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17년 9월 7일
롬1장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바울이 로마 교회를 보기 원하여 기도하는 중에 쓰게 된 로마서는 마치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 사자에게 편지를 쓰도록 계시해준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바울은 논리 전개에 있어서 대단히 거침없습니다. 그를 거침없게 만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논리 역시 거침없었읍니다. 특히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율법의 지혜와 지식으로 구축된 종교 세력권 안에서 백성들의 존경을 먹고 살아가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롬1장 후반부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죄악들을 실컷 열거한 뒤 느닷없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을 소환해냅니다.나는 이 말씀을 읽는데 가슴이 덜컹거리더라고요. 아직은 새가슴이라 희망이 있다는 징조일까요?
"롬2장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순리대로 쓰지 못하는 자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수군 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이런 죄악들은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숭배로 바꾼 결과로 나타난 증상)
바울이 왜 이토록 다양한 죄인들을 열거했을까요? 그런 죄를 짓는 자들을 잡을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그런 죄를 짓는 자들을 정죄함으로서 자신은 의롭다고 자처하는 자들을 잡기 위해서일까요?
제게는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를 추적하여 마침내 그 자야말로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설득키려 함일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죄악에 하나라도 안걸릴 사람 어디 있나요? 아무리 자신있게 남을 판단하던 자도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나는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지 않고 내 속에 하나님 두기를 즐거워하는 자라고 우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긴다고 되는 일은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모신 자답게 신성의 충만함을 흘려주며 살았는가?입니다
바울은 이 죄악들을 열거하면서도 그 누구도 이 그물망으로부터 빠져나갈 자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적으로 말하자면 바람 햇빛 눈 비 번개 천둥등은 그물이 아무리 총총해도 빠져나가겠지요?
그것들은 하나같이 진리의 향기를 상징하는 임의로 행하는 "영" 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흘러주는 "영"이 아니고서는 다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이 쨘 로마서 그물을 던지면 모두를 다 죄인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그물(진리와 은혜의 복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물을 던졌는데도 물고기가 안잡히는 그물은 그물이 엉성하거나 여기 저기 빵구가 난 것입니다
이 그물은 예수님께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라고 책망하시던 말씀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왜냐면 바울이 짠 그물은 율법의 사소한 것들은 일일이 지키고 가르치며 판단하면서도 율법의 으뜸 사상인 하나님의 아들의 인애와 긍휼은 삼켜버린 자(약대)들을 사로잡는 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남을 판단하는 나"를 그물에 잡아 올린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합니다
만일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나사렛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사울이였다면 "진리" 대신 "율법"으로 심판할 것을 안다고
기록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율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는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심판) 때문입니다.대신 의(아버지와 아들)에 대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죽고 의로 살게 만든 터닝포인트(십자가의 주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제자들에게 실상은 자신이 아버지께 가는 것이 유익한거라 하셨읍니다
그 유익함은 처음도, 나중도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유익함이란 바로 그림자요 허상이였던 율법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성시킴으로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실상(진리, 그리스도의 영,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대로 성전을 다 건축했어도
모든 성물들에게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바르기 전에는 성전의 그 어떠한 효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우리 각자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하여 실상(진리. 살리는 영)을 밝혀 줄 것에 기뻐하셨습니다.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나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저주와 사망의 영인 율법이 아닌 살리는 영으로서의 진리대로 될 것을
안다 합니다. 진정 그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누구라서 이생에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사로잡혀 온 나에게 너는 그래도 살 길이 있어라며 복음의 진수를 펼쳐 보여 줄 것입니까?
바울은 여기서도 남다른 논리를 끄집어 냅니다.곧 네가 남을 판단하고 나니 속 편히 아무렇지도 않더냐? 속 시끄럽지 않더냐?
아무리 남을 판단하게 된 동기를 율법에 근거하여 궁리,변명해도 네가 판단하여 남을 정죄했듯이 너도 너 자신을 정죄하게 되지 않더냐? 율법으로 판단했다면 당연히 율법대로 한 것이니 기쁠텐데 정말 그렇더냐?
우리가 알 것은 아무리 율법에 근거하여 판단했을지라도 판단한 자나 판단 받은 자나 이 둘은 동시에 정죄감에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눈여겨 보는 것은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함에 하나님 자신에 대한 성품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입니다.인자와 용납과 길이 참는 것도 참 놀랍고 아름다운데 바로 그러한 성품에 "풍성함"이라니? 상상이 됩니까?
하나님의 이 성품의 실상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곧 아들의 죽음으로 다 용서했다입니다.그게 "진리"로 나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율법을 지킨다하면서도 남을 판단하는 자 곧 율법의 왕노릇했던 나입니다
율법의 머리된 자로 율법의 왕관을 쓴 세상 임금이였던 자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의에 대하여 뭐라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게 죄라합니다.이것을 믿는게 의라 합니다
이것을 믿는게 예수와 함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 합니다. 이것을 믿는게 바로 심판을 받았다합니다. 이런 자들은 범죄한 자들에게 주님처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진리와 은혜의 그물을 던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물에 잡혀진 고기들이 새어나지 않도록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한 진리(십자가의 공의와 사랑)로
심판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