절 골수 마음에 새긴 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 잃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윗과 같이 우리도 범죄한 결과로 받게 되는 징계로 인해 통과해야 할 고난이란 영적 전쟁터에 막상 들어 서게 되면 누구라도 스스로 위축되어 침륜에 빠지기 쉽습니다.
허나 성경은 하나님은 미쁘시사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때문에 성도는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넉넉히 싸워 이긴다는 선재적인 승리를 선포해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말씀과 하나되어 돌파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들의 대적자인 사단은 하나같이 여호와의 영,곧 기름부으심을 쳐내려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성도들을 정면으로 혹은 직간접적으로 공격하는데 온갖 도구를 총동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삼중직 기름부으심을 쳐내려고 일어선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실로 한 나라의 왕인 자신을 쳐낼려고 압살롬과 함께 한 백성들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원수 마귀 대적이 하는 일이라곤 성도들 안에 부어진 그리스도의 영(기름 부으심)을 쳐내려고 시도 때도 없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소멸시켜 그리스도인을 종교인으로,기독교를 종교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많은 자들이 자기를 공격할 때 물리적인 무기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가 "말"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사단은 우리의 죄와 허물로부터 완전하게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특히 성도가 연약하여 넘어지거나 범죄하면 시도 때도 없이 "그러고도 네가 구원 받을 자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단은 지금도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일지라도 그것을 부인하게 만들려고 행위 구원,곧 자력 구원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집니다
아멘!
마라나타!
첫댓글 아멘! 감사해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태초부터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분은 아버지하나님.
그리고
그 길은 대제사장이신
오직 예수그리도!
귀한 나눔 감사 드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