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 주고, 평안이 없는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렘6:14, 8:11).
신앙에 새롭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사람이 성령의 깊고, 견고하게 하고, 성화하는 역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말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거짓된 종교적 열광 뒤에는 치명적인 영적 질병이 따라옵니다. 마귀는 열광적인 부흥의 분위기에 일시적으로 주춤할 뿐, 그가 머물던 집으로 금세 다시 돌아오고, 종국에는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성급하게 시작했을 때 치르게 될 대가도 계산해 보지 않고, 롯의 아내처럼 주춤주춤 뒤를 돌아보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천 배나 늦게 시작해도 견고히 “말씀에 거하는” 것이 낫습니다(요8:31).
몇 가지 종교적 감정을 느낀 것 가지고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화되었다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상태는 없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법을 항상 존귀하게 여기고, 삶의 규칙으로 삼아 그 법에 순종하며 살려고 항상 힘쓰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십계명을 지킨다고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율법이나 십계명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오해입니다.
성령은 율법을 통해 신자에게 죄를 확신하게 하시고, 칭의를 위해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또한 친절한 안내자로서, 신자가 성화를 추구하면서 율법을 신령하게 사용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십계명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공적인 첫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설명해 주셨고, 그 계명들이 요구하는 엄밀한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이라고 말했고(딤전1:8),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고 했습니다(롬7;22).
스스로 성도라 하면서 십계명을 가볍게 여기고, 거짓말하고, 외식하고, 속이고, 분내고, 비방하고, 술 취하고, 제7계명을 어기는 사람은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 날에 자신을 “성도”라 증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화는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고, 삶을 통해 보여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가르침은 산상수훈과 사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와 산성설교가 거룩을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그런 가르침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적어도 너무나 무지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이 말을 듣거나 책을 읽고서, 주님은 이 땅에서 교리만 가르치셨을 뿐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실천적 의무들을 남겨 두신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복음서를 조금만 안다면 이런 생각이 전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는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가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진실로 성화된 사람이라면 결코 이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J.C.라일의 "거룩" - 제2장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