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길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삼상11:18~19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말씀과 기도의 사역을 해오던 사무엘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 달라는 백성에게 명백히 너희가 너희 하나님을 버린거라는 말씀을 들려줍니다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직접 구원해 내신 생명나무 여호와 대신 <자기 위에> 자기 욕망을 만족시켜줄만한 각자의 선악과를 선택한 겁니다.
생명나무는 생명 위에 생명 없고 생명 아래 생명이 없는 만인 평등 사회이지만 선악과는 사람 위에 왕을 세워 신분 차별의 계급 사회를 만듭니다.
우린 여기서 아주 미묘한 편차가 벌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호와의 미묘한 편차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평화와 구원의 왕으로 오시게 만듭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다른 나라들과 같은 왕이 아닌 다른 왕을 세워 주시기로 작심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제비뽑기 행위는 이스라엘의 손이 하나 정작으로 여호와께서 택한 자가 제비 뽑히도록 역사하시는 손은 여호와이시라는 것입니다.
(삼상10:19b~24)
이 일로 제일 놀란 사람은 사울이 아니였을까 합니다. 지도자의 기름 부음을 사무엘로부터 받았지만 막상 제비 뽑기로 뽑혀졌을 때 사울만큼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라는걸 체감할 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짐짝 뒤에 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굳이 겸손해서만이 아닐 것입니다.여호와의 부르심에 처음부터 선듯 나서는 자가 과연 우리 중 있기나 한 것일까요? 지도자는 반복되는 자기 죽음의 깊이와 넘어짐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집니다.
이로써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뽑은 왕과의 관계성을 확립하여 이방 나라와는 다른, 곧 여호와의 신하가 되어 백성들 <위>가 아닌 백성들 <아래서>섬기는 왕으로 세우십니다. 더불어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며 예배하는 선지자의 무리(교회)를 곁에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선지자께 와서 왕을 구해 달라고 제안함으로 선지자 사무엘이 낱낱이 여호와께 고하며 구하는 중재자 역활로서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능한 대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제사장이 죽음으로서 공석이 된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보해 줄 자로 모태로부터 구별되어 자라난 선지자 사무엘이 또한 선지자의 무리들을 양육하도록 여호와께서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러함에 뿌리를 내린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위대성은 교회나 살자고 하는게 아닙니다. 거짓에 미혹되어 사단에게 합법적으로 넘어간 열방을사단,곧 악하고 무서운 자의 손으로부터 살려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 하나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현상은 생각할수록 큰 슬픔입니다. 교회와 나란 우상을 겸하여 섬긴 행위의 열매를 거두며 다시한번 여호와는 만훌히 여김 받지 않으심을 절감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한15 : 16)"
세상에 나가 맺는 열매는 성령의 인격적인 열매이면서도 동시에 영생을 말합니다. 많은 열매는 구원 받은 많은 영혼으로 이 일은 성령의 탄식과 합한 자가 되어 말씀 기도의 씨를 뿌릴 때 거두어 드리게 됩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 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삼상11:1~5
미스바에서 왕을 세웠다는 말이 암몬 사람 나하스의 귀에 들렸나봅니다. 그는 왕은 있으나 아직 왕의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한 이스라엘을 치고자 합니다.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은 아예 싸울 생각은 못하고 전쟁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하면 나하스를 섬기겠다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세상 나라의 원칙은 철저히 약육강식입니다.
허나 나하스는 언약하면 섬기겠노라하자 오른 눈을 다 빼야 언약해주겠다 합니다. 성도가 죄와 타협하면 몸을 밝혀주는 눈을 빼앗겨 영안이 어두워져 깊은 잠에 취하게 됩니다.
그러자 야베스 장로가 정신이 퍼뜩나는지 이 레 안에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그러자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길르앗 야베스의 전령들을 통해 듣게 된 기브아의 모든 백성들이 소리 높이 우는 것을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보곤 묻습니다. 그냥 스치지 않고 백성에게 묻는 자가 되었다는게 지도자로서의 첫 관문을 열게 만듭니다
"무슨 일로 우느냐?"
사울의 이 물음은 우리 주께서 동산에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으신 말씀을 생각나게 만듭니다.울음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구원의 왕 예수의 모습이 지도자 사울에게서 나타나는게 참 기쁩니다.
사울이 사연을 들을 때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온 지역에 두루 보내어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소들도 이같이 하리라고 전하게 합니다. 이에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예수의 머리에 있는 기름이 보배로운 것은 그 머리와 연합한 모든 자들을 하나로 묶어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두려움으로 그만 따르며 섬기도록 역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삼십만 명과 유다 사람 삼만명을 계수한 사울이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을 하라고 전령들을 보내니 야베스 사람들이 기뻐합니다.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한 결과 위기를 기회로 사게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왕으로서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
우리 열매가 어떤 처지에서든 항상 있도록 구원의 왕이신 예수 이름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열방의 모든 교회들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도록 큰 소리로 부르짖게 하옵소서.
온 교회들이 전심으로 여호와만을 섬김으로 불쌍한 백성들을 코로나의 손으로부터 건져주시는 여호와를 만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